토종 OTT 업체의 딜레마
수천억원 쏟아붓는 해외 OTT
투자 규모서 여전히 밀리고
해외 판로 개척도 더뎌

K-콘텐츠인 파친코가 대박을 쳤습니다. 또다른 K-콘텐츠 오징어 게임을 잇는 ‘흥행 대박’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제작사가 모두 해외 업체입니다. 정작 K-콘텐츠로 국내 OTT 업체가 성공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더스쿠프(The SCOOP)가 한국 OTT 업체의 고민을 살펴봤습니다.

국내 OTT 업체들이 해외로 진출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사진은 애플TV+의 드라마 ‘파친코’.[사진=애플 제공]
국내 OTT 업체들이 해외로 진출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사진은 애플TV+의 드라마 ‘파친코’.[사진=애플 제공]

“이 조용한 한국의 걸작이 우리 드라마를 부끄럽게 만든다(영국 일간지 텔레그라프).” 최근 애플의 OTT 서비스 애플TV+가 공개한 드라마 ‘파친코’에 세계 시청자와 평론가들이 극찬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의 이민사를 다루고 있는데, 이방인이란 이유로 핍박받던 재일교포와 그 후손들의 삶을 예술적으로 담아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에선 올 2~3월 파친코를 본 시청자가 미국 드라마 평균 시청자보다 3.4배 많다는 통계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데이터 분석업체 패럿 애널리틱스).

국내에서도 인기가 상당합니다. OTT 검색엔진 서비스 키노라이츠에서 파친코 1화는 OTT 콘텐츠 시청률 통합 1위를 기록했습니다. 지금까지 6화가 공개됐는데(4월 20일 기준), 새로운 시리즈가 공개될 때마다 시청률 1~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파친코가 불러일으킨 ‘대단한 열풍’ 때문인지, OTT 업계에서는 ‘넷플릭스 천하를 애플이 흔들 수 있을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물론 가입자가 4000만명에 불과한 애플TV+에 넷플릭스는 아직 넘사벽에 가깝습니다. 넷플릭스의 가입자 수는 2억2180만명(2021년 4분기 기준)에 달하니까요.

하지만 뛰어난 콘텐츠가 곧 OTT 서비스의 경쟁력이란 점을 감안하면, 파친코를 등에 업은 애플TV+ 가입자가 몰라보게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참고: 애플은 2019년 11월 론칭 이후 지금까지 한번도 애플TV+의 가입자 수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어쨌거나 해외 OTT 서비스들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엔 언제나 ‘한류韓流와 K-콘텐츠’가 있었습니다. 이번 애플TV+의 파친코가 그렇고, 넷플릭스의 ‘킹덤(2019년 1월)’ ‘오징어게임(2021년 9월)’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정작 국내 OTT 업체가 K-콘텐츠로 대박을 터뜨렸다는 소식은 어디서도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 콘텐츠로 남의 배만 불려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국내 OTT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건 국내 업체가 아니라 해외 기업입니다. 시장조사업체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2월 넷플릭스의 월 이용자 수는 1001만3283명(안드로이드·iOS 통합)으로 처음으로 100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웨이브(Wav ve·395만명), 티빙(TVING·265만명), 유플러스모바일tv(213만명) 등 국내 OTT 업체들의 성적과는 비교할 수준이 아닙니다. 국내 OTT 업체는 왜 이 지경까지 내몰린 걸까요? OTT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었기 때문일까요?

국내 OTT 업체들은 “좋은 콘텐츠를 발굴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읍니다. OTT 업계의 한 관계자는 “드라마 제작사에 상당히 좋은 조건을 제시했는데도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럼 국내 OTT 업체가 콘텐츠를 발굴하는 데 애를 먹는 이유는 뭘까요?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시죠. “요즘 제작사들이 기획안을 들고 가는 순서가 있다. 1순위는 넷플릭스, 애플TV+ 등 해외 OTT 업체다. 해외 업체들이 좋은 기획안을 먼저 ‘픽(Pick)’하는 이유다. 그다음 가져가는 게 국내 방송사 또는 국내 OTT 업체다. 이유는 두가지다. 해외 OTT 업체가 제시하는 제작비 규모가 훨씬 큰 데다, 글로벌 유통망이 워낙 탄탄해서다.”

실제로 해외 OTT 기업이 국내 콘텐츠에 투자하는 규모는 어마어마합니다. 하나씩 살펴보시죠. 넷플릭스가 지난해 한국 콘텐츠 제작에 투자한 금액은 5500억원에 이릅니다. 그 결과, 오징어 게임을 비롯한 한국 콘텐츠를 15편이나 제작할 수 있었죠. 한발 더 나아가 넷플릭스는 올해 드라마 제작 편수를 25편으로 더 늘릴 계획입니다. 자연히 투자금액도 더 늘어날 게 분명합니다.

물론 국내 OTT 업체들도 투자 규모를 늘리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티빙의 모회사인 CJ ENM은 지난 2월 2500억원 규모의 외부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SK텔레콤과 지상파 3사가 합작해 만든 웨이브도 지난해 3월 “2025년까지 콘텐츠에 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문제는 글로벌 유통망에서 국내 OTT와 해외 OTT의 경쟁력이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는 점입니다. 넷플릭스는 현재 190개 국가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애플TV+는 100여개 국가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반면, 국내 OTT 업체들의 해외 진출 속도는 무척 더딥니다. 2020년 왓챠(WATCHA)가 일본에 진출한 게 현재로선 유일합니다. 티빙도 올해 대만·일본에 진출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만, 구체적으로 밝혀진 내용은 아직 없습니다.

그나마 올해엔 상황이 좀 낫습니다. 선봉장은 쿠팡입니다. 지난 3월 모바일인덱스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이용자를 대상으로 집계한 통계에서 쿠팡플레이의 월 이용자 수는 240만명을 기록해 지난해 11월(190만명)보다 26.3% 늘어났습니다. 웨이브(341만명)와 티빙(264만명)도 같은 기간 각각 6%·2% 증가했죠. 넷플릭스 월 이용자 수가 859만명에서 839만명으로 2.3% 고꾸라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무적인 결과임에 틀림없습니다.

국내 OTT 신작들도 기분 좋은 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선보인 티빙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대표적입니다. 이병헌·신민아·차승원·한지민 등 톱배우들을 캐스팅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인지 4월 9일 7.3%(1화·닐슨코리아)를 기록했던 시청률이 17일 방영된 4화에선 9.1%까지 오르며 입소문을 타고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전세계 190개국에 스트리밍을 서비스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넷플릭스는 전세계 190개국에 스트리밍을 서비스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뜻하지 않게 해외까지 알려진 경우도 있습니다. 티빙 드라마 ‘괴이’ ‘술꾼도시여자들’, 왓챠 드라마 ‘좋좋소’는 4월 1일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5회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국내 OTT 업체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내다볼 순 없습니다. 해외 OTT에 비해 투자 규모는 턱없이 적고, 유통망 역시 느슨합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지난 26일 기자회견에서 “토종 OTT 업체를 향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겁니다. 국내 OTT 업체들은 이 어려운 숙제를 잘 풀어나갈 수 있을까요?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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