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놓치기 쉬운 자녀의 감정
사랑받아야 할 시기 놓쳐선 안돼
사랑받는다고 느끼도록 하는 게 중요

두 아이가 있다. 첫째는 평범하고 착하다. 둘째는 약간의 발달장애가 있다. 부모는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에게 온 힘을 쏟았다. 어릴 때부터 동생을 보살피는 데 익숙했던 첫째는 언제나 조용히 부모의 말을 따랐다. 그렇다면 첫째는 부모가 생각하는 것처럼 ‘군말 없는 아이’일까. 

첫째든 둘째든 아이들에겐 사랑받아야 할 고유한 시간이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첫째든 둘째든 아이들에겐 사랑받아야 할 고유한 시간이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건강한 사랑.” 자녀 양육과 관련한 심리이론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기본 정의다. 하지만 자녀가 반드시 부모의 사랑을 느끼는 건 아니다. 부모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자녀가 원하는 것과 다르면 자녀들은 되레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서 필자는 이렇게 강조하곤 한다. “자녀가 사랑받는다고 느낄 수 있게끔 사랑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 

사례 하나를 펼쳐보자. 어느날 둘째 아들로부터 “엄마, 나 사랑해?”란 질문을 받은 A씨는 “물론 사랑하지”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둘째는 느닷없이 “형보다 더 사랑해?”라고 물었다. A씨는 “형하고 너 둘 다 똑같이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하지”라고 답했다. 그런데 웬걸, 둘째 아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둘째 아들은 “똑같이 사랑해”가 아니라 “형보다 더 사랑해”란 말이 듣고 싶었던 거였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어린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는 건 쉽지 않다. 그런데도 상당수 부모는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까 (자녀도) 내 마음을 이해해 주겠지’라고 간주하기 일쑤다.

가령, 형제 중 한명의 재능이 탁월하거나 한명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고 가정해보자. 이럴 때 다른 한 자녀는 ‘가만히 놔둬도 잘하는 것’처럼 보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을 때가 적지 않다. 필자가 상담에서 접한 몇가지 사례를 소개해보자. 

# B 부모는 예체능에 재능이 있는 둘째를 지원하는 데 온 힘을 쏟아왔다. 레슨에 따라다니느라 대회가 열릴 때면 뒷바라지하느라 첫째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첫째는 늘 자기 일을 잘하는 것 같아서 별걱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첫째는 ‘가출’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놨다. 그제야 B 부모는 후회했지만, 첫째의 외로움은 심각한 지경에 이른 상태였다. 

# C 부모의 관심은 고3인 첫째에게 쏠려 있었다. 가족들은 첫째가 공부하는 데 방해될까 봐 거실에서 대화를 하거나 TV를 보는 것도 조심했다. 그렇게 부모의 관심이 첫째에 집중된 사이 중학생인 둘째는 학교폭력 가해자가 돼 있었다. 이처럼 부모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자녀들은 우울·불안을 호소하거나 자해·가출·폭력 등 문제행동을 보이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번엔 얼마 전 접한 가슴 아픈 사연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슬하에 14살, 15살 자녀를 둔 D 부부의 이야기다. D 부부의 둘째 아들은 발달장애를 앓고 있다. 아내는 그런 둘째를 돌보는 데 거의 모든 시간을 쏟아왔다.

그나마 한살 터울의 첫째 딸이 공부도 잘하고 어릴 적부터 부모를 곧잘 도와준 덕분에 걱정을 덜고 살았다. 그런데 최근 D 부부는 큰 충격을 겪었다. 착하기만 한 첫째 딸이 자살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겉보기와 달리 첫째 딸의 마음이 괜찮지 않았던 거였다. 이번 일을 계기로 부부는 첫째 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첫째 딸은 감춰왔던 속내를 털어놨다.

“동생 때문에 힘들어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나라도 잘해서 부모님을 힘들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런데 생각과 다르게 시험을 잘 못 볼 때도 있고, 아침에 밥맛이 없어 밥을 빨리 못 먹을 때도 있었어요. 그때마다 부모님은 한숨을 내쉬었고, 그 한숨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부모님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자책했죠. 사람들은 ‘네가 부모님을 많이 도와드려야 한다’ ‘네가 동생을 잘 보살펴야 한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런 사람이 못 되는 것 같아 괴로웠어요. 그래도 부모님이 걱정하시는 게 싫어서 항상 밝은 모습을 보이려고 했는데 요즘엔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동생이 부쩍 과격해져 부모님과 다투는 모습을 보는 게 힘들었고, 함께 놀던 친구들과도 다퉈서인지 외로웠어요. 그랬더니 누구도 내 마음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죽을 만큼 괴로워서 자해를 생각했어요….” 

이 이야기를 들은 D 부부는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다. 그동안 첫째 딸이 얼마나 외로웠을지 생각하니 마음만 아려왔다. D 부모로선 누구보다 첫째 딸을 사랑하고, 고마워하고, 든든하게 여겼지만 정작 첫째 딸에겐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못한 셈이다. 

아이들은 발달 단계에 따라 다르게 부모의 사랑을 느낀다. 다른 형제가 관심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도 부모가 ‘쟤는 괜찮겠지’란 메시지를 보내선 안 된다. ‘지금은 첫째를 신경 쓰고, 첫째의 문제가 해결되면 둘째를 돌봐야지’라는 식으로 생각해서도 곤란하다.

문제가 있든 평범하든 아이들에겐 자기만의 고유한 시간이 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에게 ‘나중’이 아닌 ‘바로 지금’ 사랑을 표현하거나 이해를 구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건 부모의 몫이지, 자녀의 몫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을 받아야 할 시기에 있는 우리 아이들의 마음이 실제론 어떤지, 또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헤아리는 건 부모의 책임이다. 부모가 된다는 건 ‘사랑받는 사람’에서 ‘사랑 주는 사람’이 돼가는 과정이니까 말이다. 

글 = 유혜진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 | 더스쿠프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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