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학습지도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아이의 고유한 특성 먼저 살펴야

아이는 활발했다. 모두들 “사람을 밝게 하는 재주가 있는 아이”라며 칭찬했다. 공부에는 흥미가 많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따라줬다. 이 때문에 부모도 아이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부모는 깜짝 놀랄 만한 광경을 목격했다. 아이가 학습지를 풀면서 자신의 허벅지를 찌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이에게 혼자 공부하도록 자율을 줬던 부모는 충격을 받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제아무리 좋은 교육 철학도 자녀의 특성에 맞지 않으면 효과를 보기 어렵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아무리 좋은 교육 철학도 자녀의 특성에 맞지 않으면 효과를 보기 어렵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부모들도 잘 알고 있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며, 성적이 행복을 좌우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하지만 학령기 자녀를 둔 부모라면 자녀의 성적에서 자유롭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부모들은 고민이 많다. 흔히 ‘공부는 엉덩이가 한다’는 말을 믿고 어떻게든 자녀를 책상에 앉혀두려는 부모도 적지 않다. 또 어떤 부모는 ‘자녀가 오래 공부하는데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며 ‘공부는 재능인 것 같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학업이나 성적으로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 건 자녀들 자신이다. 여기 흥미로운 통계 하나가 있다. 교육부·질병관리청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학교 수업이 중단된 2020년 청소년(초등학교4~6학년·중학생·고등학생)들의 평균 공부 시간은 이전보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시간 미만’ 공부하는 청소년의 비중은 2018년 15.6%에서 2020년 19.1%로 3.5%포인트 증가했다. 반면 6시간 이상 공부하는 청소년은 같은 기간 5.2%에서 3.7%로 1.5%포인트 줄었다. 

그렇다면 같은 기간 청소년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어땠을까. 중학생의 스트레스 인지율은 2018년 37.0%에서 2020년 30.4%로 6.6%포인트 줄었고, 고등학생의 스트레스 인지율은 43.4%에서 37.9%로 5.5%포인트 감소했다. 코로나19 여파로 학습 시간이 줄어듦과 동시에 스트레스도 감소한 셈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또 있다. 교육이 정상화하기 시작한 2021년엔 학습 시간(6시간 이상 공부하는 비중 4.6%)과 스트레스 인지율(중학생 36.4%, 고등학생 41.2%)이 다시 증가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 통계만으로 ‘학습시간이 증가할수록 청소년의 스트레스가 커진다’고 단정하는 건 어렵지만 학습과 관련한 여러 문제가 청소년의 정서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쯤은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여기에 부모와 자녀의 문제가 시작되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상당수 부모는 자녀의 학습에 관심을 크게 둔다. 이는 앞서 언급한 통계에서 보듯 학습 부담이 정서로 이어지는 청소년과 부모의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자녀가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넘어갈 때 갈등이 커지는 가정이 많다는 건 이를 방증한다. 

이럴 때 부모는 자녀에게 훈계를 늘어놓는 잔소리꾼이나 하루 일과를 일일이 확인하는 체크맨이 되기 십상이다. 자녀의 학습계획부터 시간관리, 과제수행까지 체크하다 보니 자녀와 갈등이 생기고, 정서적 대화는 멀어지는 셈이다. 

자! 지금부터 사례 한 토막을 살펴보자. 필자가 만난 ‘학령기 자녀와 갈등을 겪는’ 부모 사례다. 초등학교 4학년인 ‘민우’는 어려서부터 활동적인 아이였다. 친구들을 좋아해 집안에서 놀기보다는 밖에서 뛰어노는 날이 많았다. 모두들 “민우는 사람을 유쾌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며 칭찬했다. 문제는 ‘공부’였다. 민우의 부모는 ‘공부 습관’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매일 혼자서 학습지를 풀도록 했다. 처음엔 민우도 성실히 따라줬다. 

하지만 3학년이 된 이후 조금씩 꾀를 내기 시작했다. 부모 몰래 답안지를 베끼거나 딴짓을 하느라 20분이면 풀 수 있는 문제를 2시간 넘게 질질 끌기도 했다. 당연히 부모에게 혼나는 일도 잦아졌다. 

그날도 부모는 민우에게 “집중 좀 하라”며 잔소리를 한바탕 늘어놨다. 미안한 마음에 민우와 얘기를 나누려 방문을 여는 순간, 부모는 충격을 받았다. 책상에 앉아 문제를 푸는 민우가 연필로 허벅지를 반복적으로 찌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놀란 부모는 민우에게 (허벅지를 찌른) 이유를 물었고 민우는 뜻밖의 답을 내놨다. 

학업이나 성적으로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 건 자녀들 자신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학업이나 성적으로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 건 자녀들 자신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어려운 문제가 나오면 다리가 저리고, 마음이 갑갑해. 숨이 막히는데 학습지를 안 풀면 혼나니까…. 이럴 때 연필로 다리를 찌르면 다리가 덜 저리고 숨도 좀 쉬어져.” 어디서부터 잘못될 걸까. 민우의 부모는 눈앞이 깜깜하다고 토로했다. 
이런 고충을 겪는 게 민우 가정만은 아니다. 학업 난도가 높아지고, 학습량은 많아지는데, 공부 습관이 들지 않은 자녀…. 이럴 때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는 무엇보다 ‘자녀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예컨대 민우의 경우, 친구들을 좋아하고 활발한 성격을 지닌 아이다. 민우의 부모는 이런 특성을 무시한 채 민우를 혼자 공부시킨 게 갈등의 단초가 됐다. 그 과정에서 힘들어하는 민우의 마음을 사려 깊게 살피지 못한 것도 문제였다. 


주기적으로 혼자 공부하는 방식이 민우가 아닌 다른 아이에겐 적합할 수도 있다. 민우에겐 혼자 공부하는 것보단 부모·친구와 함께하는 토론학습이나 시청각 자료를 활용한 활동적인 프로그램이 적합하다. 난도가 높은 문제는 ‘양’을 줄여서 부담을 낮춰주는 것도 필요하다. 

이렇게 자녀를 교육할 땐 내 아이의 특성, 능력, 흥미를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한다. 제아무리 훌륭한 교육 철학이나 다른 아이에게 좋은 교육 방식도 내 아이에겐 맞지 않을 수 있다. 자녀의 올바른 학습지도, 그 첫걸음은 내 아이를 바로 아는 것에서 시작하는 게 옳다.  


글 = 유혜진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 | 더스쿠프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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