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한 민생공약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공약
당 철학과 다른 공약까지

대선이 끝난 지 두달이 훌쩍 흘렀지만, 여야 정치권은 여전히 ‘또다른 대선’을 치르고 있는 모양새다. 그래서 인지 6·1 지방선거가 코앞인데, 볼썽사나운 네거티브전만 가득하다. 정책 대결은 없고 인물 비난만 난무한다. 공약이라고 내놓은 건 ‘대선공약 자기복제품’ 같다. 도대체 그들은 누굴 위해 지방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걸까. 

여야는 소상공인·자영업자 손실보상을 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여야는 소상공인·자영업자 손실보상을 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가 ‘고질병’에 시달린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제는 코로나19 국면에서 그 고질병이 더 악화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도입된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은 소상공인·자영업자를 벼랑 끝으로 밀어냈다. 그런 와중에 집값은 거침없이 치솟으면서 서민을 한숨짓게 했다. 코로나19에 공급망 이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친 탓에 경기침체는 더 깊어졌고, 청년을 위한 취업문도 좁아졌다. 

이 때문인지 6월 1일 전국동시지방선거(이하 6·1 지방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주요 정당은 이런 고질병을 해결하기 위한 공약을 발표했다. 이번엔 효율적이면서도 지킬 만한 공약을 내놨을까. 하나씩 훑어보자.[※참고: 공약은 의석수 기준으로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정의당 순으로 살펴봤다.] 

■소상공인·자영업자 손실보상 = 4월 18일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됐다. 2020년 3월 사회적 거리두기를 도입한 지 2년1개월 만이었다. 꼬박 2년이 넘는 기간, 가장 많은 고통을 호소한 건 소상공인·자영업자다. 영업시간에 제약을 받은 데다, 집합금지 업종으로 분류돼 정상영업을 펼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문 닫는 가게가 속출했고 곳곳엔 임대 현수막이 나붙었다. 정부가 재난지원금과 방역지원금 등으로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을 달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 때문인지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소상공인·자영업자 손실보상 공약을 1번(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출 자료 기준)에 뒀다. 긴급 추경을 편성해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을 강화하고 사각지대 없는 온전한 손실보상제도를 마련하겠다고 공약했다. ‘한국형 PPP(급여보호프로그램·Paycheck Protect Program)’라 불리는 고정비 상환 감면 제도도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20대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가 내걸었던 소상공인·자영업자 공약 중 하나를 다시 꺼냈다. 

국민의힘도 ‘소상공인 온전한 손실보상’을 1번 공약으로 내세웠다. 국민의힘은 소상공인 경영지표를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기 위해 ‘온전한 손실보상’ ‘맞춤형 대출지원’ ‘채무조정’ 등의 긴급구조 플랜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 직후 ‘최소 600만원’을 지급하는 소상공인 방역지원금으로 대선 때 내걸었던 공약을 현실화했는데, 이후 어떤 추가 정책이 나올지 궁금하다.

정의당은 피해인정률을 80%에서 100%로 확대하는 등 코로나19 손실보상금을 확대하고, 손실보상에서 제외된 사각지대 업종을 지원하겠다고 공약했다. 지난 대선 공약과 같은 내용이다. 

■부동산정책 = 부동산 시장은 전임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숙제였다. 내놓는 정책마다 통하지 않은 데다 되레 집값 상승만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KB부동산 시세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6월 6억4000만원이었던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5월 현재 13억1000만원으로 뛰었다. 서민들의 내집 마련 꿈이 멀어진 셈이다. 이젠 야당이 된 더불어민주당도 부동산정책 실패는 뼈아플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무주택 서민에게 주거안정과 내집 마련의 희망을 제공하겠다는 공약을 부동산정책 1순위에 올려놓은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더불어민주당은 노후 공동주택 재개발, 공공임대주택 확대 등으로 무주택 서민에게 내집 마련의 희망을 제공하고 1주택자의 보유세 부담은 완화하겠다는 정책을 내세웠다. 

취득세와 종부세 등으로 다주택자의 부동산 불로소득을 억제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는데, 그 방법이 이상하다. 다주택자의 과세 기준을 기존 공시가 6억원에서 1주택자와 동일한 11억원으로 상향조정한다는 거다. 이렇게 되면 다주택자의 종부세를 완화하는 거라 사실상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해오던 부동산 정책의 방향을 선회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를 두고 “선거를 앞둔 민심잡기 공약”이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시장은 전임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숙제였다.
부동산 시장은 전임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숙제였다.

국민의힘은 보유세와 양도세 등을 적정 수준으로 조정하겠다고 약속했다. 임대차 3법을 전면 재검토해 임대차 시장의 왜곡을 바로잡겠다는 공약도 했는데, 여소야대 국회에선 쉽지 않을 거란 의견이 많다.

정의당은 서민주거 안정을 위해 공공주택 비중을 20%까지 확대하고, 지역 내 노후 주택과 빈집 등을 지자체가 매입·임대해 저렴한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고 공약했다. 청년 월세 가구에 월 20만원의 주거 수당을 지원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이 또한 대선공약집에서 나온 내용의 반복이다. 정의당의 공약에서 세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흔적이나 신선함이 보이지 않는 이유다. 

■청년일자리 = 코로나19 정국에서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지난 4월 기준 청년 실업자는 32만2000명으로, 7.4%의 실업률을 기록했다.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줘야 한다는 건 여야를 막론하고 공감하는 부분이다. 


다만, 그 방법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역맞춤형 청년고용정책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지자체에 청년수당을 도입하고, 이를 전국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또한 청년들의 취업탐색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공공기관 임금분포 공시제를 도입하겠다는 정책을 내놨다.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인 ‘알리오’를 활용하겠다는 거다.

국민의힘은 창업에 방점을 찍었다. 청소년 시기부터 창업인재를 양성하고, 청년들이 과감하게 창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패키지형 지원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거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였던 ‘청년도약계좌’도 도입해 청년들이 목돈을 마련할 수 있게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의당은 청년일자리보장제 조례를 제정하고, 지역 일자리보장위원회와 일자리보장센터를 설립해 청년 일자리를 보장하겠다는 정책을 제시했다. 국가가 나서서 지역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건데, 취지와 의도는 좋지만 의석수가 한참 모자란 정의당의 정책이어서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게 사실이다.

이처럼 각 정당에서 6·1 지방선거 공약이라고 내놓은 중앙당 정책들은 지난 대선 공약과 큰 차이가 없다. 당연히 새롭지도 않다. 지난 18일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한 전국네트워크(경제민주화네트워크)는 기자회견을 열고 “사회 전 분야에서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하는 상황인데 정책 토론은 찾아보기 어렵고, 지방선거가 대선의 연장전이자 중앙 정치의 대리전 모양새가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공정경제·중소상인·노동 분야에 8개 정책을 제안했다. 내용을 보면 ▲지속가능한 공정경제 생태계 구축 위한 행정 강화 ▲골목상권 중심의 경제활성화 방안 마련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사회안전망 구축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위한 정의로운 탄소중립 ▲가맹점주 등 종속적 자영업자 단체의 후견적 지원 강화 ▲특수고용 노동자 산재보험료 및 의료서비스 지원 ▲택배·배달노동자 쉼터 및 차량(오토바이) 수리센터 조성 ▲유통업 상생협의회 노동자대표의 참여 보장 등이다. 

민생을 구제할 정책 경쟁에 나서라는 거다. 하지만 서로 헐뜯기 바쁜 정치권이 귀를 기울이고 세심하게 공약을 가다듬을진 의문이다. 늘 그래 왔듯 이번에도 민생은 뒷전이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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