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골집 짓기 1편

얼마 전 은퇴했다는 A씨는 제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귀농할 생각입니다. 집부터 마련해야겠죠?” 시골에 내려가 농사를 짓기로 했으니, 집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거였죠. 아마도 그는 아름다운 전원생활을 꿈꿨을지 모릅니다. 필자는 단호하게 답했습니다. “안 됩니다. 집을 마련하기 전에 생활부터 하세요.” 필자가 A씨의 꿈을 꺾어놓은 덴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나의 시골집 짓기 1편입니다. 

시골집을 마련하는 것도 어렵지만 매매하는 건 더 쉽지 않은 일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시골집을 마련하는 것도 어렵지만 매매하는 건 더 쉽지 않은 일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살 집 또는 살 집?” 부동산 시장의 문제점이나 땅값이 급등한 현실을 꼬집는 질문이 아닙니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주제는 ‘매입할 집’이 아니라 ‘생활할 집’입니다. 시골살이를 꿈꾸는 이들이 가장 먼저 부딪힐 가능성이 높은 문제가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수차례 강조한 내용이지만 시골살이를 도시 속 아파트처럼 좋은 환경에서 시작하려 한다면 한걸음도 나가기 힘듭니다. 전세나 월세를 이용하거나 빈집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1~2년가량 살아본 다음 시골살이를 결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시골살이에서 중요한 건 환경뿐만 아니라 지역의 생활습관이나 지역민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정을 생략한 채 시골집을 덥석 사거나 땅을 구입해 집을 짓는다면 시골살이의 성공 확률은 10%대 미만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누군가는 이렇게 물어볼 수 있겠네요. “시골집을 짓고 살아본 다음 여의치 않으면 그때 가서 팔면 되지 않나요?”

이론상으론 틀린 말이 아니지만, 현실에선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시골집은 이상하리만큼 잘 팔리지 않기 때문이죠.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시골의 주택매매는 대부분 마을 이장 중심으로 이뤄집니다. 그만큼 정보가 비대칭이어서 시골집을 팔려는 사람에게 유리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일반 부동산 중개인들이 시골집을 잘 취급하지 않아 거래 당사자를 구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부동산 전문용어로 풀어 설명하면, 시골집의 시세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으니 집도 잘 팔리지 않는 셈이죠. 시골살이를 꿈꾸더라도 시골집을 대뜸 지어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시골살이만 13년차에 접어든 필자도 최근에야  ‘내 집 짓기’에 도전했습니다. 스스로 ‘시골살이를 잘할 수 있을까’란 의문을 떨치지 못한 탓에 땅구입부터 집 짓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여기엔 가슴에 간직하고 싶은 가족 이야기도 숨어 있습니다.[※참고: 시골살이는 흩어졌던 가족을 결합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봅니다. 필자가 가족 이야기를 공개하는 이유입니다.] 

필자가 시골땅을 구입한 건 2008년입니다. 그 몇해 전부터 ‘내 은퇴 후 삶은 어떤 모습일까’를 고민하다가 충남 청양의 농지를 경매를 통해 매입했죠. 가격은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낙찰가 6000만원의 70%는 경매대출로 조달했고, 나머지 2000만원은 그동안 모아놓은 종잣돈을 활용했죠.

경매대출금 4000만원의 이자는 월 20만원가량이었기에 ‘이 정도 수준으로 시골살이를 경험하는 건 나쁘지 않은 결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때의 선택(경매)은 필자 가족에게 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이쯤에서 시골땅을 처음 구입했던 그때 이야기를 해볼까요. 시골땅을 구입한 다음 필자는 가족들이 잠시 머무를 수 있는 컨테이너형 주택을 설치했습니다. 별도의 법적 절차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적 손쉽게 진행했습니다. 

작은 땅에 설치한 컨테이너에 불과했지만, 부모님과 형제자매, 우리 가족은 매년 3~4번씩 이곳에 모여 텃밭을 가꾸고 삼겹살 파티를 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히 당시 70대 중반이던 아버지에게 ‘그곳’은 노후를 보내기에 제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골에서 여생을 보낼 생각이다.” 아버지가 ‘청양에 정착하고 싶다’며 속마음을 밝힌 건 그로부터 3년이 흐른 뒤였습니다. 아버지는 말씀을 하시자 무섭게 짐을 싸들고 청양으로 내려가셨는데, 가족들의 걱정과 만류를 비웃기라도 하듯 ‘멋진 여생’을 보내셨습니다.

도시에선 담배만 피우시던 아버지는 시골집에선 화초를 가꾸고, 땅을 파고 길을 내서 ‘작은 연못’도 만들었습니다. 젊은이 못지않은 체력이 필요한 작업이었지만, 팔순 아버지는 힘이 넘쳤습니다. 

그후로도 10여년, 아버지의 ‘시골살이’는 그의 삶이 끝날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만약 필자가 시골살이를 계획하지 않았다면, 아버지가 ‘시골’에 정착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행복하게 눈을 감으실 수 있었을까요? 이 때문인지 시골은 사람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정거장’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음호에 계속> 

글 = 조경만  금융컨설턴트(엉클조 대표)
iunclejo@naver.com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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