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상생형 일자리 모델 GGM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무노조 경영
대신 주거·교육·의료 ‘사회적 임금’
정부 및 지자체 약속 안 지켜 갈등  

2019년 4월 정식 출범한 광주글로벌모터스(GGM)는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탄생한 국내 최초의 상생형 일자리 모델이다. 당시 정부와 지자체는 기존 완성차기업의 절반 수준으로 연봉을 책정하는 대신 근로자들에게 주거ㆍ의료ㆍ교육 등의 후생복지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이른바 ‘사회적 임금’을 지급하기로 했던 건데, 정부와 광주시에서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GGM의 상생 모델은 1년여 만에 좌초할 위기에 처했다.

광주글로벌모터스는 상생형 일자리 모델의 시초다.[사진=연합뉴스]
광주글로벌모터스는 상생형 일자리 모델의 시초다.[사진=연합뉴스]

지난해 4월 국내 자동차산업에 중요한 이정표가 세워졌다. 1998년 부산에 삼성자동차 공장을 설립한 이후 23년 만에 처음으로 새로운 완성차공장이 문을 연 것이다. 광주광역시 빛그린국가산업단지에 둥지를 튼 광주글로벌모터스(이하 GGM)가 그 주인공이다. 

대지면적만 60만4338㎡(약 18만3000평)에 이르는 GGM은 ▲뼈대(프레임)를 만드는 차체공장 ▲친환경 도색 시스템을 갖춘 도장공장 ▲최첨단 조립공장 등 3개의 공장으로 구성됐다. 이는 연간 10만대 규모의 차량 생산이 가능한 수준으로 향후 연간 매출액은 747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GGM은 그동안 정부의 각종 경제ㆍ산업 정책에서 상대적으로 배제돼 있던 광주의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발판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물론 GGM이 정식 출범하기까지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처음 GGM의 물꼬를 튼 건 윤장현 전 광주시장이었다. 2014년 지방선거 당시 윤 시장은 광주시의 일자리 창출 모델로 ‘광주형 일자리’ 공약을 내세웠는데, 그중 핵심 정책이 바로 신규 완성차공장을 광주시에 유치하는 것이었다.   

이후 좀처럼 진전이 없던 광주시의 ‘GGM 프로젝트’가 다시 시동을 걸기 시작한 건 2017년부터다. 문재인 정부가 100대 국정과제에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넣고 (광주 지역) 완성차공장 설립을 본격 추진한 거다. 

지역맞춤 일자리 공약에 뿌리를 둔 만큼 GGM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은 안정적인 고용이었다. 정부와 광주시는 노사민정협의회를 발족해 2년간 기업(현대차)과 노조의 이해관계를 조정해 나갔고, 2019년 1월 마침내 노사 만장일치로 ‘GGM 상생안(노사상생 발전협정서)’을 도출했다.  

노사가 협의한 상생안은 여러모로 파격적이었다. 호봉제 대신 시급제를 도입하기로 했고, 기존 완성차공장 근로자들의 절반 수준에 해당하는 연봉(초임 기준 3500만원)을 책정하는 대신 정부와 지자체에서 주거ㆍ교육ㆍ의료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아울러 자동차업계 최초로 ‘무노조’ 경영에도 합의했다. 노사 동수가 참여하는 상생협의회가 노조의 역할을 대신하되 GGM의 누적 생산량이 목표 수준(35만대)에 미치기 전까진 임금과 복지 수준을 사실상 동결하기로 약속했다.

GGM형 상생 모델 실태  

자동차업계의 고질병으로 ‘고임금-저생산 구조’와 ‘강성노조’가 꼽혀온 만큼 GGM의 상생안은 국내 자동차산업의 판을 바꿀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GGM 모델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면 기존 완성차기업은 물론 다른 제조업 분야에서도 기존의 병폐를 개선하는 혁신적인 움직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식 출범 후 1년여가 흐른 지금 GGM의 상생 모델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국내 자동차산업은 물론 제조업계에 만연했던 병폐들이 GGM에선 효과적으로 개선됐을까. 

안타깝게도 현재 GGM은 기대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기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저임금-고강도 노동, 낮은 복지 수준 등의 새로운 문제가 불거지면서 노사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갈등의 원인은 명확하다. 정부와 광주시가 상생안에 담았던 주거ㆍ교육ㆍ의료비(일명 사회적 임금) 지원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어서다. 상생안대로라면 GGM 근로자들은 1인당 600만~700만원의 사회적 임금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실제 GGM이 근로자들에게 지급하고 있는 비용은 1인당 연평균 161만원에 그치고 있다. 당초 약속했던 금액의 20% 수준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근로자들이 가장 큰 혜택으로 기대했던 주거지원정책도 난항을 겪고 있다. 2029년까지 GGM 주변에 1만3000세대 규모의 임대주택을 조성하기로 했던 광주시는 관련 예산마저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광주시는 임시방편으로 다른 지역에 있는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있지만 근로자들은 긴 통근시간, 작은 평수 등을 이유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약속 지키지 않은 정부ㆍ지자체

물론 GGM에서 직원들에게 주거지원비(매달 20만원)를 직접 지원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 대상이 연봉 4500만원 이하 무주택 근로자(193명)로 제한적이다. 전체 직원(620여명)의 30% 남짓만 혜택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GGM 근로자들 사이에선 복지 형평성을 두고 내부갈등의 조짐마저 싹트고 있다.   

GGM이 업계 평균보다 낮은 임금을 상쇄하기 위해 제시했던 사회적 임금 제도가 유명무실해지자 퇴사자도 속출하고 있다. 2020년 3월부터 올 6월까지 50여명에 이르는 직원이 GGM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정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광주 지역 청년들이 GGM 취업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당초 정부와 지자체가 약속했던 광주글로벌모터스 복지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당초 정부와 지자체가 약속했던 광주글로벌모터스 복지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처럼 GGM형 상생 모델이 1년여 만에 위기에 봉착하면서 정치권에선 GGM을 민간에 매각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GGM은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탄생한 국내 최초의 상생형 일자리 모델인 만큼 노사상생과 지역경제 활성화란 가치를 수호해야 할 책무가 있다. 이를 위한 첫걸음은 정부와 광주시가 당초 약속한 지원책을 조속히 이행하는 것이다. 

정부와 광주시의 방관으로 GGM 모델이 무너진다면 앞으로 만들어질 제2ㆍ제3의 상생형 일자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GGM의 미래가 우리나라 고용 문화의 혁신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GGM의 어깨가 무겁다. 바로잡을 시간은 충분하지만, 골든타임은 그리 길지 않을 듯하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 더스쿠프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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