섈 위 아트 | 사유의 풍경展
리서울갤러리가 ‘7월의 전시’로 진행한 이만수 작가의 열여섯번째 개인전. 16일 막을 내린 이번 전시회에서 이 작가는 ‘산조-사유의 풍경’이란 주제로 신작 20여점을 출품했다. 그는 “산과 바다가 보이는 풍경, 자연 속에 유유자적 거닐고 사유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은 은유적 그림들을 통해 현대인의 일상을 바라봤다”고 자평했다.
이 작가의 작품을 보면 신기한 게 많다. 마치 이중섭 화백과 같은 느낌을 준다. 민화民畵 같으면서도 현대적인 필치를 보면 분명 동양화인데도 서양화인 듯하다. 이 때문인지 미술계에서 권위 있는 평론가들이 자청해 그의 작품을 평가하는 모양이다. 그럼 이번 전시회에서 이 작가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작품을 만들었을까. 그의 작가노트를 먼저 읽어보자.
“아주 오래전부터 마당을 쓸거나 서성거릴 때, 그리고 마당을 나서 어디론가 갈 때에 산과 들이 자꾸 내 앞에 나타났다. 대관령과 백두대간을 넘어 다닐 때에도 그러했고 어디를 가더라도 앞과 뒤, 오른쪽과 왼쪽에 산들은 그 자리에 태연하고도 집요하게 펼쳐져 있다. 산 하나를 넘으면 계속해서 다른 산이 나타났으며 끝없이 넘어야 하는 산들이 곤혹스러웠다. 산은 길을 만들고 선을 이루고 있다. 그 길을 따라 생겨났다 사라지는 우리 삶의 모습들이 점점이 박혀 있다.”
이 작가는 지구에 걸쳐진 지표를 따라 만들어진 ‘산’의 개념을 차분하게 설명한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답게 모든 것을 선과 점으로 표현한 게 이채롭다. 설명의 온도는 차분하고 다소 차가울지 모르지만, 그가 붓질을 통해 완성한 그림은 민화란 인식이 들 만큼 포근하다.
극단적으로 감성에 치우쳐 작가노트를 쓰는 젊은 작가와 다른 면모다. 아마도 작가의 연륜에서 자신의 작품을 차분히 들여다보는 담담한 글이 나온 것 같다.
작가가 설명하는 건 ‘산들’만이 아니다. 그는 오행五行(만물을 이루는 다섯가지 요소)에서 바람과 흙이 갖고 있는 흐름과 연결의 함의를 ‘인연’이란 가치에 투영한다. 그의 말을 한번 더 들어보자.
“이 좁은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혹은 욕망의 이름으로 이것과 저것, 앞산과 뒷산을 구별하며 살아간다. 어느 것도 분명히 분별할 수 없는 경계 혹은 두 지점 사이의 공간을 들여다보며 무수히 회전하며 나아간다. 바람이 불어오면 사물들과 몸체 깊숙이 자리한 모든 액체가 일렁거리며 흐른다. 밀려나는 그 무엇들이 항상 있다는 것은 시간이 혹은 그 무엇이 계속 밀고 올 수 있음의 이유가 된다. 밀려오는 것들과 밀려나는 것들은 구별이 없다. 다만 서로를 의식하고 반영하며 순환과 변화를 반복한다.”
이처럼 그는 자연을 보면서 세상의 번잡함을 읽고, 또다시 그 안에서 돌고 도는 법칙을 관조한다. 푸근한 그의 그림은 번잡한 세상에 있으면서도 마치 명상을 하는 듯한 관점에서 그린 듯하다. 그래서 전시 제목이 ‘사유의 풍경’이었을까.
박영택 평론가는 이렇게 말한다.
“조감의 시선 아래 펼쳐진 세계는 자연과 사물, 인간이 바글거리는 기이한 풍경을 선사한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내밀한 추억과 인성에서 차분하고 격조 있게 스며 나오는 이런 그림은 쉽게 접하기 어려운 것이다.”
모든 게 번잡한 세상에서 ‘맨정신’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자신만의 관점’을 오롯이 지키고 싶다면, 이 전시를 추천한다. 때론 차분해지는 것도 답이 될 수 있을 테니까.
김선곤 미술전문기자
sungon-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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