섈 위 아트 | 물심(物心) Mind in Matter展

Meditation 21804, 2001, Tak fiber on cotton, 60.6×72.7㎝.[사진=PKM 갤러리 제공]
Meditation 21804, 2001, Tak fiber on cotton, 60.6×72.7㎝.[사진=PKM 갤러리 제공]

한국 현대미술을 선도한 고故 정창섭 작가(1927~2011년)의 작품전이 PKM 갤러리에서 열린다. 8월 25일부터 10월 15일까지다. 타이틀은 ‘물심(物心) Mind in Matter’다. 이번 전시회의 기획자는 20세기 후반기에 한국적 현대미술을 모색했던 작가의 예술세계를 현재의 시간대로 끌어와 시각예술의 관점에서 재조명했다.

이런 재조명의 중심엔 작가가 사용한 재료인 ‘한지韓紙’가 있다. 한지를 통해 정창섭 작가의 미술철학과 그 철학을 구현하는 과정을 파악했다. 이에 따라 이번 전시회에선 정창섭 작가가 각종 재료의 물질적인 특성을 전통미술과 서양미술 사이에서 어떻게 구현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듯하다. 

‘물심(物心) Mind in Matter’전展의 내용을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자. 일단 정창섭 작가의 시기별 작품들을 볼 수 있다. 한지의 주요 소재인 ‘닥(뽕나뭇과의 낙엽 활엽 관목)’을 원재료로 삼은 1980년대의 ‘닥Tak’ 연작은 눈길을 사로잡는다. 2000년대 초에 제작한 ‘묵고 Meditation’은 정창섭 작가의 후반기 예술세계를 진중하게 보여준다. 

정창섭 작가는 우리나라 현대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가다. 광복 후 1970년대 중반부터 단색화 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명이기도 하다. 작품 인생 30여년간 한국 종이의 단아함과 그것에 내재한 울림을 기반으로 추상회화를 실현했고, ‘정창섭’이란 인물 특유의 명상적인 작품관도 구축했다. 

Meditation 91216, 1991, Tak fiber on canvas, 140×240㎝.[사진=PKM 갤러리 제공]
Meditation 91216, 1991, Tak fiber on canvas, 140×240㎝.[사진=PKM 갤러리 제공]

특히 닥을 이용한 그의 작업은 종이와 시간을 동화시키는 깊은 예술적 경지를 보여준다. 정창섭 작가는 물에 담가 부드럽게 만든 닥 반죽을 캔버스 위에 두손으로 펼친 다음 서서히 응고시키는데, 이 과정에서 작가의 숨결을 종이의 시간에 투영하는 듯하다. 

사실 한국의 단색화는 세계에서도 명성을 떨치고 있다. 정창섭 작가뿐만 아니라 이우환 화백도 손꼽히는 단색화 작가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제조하는 와인 샤토 무통 로칠드(Chateau Mouton Rothschild)의 라벨에 이우환 화백의 작품을 인쇄한 건 한국 단색화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렇게 한국 단색화 작가들에게 세계 미술계의 관심이 쏠리자 정창섭 작가의 독창적 작품세계도 재조명을 받고 있다. 

조용하면서도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갖고 있는 정창섭 작가는 그만큼 예술적 자존심도 강했다. 서울대 미술대학 1회 입학생인 그는 1953년 제3회 국전에 작품명 ‘낙조’로 특선하며 화단에 등단했다. 이렇게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그는 기성 아카데미즘을 수용하지 않았다. 특정 미술단체에 속하지 않은 채 독자적인 개성에 집중하는 작업 활동을 이어갔다.  

Untitled, ca. 1991, Tak fiber on canvas, 73×91㎝.[사진=PKM 갤러리 제공]
Untitled, ca. 1991, Tak fiber on canvas, 73×91㎝.[사진=PKM 갤러리 제공]

그는 1953년과 1955년 국전 특선상, 1993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구겐하임 아부다비 등 세계 유명 미술기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단색화 대가 ‘정창섭’의 가치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고독이 뼛속을 뚫고 들어가더라도 자신의 길을 굳건히 믿고 나아가는 모든 이에게 정창섭 작가의 작품을 추천한다. 


김선곤 더스쿠프 미술전문기자
sungon-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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