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방 피해자의 눈물

주식 리딩방과 같은 사이버피싱이 기승을 부리면서 피해자도 속출하고 있다. 하지만 더디기 만한 수사와 빈약하고 불합리한 규정 탓에 고통을 겪는 피해자가 적지 않다. 문제는 그사이 사기꾼들은 버젓이 사기행각을 벌인다는 점이다. 법과 규제가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식 리딩방과 같은 사이버피싱이 성행하면서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주식 리딩방과 같은 사이버피싱이 성행하면서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고수익을 미끼로 유혹한 후 투자자의 돈을 갈취하는 ‘주식 리딩방’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런 피해는 리딩방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다. 주식 리딩방을 활용한 레버리지 사기, 최근 유행하고 있는 비상장 주식 사기 등 다양한 꼼수가 리딩방에서 나온 것들이다.[※참고: 주식 리딩방에서 파생한 다양한 투자사기는 이후 기사에서 자세하게 다룰 예정이다.] 

투자사기 피해 규모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0년 54건이었던 유사투자자문업자의 불법·불건전행위 적발 건수는 지난해 120건으로 두배 이상 증가했다. 투자사기로 검거된 사기꾼의 수도 늘어났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사이버사기·사이버금융범죄로 검거된 피의자는 1만2070명을 기록했다. 2021년 상반기에 검거한 1만536명보다 14.5% 늘어난 수치다. 피해 금액도 적지 않다. 올 상반기 경찰에서 검거한 전화금융사기의 피해액은 3068억원에 달했다. 한달 평균 511억원의 투자사기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최정미 레버리지박멸단 단장은 “피해액 3068억원은 경찰이 검거한 건수를 기준으로 한 금액”이라며 “아직 검거하지 못했거나 밝혀지지 않은 피해액을 더하면 투자사기로 연 수조원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리딩방 사기에 피해를 입은 이들을 위한 구제책이 빈약하다는 점이다. 주식 리딩방 사기를 당한 정미진(가명·49)씨의 사례를 살펴보자. 정씨는 동학개미운동 열풍이 한창이던 2020년 7월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정씨는 반찬값이라도 벌어보겠다는 생각에 남편 몰래 주식투자에 나섰다. 하지만 ‘주린이’였던 정씨에게 주식투자로 수익을 내는 건 쉽지 않았다. 손실을 만회해야 한다는 생각에 정씨는 3000만원의 빚을 내면서까지 투자를 이어갔지만 손실은 눈덩이처럼 쌓이기만 했다.   

한달 평균 511억원 피해 발생 

그러던 11월 정씨는 자신을 ‘○○투자클럽’ 팀장이라고 밝힌 사기꾼의 전화를 받았다. 자신들이 추천한 종목에 투자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말로 정씨를 유혹했다. 전형적인 주식 리딩방 사기였다. ○○투자클럽을 국내 대형 증권사의 협력업체라고 소개하며 요구한 회원비는 1800만원이었다. 

정씨는 적지 않은 금액에 망설였지만 손실을 만회할 기회로 여기고 나쁜 선택을 하고 말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사기꾼이 알려준 계좌로 1800만원을 입금했던 거다. 하지만 얼마 후 여느 주식 리딩방처럼 사기꾼들은 SNS 오픈 채팅방으로 운영하던 리딩방을 없애고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정씨는 주식 리딩방 사기의 피해자가 됐다. 

사기에 당한 걸 알아차린 정씨는 회원비를 돌려받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금융당국은 “경찰에 신고하라”는 뻔한 답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대포폰과 대포통장으로 영업하는 리딩방 운영자를 잡는 건 쉽지 않다는 얘기만 늘어놨다. 

정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같은 곳에서 사기를 당한 피해자를 모으고, 돈을 입금한 법인 계좌를 추적해 법인명과 대표자 이름까지 확인했다. 이를 근거로 지난해 3월 주식 리딩방 사기꾼들을 사기죄로 경찰에 고발(공동소송)했고,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그런데도 경찰 수사는 빠르게 진행되지 않았다. 경찰이 멈칫하는 사이 사기꾼들은 보란듯이 영업을 계속했다. 참다못한 정씨는 사기꾼들이 사용하는 통장을 ‘보이스피싱 범죄에 사용한 계좌’로 신고했다. 이를 통해 사기꾼의 계좌가 정지되면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정씨는 “보이스피싱 신고로 사기꾼들이 사용하는 계좌가 동결되면 이를 풀기 위해 피해금을 돌려주기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신고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씨의 계획은 ‘부메랑’으로 돌변했다. 사기꾼들이 되레 정씨가 ‘보이스피싱 허위 신고’를 했다고 경찰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정씨는 사기 피해를 막기 위해서였다고 항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황당하게도 법원 역시 사기꾼들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이 밝힌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재화의 공급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는 계좌지급정지의 근거인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정씨는 주식 정보를 제공받았다. 당연히 정씨는 보이스피싱의 피해자가 아니다.” 

결국 정씨는 보이스피싱 허위 신고로 약식기소됐고,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주식 리딩방 피해자가 가해자로 돌변한 셈이다. 허술한 법망이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참고: 보이스피싱 허위 신고를 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조새한 법무법인 지산 변호사는 “주식 리딩방 사기와 같은 사이버피싱에 당한 피해자들이 사기꾼들의 계좌를 ‘보이스피싱’의 입금계좌로 신고하는 건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면서 말을 이었다.

“계좌를 동결시켜야 나중에라도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울며 겨자 먹기’로 보이스피싱 신고라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피해자들이 리딩방과 보이스피싱이 다르다는 걸 잘 알면서도 ‘보이스피싱을 당했다’고 신고하겠냐. 피싱 범죄의 범위를 제한적으로 규정하는 법률이 법의 도움을 받아야 할 피해자를 사기꾼으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불행 중 다행인지, 정씨는 지난 6월 사기꾼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선 승소했다. 하지만 정씨가 피해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을진 알 수 없다. 사기꾼들이 돈을 전부 빼돌렸기 때문이다. 혹자는 ‘채무불이행 소송을 제기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피해금액을 돌려받는 건 아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수사과정에서 범죄자로부터 몰수한 범죄수익은 8351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피해액 3조1282억원의 26.6%에 불과한 수치인데, 실제로 피해자들이 환수한 금액은 더 적을 공산이 크다. 돈을 빼돌린 사기꾼들이 피해자에게 줄 돈이 없다고 주장하면 그만이어서다. 어렵사리 재판에서 이겨도 피해자의 피해를 구제할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조새한 변호사는 “피해 구제를 위해선 수사 당국의 철저한 수사와 조속한 판결이 이뤄져야 한다”며 “형사소송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야 피해자가 구제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죄 판결을 받은 사기꾼들은 형량을 줄이기 위해 피해자와 합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며 “사기꾼이 범죄 수익으로 호의호식할 때 피해자들은 계속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정씨는 지난 3월부터 이혼절차를 밟고 있다. 빚을 내 주식투자를 한 것도 모자라 사기까지 당한 것이 알려지면서 남편과의 불화가 심해졌다. 빚을 어찌 갚을지도 난감한데, 가정까지 파괴된 셈이다. 이게 과연 정씨만의 문제일까. 다음호에선 피해자들이 투자사기를 당하면서 겪은 경험을 인터뷰 형식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다음호에 계속>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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