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스텝 vs 미 연준 스텝

#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이냐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이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앞두고 또다시 예민한 갈림길에 섰다.
 
# 일단 시장은 베이비스텝을 예상하고 있다. 가파른 금리 인상이 경기 둔화를 자극할 수 있어서다. 문제는 미국의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발걸음이다. 미 연준의 스텝에 따라 한국의 스텝이 꼬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오는 8월 25일, 한은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 

8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폭을 두고 시장의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사진=뉴시스] 
8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폭을 두고 시장의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사진=뉴시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다. 8월 25일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통화정책회의를 앞두고서다. 8월 금통위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7월 사상 처음으로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밟은 한은의 향후 금리 인상 속도를 8월 스텝을 통해 어림잡을 수 있다. 


시장에선 금리인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7월 소비자물가상승은 6.3%를 기록했다. 외환위기를 겪고 있던 1998년 11월(6.8%) 이후 23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더 큰 문제는 인플레이션의 장기화다. 7월 기대인플레이션은 4.7%를 기록했다. 6월의 3.9%보다 0.8%포인트 올랐다. 통계를 작성한 2008년 이후 최고치이자 전월 대비 상승폭도 최대치다. 한은의 사상 첫 빅스텝이 기대 인플레이션을 꺾진 못했다는 얘기다. 

[※참고: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8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8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4.3%를 기록했다.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7월의 4.7%보다 0.4%포인트 하락했지만, 인플레이션 공포가 사라진 건 아니다. 향후 1년간 소비자물가가 6% 이상 오를 것이라고 답한 소비자의 비중이 19.2%로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한은이 기준금리를 얼마나 끌어올리느냐다. 한국의 기준금리는 2.25%포인트다. 8월 이후 남은 금통위는 10월(10월 12일)과 11월(11월 24일) 두차례이고, 한은이 밝힌 올해 기준금리 목표치가 2.75~3.00% 수준이란 걸 감안하면 기준금리는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0.25%포인트씩 기준금리를 인상해 기준금리를 목표치인 3.00%로 맞추겠다는 거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베이비스텝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이 총재는 지난 1일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인플레이션 상황이 굳어지면 향후 큰 폭의 금리인상이 불가피해지고 경제 전반의 피해는 더 커질 수 있다”며 “물가와 성장 흐름이 기존의 전망 경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의 전망은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베이비스텝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빅스텝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여전해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점진적인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셌다고 밝혔지만 빅스텝 가능성이 사라진 건 아니다.[사진=뉴시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점진적인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셌다고 밝혔지만 빅스텝 가능성이 사라진 건 아니다.[사진=뉴시스] 

■ 베이비스텝 전망 이유➊ 인플레이션 정점 = 베이비스텝을 전망하는 이유는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었을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미국의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8.5%를 기록했다. 전월 9.1% 대비 둔화한 수치로 시장의 예상치인 8.7%와 비교해도 낮았다.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 국제유가도 최근 하락세로 돌아섰다. 올 2월 3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에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했던 서부텍사스유(WTI)는 지난 15일 6개월 만에 9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두바이유도 지난 17일 배럴당 94.04달러를 기록하며 6월 8일 최고가(117.5달러) 대비 19.9% 하락했고, 브렌트유 역시 같은 기간 배럴당 123.58달러에서 93. 65달러로 24.2% 하락했다. 

국제유가뿐만이 아니다. 올 3월 부셸(27.2㎏)당 1425.2달러까지 치솟았던 소맥 가격은 최근 763.25달러(지난 17일)를 찍으며 고점 대비 절반 가까이 하락했다. 전세계를 괴롭힌 인플레이션이 둔화세로 돌아선 게 아니냐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7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가 시장의 기대치를 밑돌면서 물가가 정점을 찍었다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며 “미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의 금리인상 전망치도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8월 금통위에선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며 “빅스텝 이상의 금리인상으로 리스크를 키울 이유는 없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 베이비스텝 전망 이유➋ 가계부채 = 가계부채 문제도 베이비스텝 가능성을 높인다.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 기조에 차주借主의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져서다. 

한국은행의 예금은행 대출금리(잔액기준)에 따르면, 지난해 6월 3.52%였던 신용대출 금리는 올해 6월 4.52%로 1%포인트 상승했다. 신용대출(만기상환 기준)로 3000만원을 빌린 차주가 매월 갚아야 할 이자가 1년 사이에 8만8000원에서 11만3000원으로 12.8%나 늘어난 셈이다.

한은이 7월 빅스텝을 밟았으니, 이자 부담은 더 불어났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전체 2025만 가구 중 17.2%에 달하는 354만 가구가 소득의 99%를 빚을 갚는 데 쓰는 ‘적자 가구’라는 분석 결과도 있다(한국금융연구원). 

지난 7월 한은의 빅스텝을 예상한 한상일 한국기술교육대(산업경영학) 교수는 “한은이 급하게 금리를 인상하진 않을 것”이라며 말을 이었다. “8월 금통위에선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후 9월 미 연준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살필 가능성이 높다. 무리해서 금리를 높일 필요성은 없어 보인다. 섣불리 금리를 인상할 경우 가계부채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서다.” 

■ 베이비스텝 전망 이유➌ 경기침체 우려 = 갈수록 커지는 경기침체 가능성도 기준금리 인상폭을 제한하는 요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7월 우리나라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2.3%로 낮췄다. 정부도 지난 6월 제시한 전망치 2.6%를 더 낮출 것으로 보인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최근 올해 GDP 성장률 전망치를 2.3%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한은이 빅스텝을 밟지 않을 것이란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변수는 또 있다. 4월 이후 줄곧 하락세를 타고 있는 소비자심리지수다. 지난 4월 103.8포인트를 기록했던 소비자심리지수는 5월 102.6포인트, 6월 96.4포인트, 7월 86.0포인트로 낙폭을 키우고 있다. 

코로나19 거리두기 해제로 5월 106.7로 반짝 상승했던 경제심리지수는 7월 97.8로 떨어졌다.[※참고: 경기심리지수가 100을 밑돌면 민간과 기업 등 경제주체들이 과거보다 경기가 나빠졌다고 느끼고 있다는 의미다.]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빅스텝이 아닌 베이비스텝을 밟을 가능성에 주목하는 이유다. 

조용구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한은이 추정하는 중립금리가 2.25~2.75%포인트 예상되는 만큼 제약적인 수준의 금리 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며 “경제성장률 둔화 가능성도 베이비스텝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기 때문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인상할 공산이 크다”고 분석했다. 

■빅스텝 전망 이유➍ 한미 금리 역전 = 그렇다고 한은의 빅스텝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변수는 당연히 미 연준이다. 연준이 지난 17일 공개한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있었다.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고 있다는 증거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7월 CPI가 발표되기 전의 의견이지만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는 연준의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방증으로 풀이할 만한 내용이다. 미 연준이 9월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까진 아니더라도 빅스텝은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이 예상대로 미 연준이 9월에 빅스텝을 밟으면 8월 한은이 베이비스텝으로 밟더라도 한미 간 기준금리가 또 벌어진다. 

좀 더 쉽게 설명해보자. 현재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는 각각 2.25%, 2.25~2.50%다. 상단 기준으로 미국의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높다. 8월 한은이 베이비스텝을 밟으면 한미 금리가 같아진다. 예상과 달리 빅스텝을 선택한다면, 한미 금리가 0.25%포인트 재역전된다. 

이런 상황에서 9월 미 연준이 빅스텝을 밟으면 한미 기준금리는 또다시 0.5%포인트 역전된다. 10월과 11월 한은이 두번 연속 베이비스텝에 나서도 11월 연준이 빅스텝을 밟으면 한미 금리차는 0.5%포인트 선을 유지하고, 12월 연준이 0.25%포인트 인상하면 한미 금리차는 0.75%포인트로 벌어진다. 

이렇게 한미 금리차가 벌어지는 건 우리에겐 달가운 소식이 아니다. 한미 금리가 크게 역전된 상황에서 경기둔화세가 뚜렷해지면 외국인 자본이 한국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 있어서다. 

성태윤 연세대(경제학) 교수는 “한미 금리 역전 현상이 장기화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대비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시장의 기대 인플레이션이 역대 최고치로 높은 데다 인플레이션이 반영되는 시기도 미국보다 늦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금리차를 좁히기 위해 빅스텝을 밟는 방안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처럼 한은은 어떤 선택을 할지 두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 경기, 인플레뿐만 아니라 미 연준의 스텝까지 고려해야 해서다. 8월 한은은 어떤 스텝을 밟을까.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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