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상기 한국경제 현주소

한국경제가 복합위기에 처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한국경제가 복합위기에 처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금리인상 고삐를 더 강하게 조일 전망이다. 문제는 우리나라다. 금리인상으로 인한 경기침체가 현실화하고 있어서다. 원·달러 환율과 외국인 자본 유출 우려에 금리를 더디게 올리는 것도 어렵다. 그러니 당장 빚이 있는 취약계층의 삶이 걱정이다. 혹독한 계절, 우리는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8.2%, 지난 13일(현지시간) 미 노동부가 발표한 미국의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다. 8월 8.3%보다 0.1%포인트 떨어졌지만 시장 전망치 8.1%는 웃돌았다. 미국의 CPI는 7월 8.5%를 기록한 뒤 3개월째 8%대를 유지하고 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 의장은 세차례 연속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결정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뜨겁다”고 밝혔는데, 그의 판단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세부 수치는 더 심각하다. 미국의 9월 근원 CPI는 전년 동월 대비 6.6% 올랐다. 19 82년 6월(8.7%) 이후 40년 만에 최고치로, 3월에 기록한 연중 최고치인 6.5%도 0.1%포인트 웃돌았다.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에도 인플레이션이 좀처럼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거다. 

당연히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연준의 매파적인 기조는 더 강해질 공산이 크다.[※참고: 근원 물가지수는 현행 소비자물가에서 곡물 이외의 농산물·석유류(▲휘발유 ▲경유 ▲등유 ▲도시가스 등)를 제외하고 산출한 물가지수다.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개발한 지표다. 식료품·에너지 가격 등 중앙은행에서 통제할 수 없는 변수를 배제하면 통화량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어서다(더스쿠프 516호 SCOOP Econopedia 참조).]

인플레이션 때문인지 시장 관계자들은 11월 1~2일 열리는 FOMC에서 연준이 자이언트스텝 이상의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Fed Watch)에 따르면, 지난 13일(현지시간) 연방기금(FF) 선물시장 관계자들은 11월 FOMC에서 자이언트스텝을 밟을 가능성을 99.0%로 전망했다. 나머지 1.0%는 울트라스텝(기준금리 1.00%포인트 인상)을 예상했다.

■딜레마➊ 금리 인상하자니… = 문제는 우리나라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高에 휩싸인 우리나라도 연준의 보폭에 맞춰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어서다. 관건은 인상폭이다.

시장에선 한은이 10월에 이어 두차례 연속 빅스텝을 밟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 연준이 시장의 예상대로 11월 FOMC에서 자이언트스텝을 밟으면 0.25%포인트(한국 3.00%, 미국 상단 기준 3.25%)로 좁혀진 한미 금리차가 1%포인트로 벌어질 수 있어서다. 

게다가 한은의 올해 마지막 금통위는 11월 24일 열린다. 연준의 FOMC는 12월 한차례 더 남아있다. 11월 금통위에서 금리차를 조금이라도 좁혀놓지 않으면 연말 한미 기준금리차가 1%를 웃돌 가능성이 높다. 

이는 한국경제엔 독이다. 과도한 한미 금리격차는 외국인 투자금의 유출로 이어질 공산이 커서다. 조짐은 벌써 나타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9월 외국인 투자자는 주식·채권시장에서 각각 2조3330억원, 9800억원을 순매도했다. 한편에선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현재의 일반론이다. 

국내 주식을 가장 많이 순매도한 국가는 최근 금융위기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는 영국이었다. 영국 투자자는 9월 외국인 투자자 주식 순매도 금액(2조3330억원)의 94.3%에 해당하는 2조2020억원어치의 국내 주식을 팔아치웠다. 벌어진 한미 금리격차에 자국 내 이슈까지 더해지면 외국인 투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 있다는 걸 시사하는 사례다. 

이런 위험요인을 막기 위해 한은이 11월 금통위에서 빅스텝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건데, 그렇다고 기준금리를 마냥 인상하는 것도 골칫거리다. ‘3고’ 영향으로 빠르게 식고 있는 국내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무엇보다 금리 인상으로 시장에서 돈이 빠지면(유동성이 줄면) 경기는 그만큼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가계부채 문제도 가파른 금리인상의 리스크 중 하나다. 9월 한은의 빅스텝으로 기준금리는 2012년 9월(3.00%) 이후 10년 만에 3%대로 올라섰다. 기준금리가 치솟자 대출금리는 더 가파르게 상승했다.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금리 평균은 이미 6%를 넘어섰다(은행연합회 9월 기준 평균 6.16%).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주택담보대출 8%대 시대도 이제 시간문제가 됐다. 빚이 있는 차주借主의 원리금 상환부담이 더 커질 게 뻔해진 셈이다. 이는 민간 소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경기침체를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딜레마➋ 금리 동결하자니… = 그럼 기준금리를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에 바로 한국경제의 딜레마가 숨어 있다.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올리지 않아도 문제가 있어서다. 무엇보다 금리인상이 아니면 1400원대를 넘어선 원·달러 환율을 억제할 방법이 없다. 환율은 수입물가 상승 압력을 높여 인플레이션을 더 자극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산유국의 감산 기조 등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요인도 숱하다. 

기준금리 인상이 걱정스러운 이유는 또 있다. 취약계층이 붕괴할 수 있다는 거다. 한국은행이 지난 6월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올 1분기 채무상환능력이 취약한 차주의 비중은 6.3%로, 2021년 말 6.0%보다 0.3%포인트 커졌다.

이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6.4%와 비슷한 수치이지만 취약차주의 상황은 더 악화했을 공산이 크다. 2020년만 해도 기준금리가 0.5%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해 9월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도 4.09%로, 올해 9월 6.16%보다 2.05%포인트나 낮았다.

이처럼 금리를 올려도 걱정, 가만히 있어도 고민인 지금, 정부의 재정정책과 한은의 통화정책은 어떻게 돌아가야 할까. 대부분의 경제 전문가는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에 정책 방향을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박상인 서울대(행정대학원) 교수는 “한국경제가 복합위기에 직면한 건 사실”이라며 “금리를 인상하는 통화정책과 감세를 추진하는 재정정책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것도 위기를 자극하는 요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지금은 인플레이션을 잡는 게 급선무”라며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인플레이션을 잡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거다. 

한상일 한국기술대학교(산업경영학) 교수는 “미국의 금리 인상에 맞춰 기준금리를 끌어올리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라며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침체는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취약계층의 붕괴를 막아주는 사회적 안전망을 좀 더  두껍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경기가 침체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상일 교수는 “지금 정부가 해야 할 것은 취약층을 위한 복지정책을 강화하는 것”이라며 “취약계층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위험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리 인상기는 혹독한 계절이다. 물가를 잡기 위해선 시장에서 돈을 빼내야 하고, 돈을 빼내면 시장(경기)이 위축될 수밖에 없어서다. 지금 발표되는 경제지표를 볼 때 이 혹독한 계절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이 계절을 견딜 수 있는 이와 견디지 못하는 이가 구분돼선 안 된다는 거다. 정부가 경제지표 밑단에 깔린 민생의 흐름을 제대로 읽어야 하는 이유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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