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경제 2편
2008년 vs 2022년 직장인 물가
월급보다 빠르게 오르는 물가

꼬꼬경 파트❶에서 봤듯 시장에 돈을 마구 푼 대가는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랐다는 점이다. 이제 7000원짜리 점심밥을 찾는 게 일이 됐고, 영화 한편에 팝콘을 먹으려고 해도 2만원을 각오해야 한다. 더스쿠프가 2008년과 2022년 중소기업 3년차 직장인 성욱씨의 하루를 비교해봤다.

그때나 지금이나 고물가 탓에 직장인들의 시름이 깊다.[사진=연합뉴스]
그때나 지금이나 고물가 탓에 직장인들의 시름이 깊다.[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인 노성욱씨. 친구들과 대기업 취업을 준비하던 그는 좁은 문을 끝내 뚫지 못하고 중소기업으로 눈을 돌려 취업에 성공했다. 그게 2006년이니 벌써 3년차다. 그는 취업과 동시에 회사 근처에 작은 원룸을 얻어 독립한 자취 3년차이기도 하다. 금융위기 여파로 고물가가 이어지던 2008년 7월, 성욱씨의 하루로 들어가 보자.

오늘도 정신없이 하루를 시작했다. 지난밤 회사 입사 동기들과 술을 거하게 한잔하고 늦잠을 자버린 탓이다. 회사까진 버스로 세 정거장이지만 숙취로 비몽사몽인 그에게 오늘 같은 날은 회사 가는 길이 천리길보다 멀다. 이런 날은 어김없이 택시가 그의 발이다. 그가 사는 빌라 주차장에 벌어놓은 돈을 탈탈 털어 구입한 애마가 있지만 비싼 기름값 때문에 몇달째 주말에만 끌고 다니고 있다.

출근 시간을 30분 남겨두고 부랴부랴 택시에 몸을 실은 성욱씨가 슬며시 눈을 감고 지난밤의 기억들을 떠올리는 사이, 택시는 벌써 회사 앞에 다다랐다. 지갑에서 카드를 건네고, “결제됐습니다”라는 택시기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차에서 내렸다. 시계를 보니, 아직 10분 정도 여유가 있다. 눈꺼풀은 여전히 천근만근이지만 1층 스타벅스에 들러 해장용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무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으니 옆자리의 동료들은 기름값이 너무 올랐다며 열띤 토론 중이었다. “이러다 휘발유 가격이 2000원까지 오르는 거 아니냐”는 말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한 선배는 재테크 목적으로 사둔 신도시 집값이 자꾸 떨어져 잠이 안 온다고 토로했다. “언젠간 다시 오를 것”이라며 갖고 있으라는 동료의 말에도 그 선배는 “갖고 있는 게 최선인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부동산 토론은 점심시간 중식당에서도 이어졌다. 가진 거라곤 월세 보증금이 전부인 성욱씨의 귀에 그런 얘기들이 들려올 리 없다. 식사 후에 그는 슬그머니 동료들 무리에서 빠져나와 편의점으로 향했다. 담배 한갑을 사들고 나온 성욱씨는 인근 벤치에 앉아 여자친구와 통화하며 저녁 데이트 약속을 잡았다. 연일 이어진 술자리 탓에 토라진 여자친구를 달래기 위해 오늘은 모처럼 영화를 보기로 했다.

퇴근 후 그가 향한 곳은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 성욱씨는 얼마 전 개봉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보고 싶었지만 이준익 감독의 팬인 여자친구가 택한 영화는 ‘님은 먼 곳에’였다. 영화관을 나와서도 영화 속 노래를 흥얼거리는 여자친구와 들른 곳은 두 사람이 자주 가는 고깃집이다.

삼겹살 2인분에 소주 한병을 시켜놓고 영화감상평을 늘어놓다가 이번엔 대화의 주제가 ‘결혼’으로 흘렀다. 캠퍼스커플로 만나 5년째 연애 중이지만, 모아놓은 돈이 없는 그에겐 늘 무겁고, 부담스러운 화제가 아닐 수 없다. 그가 불편해하는 걸 눈치챘는지 여자친구가 “이제 그만 일어나자”며 그를 팔목을 잡았다. 성욱씨는 남은 소주 한잔을 털어 넣고 음식값을 계산했다.


주말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뒤 여자친구는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그는 무거운 몸과 마음을 버스에 싣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온 성욱씨는 아침에 몸만 빠져나오느라 어지럽게 흐트러진 침대에 다이빙하듯 몸을 뉘었다. 

이날 하루 성욱씨는 얼마를 썼을까. 그의 하루를 되짚어보며 가계부를 써보자. 그가 아침 출근길에 쓴 돈은 택시요금 1900원과 스타벅스 아메리카노(tall 사이즈) 3300원이다. 점심시간엔 중식당에서 4000원짜리 자장면을 먹었고, 편의점에서 담배(디스플러스)를 사며 2100원을 지불했다. 여자친구를 만나러 갈 땐 지하철을 이용했다. 요금은 900원.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영화표 2장을 끊는 덴 1만4000원을 썼다. 고깃집에선 삼겹살 2인분에 2만원, 소주 1병에 3000원, 총 2만3000원을 냈다. 귀가할 때 탄 버스요금은 900원이다. 이날 그가 쓴 돈은 총 5만100원이다.

그렇다면 2022년의 성욱씨는 얼마를 쓰고 있을까. 금융위기로 고물가 기조가 이어지던 2008년 못지않게 2022년 현재도 고물가 국면이다. 2008년엔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대비 4.7% 상승했는데, 올해는 지난 6월 기준 전년 동월 대비 6.0% 상승했으니 그때보다 더 무서운 고물가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생활물가지수는 그보다 높은 7.4% 상승률을 기록하며 서민들을 옥죄고 있다.

2022년 성욱씨도 고물가의 덫에서 허우적거리긴 마찬가지다. 이번엔 2022년 7월, 성욱씨의 가계부를 들여다보자. 조건은 2008년과 똑같다. 성욱씨가 아침 출근길에 탄 택시요금은 그간 몇차례 인상을 거쳤다. 2008년 1900원이던 기본요금은 이듬해인 2009년 2400원으로 올랐고, 2013년엔 다시 3000원으로 인상됐다. 2019년엔 지금의 3800원으로 올라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14년 새 두배가 오른 거다. 

해장용으로 마신 스타벅스 커피 가격도 현재의 4500원이 되기까지 몇번의 인상이 있었다. 2008년 3300원이던 값이 2011년 3600원으로 올랐고, 2012년엔 1년 만에 300원이 더 올라 3900원이 됐다. 2014년엔 이를 4100원으로 끌어올렸고, 7년여 동안 유지되던 가격은 올 초 400원이 올라 4500원이 됐다.

치솟는 물가에 음식값도 속절없이 오르고 있다. 점심 밥값은 최근 몇 달 새 무섭게 올라 7000원 아래로 찾는 게 ‘일’이 됐다. 이날 성욱씨가 점심에 직장 동료들과 먹은 자장면 가격도 7000원이었다. 담뱃값도 2015년 이후 일괄적으로 크게 올라 2008년 2100원이던 디스플러스 한갑이 현재 4100원이다. 

여자친구를 만나러 갈 때 탔던 지하철 요금도 900원에서 1250원으로 올랐다. 영화관람료(CGV 기준)는 둘이서 1만4000원이었는데, 이젠 한장 값이 1만4000원이어서 둘이 보려면 2만8000원이 필요하다.

그나마 평일 관람료라서 그렇지 주말에 3D 영화라도 볼라치면 1인당 1만9000원을 내야 한다. 영화관들이 연이어 가격을 줄줄이 끌어올린 결과다. 지난 CGV는 지난 4월 영화관람료를 1만3000원(평일 요금 기준)에서 1만4000원으로 올렸고,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도 지난 7월 1000원씩 인상했다. 

외식비도 크게 뛰었다. 성욱씨 커플이 먹은 삼겹살은 2022년 현재 1인분에 1만7000원이다. 소주도 음식점에서 1병에 5000원씩 받는다. 어디 이뿐일까. 치킨은 2만원 시대(BBQ 기준)가 열렸고, 패스트푸드 햄버거도 서민들의 지갑을 더욱 가볍게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탔던 시내버스 요금은 1200원. 그가 쓴 돈은 모두 8만8850원이다. 그나마 교통비와 공공요금을 억제하고 있어 이 정도인데, 그것마저 빗장이 풀리면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막막하다.

그렇다면 버는 돈도 그만큼 늘었을까. 통계청에 따르면 정규직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2008년 212만6000원이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성욱씨의 월급도 여기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현재 평균 임금은 333만6000원이다. 14년 새 56.9 % 인상됐다. 성욱씨가 쓴 돈은 14년 전보다 77.3% 늘었다. 월급도 늘었지만 그보다 빠르게 오르는 물가 탓에 고단한 하루가 이어지고 있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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