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물가관리 정책 허와 실
배반의 장미… 믿을 기업을 믿어야지

물가의 높고 낮음은 민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고물가 국면에서 정부의 물가관리 능력이 중요한 이유다.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물가 대책은 ‘시장친화적 물가관리’다. 기업의 팔을 비트는 대신 지원책을 사용해 물가를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숱한 기업이 혜택은 혜택대로 누리고 가격은 가격대로 올리고 있다. 한편에선 기업판 배반의 장미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다른 한편에선 ‘믿을 기업을 믿어야지’란 비판도 나온다. 

정부의 수입관세 인하와 지원 정책에도 식품업계는 가격을 인상하기에 바빴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정부의 수입관세 인하와 지원 정책에도 식품업계는 가격을 인상하기에 바빴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7%였다(통계청). 6월(6.0%), 7월(6.3%)과 비교하면 상승률이 둔화했지만, 안심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장바구니 물가’로 통하는 신선식품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14.9%(7월 13.0%), 전기ㆍ가스ㆍ수도 등 공공요금은 15.7% 상승해서다.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던 7월과 같은 수치다. 

이런 고물가 국면에서 정부가 선택한 방법은 ‘시장친화적 물가관리’다.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는 대신 생산자가 원가를 절감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가격 인하를 유도할 뿐만 아니라 가격 인상 가능성을 억제하겠다는 거다.

정부가 시장친화적 물가관리 방안을 내놓은 것은 지난 5월이다. 기획재정부는 5월 31일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긴급 민생안정 10대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시장친화적 물가관리에 나섰다.

정부가 대책을 내놓은 분야는 ▲생활·밥상물가 안정 ▲생계비 부담 경감 ▲중산층과 서민층 주거 안정 등 세가지다. 그중 생활·밥상물가 안정 대책을 살펴보자. 큰 틀은 원료재료비 부담 완화다. 수입 원가를 낮춰 밥상물가의 상승 압력을 낮추겠다는 거였다.

이를 위해 22.5~25%를 적용했던 수입 돼지고기의 관세를 0%로 인하했고, 각각 1.8%와 3%였던 밀과 밀가루의 관세도 제로로 낮췄다(2023년까지). 김치ㆍ된장ㆍ고추장ㆍ간장을 비롯한 개별포장된 가공식품의 부가가치세(10%)도 2023년까지 면제하기로 했다.

더불어 밀가루 가격 상승분의 70 %를 정부가 지원해 제분업계의 밀가루 가격 인상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7월에는 관세 인하 품목을 소고기ㆍ닭고기ㆍ분유ㆍ대파 등으로 확대했다. 

그렇다면 정부의 시장친화적 정책은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됐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효과는 크지 않았다. 무엇보다 밥상물가가 여전히 들끓고 있다. 부가가치세가 면제된 김치가격은 10% 가까이 올랐거나 인상될 예정이다.

일례로, CJ제일제당은 지난 15일 ‘비비고’ 김치 가격을 평균 11.0%가량 인상했고(유통채널별), 대상은 10월부터 ‘종가집’ 김치 가격을 평균 9.8% 올릴 예정이다. CJ제일제당과 대상이 지난 2월과 3월(대상) 가격을 각각 올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들어서만 두번째 인상이다.

정부가 시장친화적 물가관리에 나섰지만 소비자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사진=뉴시스] 
정부가 시장친화적 물가관리에 나섰지만 소비자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사진=뉴시스] 

서민식품으로 불리는 라면 가격도 줄줄이 오르고 있다. 농심이 지난 15일 평균 11. 3% 인상한 데 이어 팔도와 오뚜기도 10월부터 라면 제품의 가격을 각각 평균 9.8%, 11.0%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외식가격도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4.8%(전년 대비)를 기록했던 외식 물가상승률은 올해 8월 8.8%로 뛰어올랐다. 여기에 9월 초 추석 대목을 앞두고 한반도를 덮친 태풍 ‘힌남노’가 남긴 피해가 적지 않다는 걸 감안하면 밥상물가는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시장친화적 물가관리의 효과에 물음표가 달리는 이유다. 

반면 기업은 가격인상의 호재를 톡톡히 누릴 공산이 크다. 언급했듯 가격을 인상한 라면업계는 이미 양호한 실적 성장세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오뚜기의 올해 2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연결재무제표 기준)은 전년 동기 대비 30.4% 늘어난 861억원을 기록했다.

농심과 삼양식품의 당기순이익 역시 같은 기간 28.7%(473억원→609억원), 95.4%(240억원→469억원)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품 가격까지 올렸으니, 매출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주요 증권사가 가격 인상에 나선 식품업계의 주가 상승을 점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7월 개편안을 발표한 정부의 법인세 인하효과가 기대되는 곳도 있다. 그중 대표적인 건 국내 밀가루(가정용) 시장점유율 64%(올 2분기 기준)를 기록 중인 CJ제일제당이다. 이 회사가 지난해 기록한 법인세 차감전 당기순이익은 1조2177억원이다. 정부가 지난 7월 발표한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25%→22%) 혜택을 누릴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회사 관계자는 “식품사업 부문의 매출이 증가한 건 맞지만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고, 에너지 가격이 치솟은 탓에 원가 부담이 높아졌다”며 “원가 절감 등의 노력을 계속하고 있지만 원가 부담을 해소하는 게 여의치 않아 가격 인상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기업들이 법인세 인하, 관세 인하, 세제 지원 등 혜택은 혜택대로 누리고 가격을 올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사실 정부의 시장친화적 물가관리의 효과에 의문부호가 달린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가 ‘긴급 민생안정 10대 프로젝트’를 발표했던 지난 5월 김상조 한성대(경제학) 교수는 “과거 이명박 정부가 사용했던 ‘MB물가지수’와 크게 다른 점이 없다”며 “정부가 기대하는 만큼 물가상승률 인하 효과가 나타날지도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참고: 당시 정부는 ‘긴급 민생안정 10대 프로젝트’ 정책으로 소비자물가상승률이 0.1%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가 소비자물가 인하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한 기간은 올해 8월부터 2023년 7월까지다.]

김영훈 경제지식네트워크 사무총장도 비슷한 의견을 내비쳤다. “윤 정부가 지난 5월 의결한 36조4000억원의 추경안(지방교부세·교부금 정산 23조원 제외) 중 생활물가 안정 지원에 사용하는 실질적인 예산은 3000억원에 불과하다. 이 정도로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물가를 잡기엔 역부족일 것이다. 시장친화적인 물가관리를 얘기했지만 물가가 더 치솟으면 시장을 통제하는 방법을 선택해야 할지 모른다.”

[※참고: 정부는 2조8000억원 규모의 취약계층 생계비 경감 예산도 물가안정 예산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두 경제전문가의 주장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9일 열린 민생물가 점검 회의에서 가격을 인상한 식품업계에 경고장을 날렸다. “많은 경제주체가 물가상승 부담을 감내하고 있다. 가공식품업계도 생산성 향상을 통해 인상 요인을 최소화해 달라.” 

한발 더 나아가 추 부총리는 “부당한 가격 인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현안 분야별로 담합 등 불공정행위 여부를 소관 부처와 공정거래위원회가 합동 점검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반대로 말하면, 시장친화적 물가관리가 시장에 먹히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서민의 삶을 힘들게 만드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민의 삶을 힘들게 만드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상일 한국기술교육대(산업경영학) 교수는 “물가를 잡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며 “시장친화적 물가관리는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메시지 정도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나타나고 있는 인플레이션은 공급망 이슈와 전쟁 등 외부적인 요인이 크다”며 “시장친화적 물가관리 정책으로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시장친화적 물가관리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기업이 정부의 정책 방향에 공감하고 정부가 예상한 대로 움직여야 한다. 가령, 부가가치세를 인하해주면, 그만큼의 가격인상을 억제해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지금 어떤가. 기업을 두고 “혜택 누릴 건 다 누리고 가격 올릴 건 다 올린다”는 조롱 섞인 말이 나온다. 과연 윤 정부는 믿을 기업을 믿은 걸까. 현재로선 알 수 없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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