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에서 맞이한 색다른 추석

# 처서가 지났습니다. 신기하게 아침, 저녁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창문을 열고 자다가 제법 쌀쌀해진 기운에 깨기도 합니다. 선풍기를 넣고 이불을 꺼냅니다. 하늘은 파랗고 높아졌습니다. 정말 가을이 왔나봅니다. 

# 가을을 찍어 볼 요량으로 길을 나섭니다. 살갗에 스치는 선선한 가을 기운을 어찌 표현해야 할까요. 작업실 근처를 어슬렁거립니다. 단골 소재가 있습니다. 나뭇잎입니다. 조금씩 색을 바꿔가는 벚꽃잎을 찾았습니다. 나무에 매달린 잎을 열심히 찍어봅니다. 바람에 흔들려 초점이 잡히질 않습니다. 다른 잎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몇번의 촬영 끝에 나무에게 마음 속 목소리를 조용히 건넵니다. ‘미안해. 나뭇잎 하나만 따갈게.’ 

# 나뭇잎 하나를 들고 작업실로 들어왔습니다. 조명을 활용해 색이 변하는 모습을 선명하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두리번거리다 검정 책상을 봅니다. 동그란 구멍 하나가 뚫려 있습니다. 전기선을 빼기 위한 용도입니다. 그 위에 나뭇잎을 올려두고 밑에서 조명을 비춰봅니다. 타원형의 삐죽삐죽한 잎이 동그랗게 변했습니다. 

# 신기한 모습입니다. 초록에서 노랑으로 물들어가는 색이 오묘합니다. 동그란 모양이 알 같기도 하고 보름달 같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추석입니다. 가을이랑 추석, 추석이랑 보름달, 보름달과 나뭇잎. 의미가 맞아갑니다. 생각과 우연이 겹친 결과물입니다. 나뭇잎은 그렇게 보름달이 됐습니다. 불 꺼진 스튜디오 구석에서 색다른 추석을 맞이합니다.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사진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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