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야 또 채울 수 있습니다.

# 몇번의 비바람이 몰아치고 천둥번개가 지나갑니다. 가을색을 뽐내던 나무는 이제 앙상한 가지만 드러냅니다. 봄 햇살에 태어난 잎들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매해 이맘때면 떨어지는 잎을 보며 공연히 싱숭생숭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 비가 한바탕 쏟아진 뒤 공원길을 걷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마지막 남은 잎만 보였을 겁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미국의 작가 O.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를 떠올리겠지요. 아마도 ‘삶에 대한 희망을 잃지 말자’ 이런 식으로 생각이 흘러갔을 겁니다.

# 이번엔 달리 보입니다. 남은 잎이 아닌 빈 공간이 보입니다. 잎들이 매달려 있던 저 공간에서 내년 봄이면 생명이 움트겠지요. 또다시 햇살을 막고 그림자를 드리워 줄 정도로 빽빽하게 자랄 것입니다. 

# “비워야 채운다”. 스스로를 너무나 몰아치고 있던 제게 언젠가 지인이 건넨 말입니다. 당시엔 채우고 채워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몰두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인생은 단 한번의 선택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 마음속으로 가을에게 작별 인사를 건넵니다. 잘 보내줘야 겨울, 그리고 다시 봄이 올 테니까요. 그렇게 비우고 또 채우는 게 인생인 듯합니다.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사진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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