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G도 이 모양인데 웬 6G”
세계 최초에 매몰된 품질

# 정부가 지난 9월 말 세계 최초로 6G 서비스를 시연하겠다고 공언했다. 5G 상용화에 처음 성공한 것처럼, 이동통신강국의 위상을 굳건히 지켜내고 미래 먹거리도 함께 찾겠다는 게 정부의 포부다. 

# 하지만 통신 소비자 입장에선 생뚱맞은 플랜이다.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5G의 서비스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웬 6G냐는 거다. 다음 세대 기술이든 뭐든 5G의 품질부터 끌어올리는 게 먼저가 아니냐는 지적도 쏟아진다. 

# 5G 품질을 둘러싼 논란이 해소되지 않은 지금, 정부는 왜 6G란 청사진을 내던진 걸까. 정부가 6G 플랜에 숨은 ‘속도전’의 불편한 민낯을 취재했다.

정부가 세계 최초 6G 상용화 도전에 나섰다.[사진 게티이미지뱅크ㆍ더스쿠프 포토]
정부가 세계 최초 6G 상용화 도전에 나섰다.[사진 게티이미지뱅크ㆍ더스쿠프 포토]

“지금으로부터 3년 후인 2025년, 6G 원천기술 개발을 완료한다. 2026년엔 6G의 핵심 기술 중 하나인 저궤도 위성통신을 운영한다. 같은해엔 6G 표준특허를 선점해 세계 최초로 ‘프리 6G’ 서비스를 시연한다.” 

지난 9월 28일 정부가 발표한 6G 미래 플랜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만든 ‘대한민국 디지털 전략’에 담긴 내용이다. 2019년 4월 3일 밤 11시 세계 최초로 5G를 상용화한 업적을 달성한 것처럼, 글로벌 6G 시장에서도 첫 테이프를 끊겠다는 거다. 

야심찬 계획이지만 5G에 가입한 소비자 입장에선 생뚱맞게 들린다.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자랑스러운 ‘한국 5G’를 LTE 요금제보다 비싸게 이용하고 있는데, 만족도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최근 국내 이동통신서비스 이용행태 분석’에 따르면, 5G 이용자의 만족도(46.0%)는 LTE 이용자(52.0%)와 알뜰폰 이용자(63.0%)에 한참 못 미쳤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이동통신3사가 5G 전국망 구축을 완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디지털 전략’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2024년 상반기 중 5G 전국망을 완성하겠다는 계획을 함께 내놨지만, 되레 비판만 받았다. 상용화한 지 4년이 지났는데도 ‘전국망 5G’를 2년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전국망 5G’를 구축하는 주파수 대역대가 3.5㎓라는 건 더 심각한 문제였다. 3.5㎓ 대역에서 데이터 전송속도는 LTE 대비 고작 3~4배 빠를 뿐이어서다. 정부와 이동통신3사가 5G 론칭 당시 홍보했던 ‘LTE 대비 20배 빠른 진짜 5G’는 28㎓ 주파수 대역에서 가능하지만, 이번 플랜에선 제외됐다.

[※참고: 2018년 주파수 할당 당시 이통3사는 28㎓ 기지국을 4만5000대 설치하기로 약속했지만, 실제로 구축한 건 2000여대다(2022년 8월 기준). 이중 지하철 와이파이용 기지국이 1526개로, 일반 기지국은 전국에 531개뿐이다. 통신 소비자가 아닌 기업을 대상으로 삼은 기지국이 대부분인 셈이다.] 

이동통신업계 관계자는 “28㎓ 주파수 특성상 커버리지 범위가 넓지 않아 전국망 구축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는데도 정부와 이통사가 5G 성과 올리기에 급급해 서둘러 밀어붙였다”면서 “지금은 정부와 이통3사가 소비자에게 28㎓ 대역의 한계를 다시 설명하고 이에 맞춰 새로운 구축 전략을 논의해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이통3사는 아직 전국망 5G 인프라 구축을 달성하지 못했다.[사진=뉴시스]
이통3사는 아직 전국망 5G 인프라 구축을 달성하지 못했다.[사진=뉴시스]

속도와 품질을 둘러싼 불만이 폭발하다 보니 최근 5G 가입자 증가세는 주춤한 모습을 보인다. 지난 8월 말 기준 5G 가입자는 2571만4871명으로 집계됐다. 7월(2513만2888명) 대비 58만1983명 늘어났다. 지난 4월부터 5개월 연속 가입자 순증 50만명대를 넘어서지 못한 셈이다.

매월 60만~100만명의 새 가입자를 확보했던 지난해와는 온도차가 확연하다. 6G를 곱지 않게 바라보는 소비자가 숱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5G도 인프라를 계획대로 구축하지 못했는데, 6G를 준비하는 게 앞뒤가 맞는 행보냐”는 거다. 

물론 냉정하게 따져보면 6G 기술 연구ㆍ개발(R&D)에 먼저 뛰어드는 것과 미흡한 5G 인프라를 개선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이전 세대의 통신 서비스를 완벽하게 구축해야 다음 세대로 넘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우기 청강문화산업대(이동통신학)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먼 미래의 일처럼 보이는 6G 이동통신을 지금 논의하고 얘기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6G가 어떤 특징을 보여야 하는지,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와 실제 기술이 인류 삶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논의하기 위해선 R&D에 일찍 뛰어들어야 한다. 특히 정부 지원을 기반으로 부품ㆍ장비 업체가 경쟁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현 정부의 행보를 생뚱맞다고만 평가할 순 없다.”

실제로 한국처럼 5G 인프라 구축을 완료하지 못한 국가들 역시 일찌감치 6G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다. 미국은 2020년부터 미국통신산업협회(ATIS) 주도로 통신사업자와 제조사 연합체인 ‘넥스트G 얼라이언스’를 결성해 6G 기술 표준화와 생태계 확산 작업을 진행 중이다. 

중국은 2019년 11월 범정부 차원의 6G 기술을 연구하는 조직을 만들었고, 2020년 11월엔 세계 최초로 6G를 테스트하기 위한 인공위성을 쏘아올렸다. 일본은 2018년 일본 최대 통신그룹인 NTT가 세계 최초로 초당 100GB무선전송을 시연하는 데 성공했다.

2020년엔 총무성 주관으로 ‘6G 연구회’도 발족했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비슷한 시기인 2020년 8월, 문재인 정부는 6G 이동통신시대를 선도하기 위한 ‘미래 이동통신 R&D 추진전략’을 수립했다. 세계 이동통신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면 한발 앞서 기술개발을 꾀하고, 표준을 선점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문제는 5G의 미흡한 현주소를 반면교사로 삼지 않은 채 6G 선점을 향한 속도 경쟁에만 매몰되면 같은 잘못을 반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동통신업계는 6G의 최대 데이터 속도가 1초에 1000GB를 전송하는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5G의 최대 이론 속도인 초당 20GB를 전송하는 것보다 50배 빠른 속도다. 정부와 업계가 세계 최초로 6G 상용화에 성공하더라도 또다시 ‘가짜 6G’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더구나 6G는 5G 인프라를 구축할 때보다 넘어야 할 산이 더 많다. 6G 시대에선 위성 통신의 역할이 중요하게 꼽힌다. 속도와 커버리지 한계를 극복하고 음영 지역陰影地域(장애물로 인해 소리가 전달되지 못하는 음의 사각지대)을 없애는 데엔 땅에 설치된 기지국보단 하늘 위를 떠다니는 위성이 더 유효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하지만 아직 국내엔 정부든 민간 차원이든 위성통신사업이 활성화하지 않았다. 미국과 영국에서 각각 스페이스X와 원웹 같은 빅테크가 저궤도 위성 사업을 주도하는 것과는 딴판이다. 6G 청사진을 두고 “세계 최초란 타이틀을 강조하기보단 국민에게 합당한 서비스를 제공할 기반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용구 통신소비자협동조합 상임이사는 “속도에만 매몰돼 기술을 개발하면 국민이 그 기술의 혜택을 제대로 누릴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긴다”면서 “6G 시대엔 기업과 소비자가 통신 품질을 이슈로 소송을 벌이는 일이 재연돼선 안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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