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5G’는 정말 20배 빠른가
이통사 투자 실적에 철퇴내렸지만…
정부도 20배 빠른 속도 마케팅에 기여

혹시 5G 고객인가요? 여전히 5G의 속도가 ‘LTE보다 20배 빠를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쉽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이 속도를 감당할 만한 스마트폰이 없을뿐더러, 그런 주파수를 주고받는 기지국도 모자랍니다. 문제는 정부와 이통3사가 처음부터 모바일 통신에선 20배 빠른 속도를 구현하는 게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대체 무슨 말일까요? 더스쿠프가 ‘5G 대국민 과장광고’의 민낯을 쉽게 풀어봤습니다. 

정부가 이통3사의 28㎓ 대역 주파수의 할당을 취소하거나 이용기간을 단축했다.[사진=뉴시스]
정부가 이통3사의 28㎓ 대역 주파수의 할당을 취소하거나 이용기간을 단축했다.[사진=뉴시스]

“진짜 5G 물 건너갔다.” 최근 신문 지면을 수놓은 통신 기사의 헤드라인입니다. 정부가 이동통신 3사에 할당한 ‘진짜 5G 주파수’인 28㎓ 대역을 회수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이통3사의 망網 투자가 미흡했다는 이유였습니다.

5G, 주파수, 28㎓, 망…. 용어가 낯설어서인지 벌써부터 어렵습니다. 그럼 어찌 된 영문인지 그 이유를 좀 더 쉽게 살펴볼까요? 사건은 지난 11월 18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5G 주파수 할당 조건 이행점검 결과 및 향후계획’을 발표했는데, 이통3사의 5G 망 투자 실적에 점수(100점 만점)를 매겨 공개했습니다. 

망 투자 실적을 점수로 평가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2018년 5월 정부는 이통3사에 5G 서비스에 적합한 두 종류의 주파수 대역(3.5㎓ㆍ28㎓)을 할당했습니다. 그러면서 ‘점검결과 미이행 시 할당 취소’ ‘이용기간 10% 단축’ 등의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망 투자를 소홀히 하면 페널티를 주겠다는 취지였죠. 결과는 어땠을까요? 

먼저 3.5㎓ 대역의 평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이통3사 모두 ‘투자 우등생’이었습니다. SK텔레콤은 93.3점, LG유플러스는 93.3점, KT는 91.6점으로 세 회사 모두 90점을 넘겼죠. 조건을 이행했다고 판단하는 기준점(70점) 역시 훌쩍 상회했습니다. 

반면 28㎓ 주파수 대역에선 낙제점을 받았습니다. SK텔레콤은 30.5점, LG유플러스는 28.9점, KT는 27.3점을 받는 데 그쳤죠. 이통3사로선 기준점인 70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민망한 성적표를 받아든 셈입니다.

낙제점을 확인한 정부는 무시무시한 카드를 꺼냈습니다. 30점을 밑돈 LG유플러스와 KT의 28㎓ 대역을 돌려받겠다고 선언한 겁니다. 정부가 이통3사에 할당한 주파수를 거둬들이는 건 이번이 처음 있는 일입니다. 주파수 대역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전개하는 이들로선 철퇴를 맞은 셈입니다. 

30점을 겨우 넘은 SK텔레콤도 철퇴를 피하긴 했지만 마냥 웃을 순 없을 듯합니다. 내년 5월까지 1만5000개 기지국 장비를 구축하지 못하면 SK텔레콤 또한 주파수를 돌려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과기부가 “평가위원들의 엄중한 판단이 반영됐다”고 덧붙인 걸 보면, 이번 주파수 할당 취소가 심상찮은 문제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이쯤에서 과기부 브리핑을 다시 정리해볼까요. 앞으로 KT와 LG유플러스는 28㎓ 대역을 사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SK텔레콤도 지금처럼 소홀하게 투자하면 28㎓ 대역을 뺏길 겁니다. 심각한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통3사가 28㎓ 주파수를 사용하지 못하면 ‘LTE보다 20배 빠른’ 5G는 사실상 불가능해집니다. 한편에선 ‘이통3사가 3.5㎓에선 우수한 성적을 받지 않았느냐’고 물어볼지 모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3.5㎓ 주파수와 20배 빠른 속도는 상관관계가 거의 없습니다. 3.5㎓ 주파수는 ‘반쪽짜리 5G’로 불립니다. 28㎓ 주파수 대역과 견줘 속도가 느리기 때문입니다. 28㎓ 주파수가 있어야 ‘LTE보다 20배 빠른’ 5G가 가능하단 겁니다. 

지난해 하반기 기준 정부가 측정한 이통3사의 5G 다운로드 속도를 한번 볼까요? 801.48Mbps(초당 메가바이트)입니다. 기존 LTE 속도(150.3Mbps)보다 다섯배 이상 빠르지만 호언장담했던 20배 빠른 속도와는 거리가 멉니다. 현재 5G 서비스가 28㎓가 아닌 3.5㎓를 기반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통3사들은 참 괘씸합니다. 5G가 상용화한 지 3년이나 흘렀는데도 투자를 게을리한 꼴이니까요. 5G 통신 품질 이슈가 3년 내내 계속 이어졌고,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집단소송까지 당했는데도 말입니다.

이통3사에 투자할 자금이 부족했던 것도 아닙니다. 지난해 이통3사는 ‘합산 영업이익 4조원’을 돌파할 정도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고작 망 투자를 안 해서 주파수를 뺏길 처지에 놓였다는 걸 선뜻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20배 빠른 5G’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건 비단 이통3사의 미흡한 투자 때문만은 아닙니다. 여기엔 복잡한 속사정이 숨어 있습니다. 

■진짜 5G 28㎓의 뚜렷한 한계 = 먼저 주파수의 개념부터 파악해 볼까요? 눈에 보이진 않지만 우리 주변엔 전파電波가 자유롭게 떠다닙니다. 이런 전파는 빛의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선박, 항공기 통신, TV나 라디오 방송 같은 통신 서비스에 응용되고 있습니다. 

주파수는 쉽게 말해 전파가 지나다니는 통로인데, 국가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 통로가 한 곳에만 몰리지 않도록, 국민 모두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죠. 이동통신 서비스의 경우, 경매를 통해 주파수의 가격을 결정하고 그 비용을 부담한 기업에 나눠주고 있습니다. 문제의 28㎓ 주파수 역시 2018년 정부가 경매를 거쳐 이들 3사에 할당했습니다. 

그럼 이번엔 3.5㎓와 비교했을 때 ‘진짜 5G’로 불리는 28㎓의 성질은 뭐가 다를까요? ㎐는 진동하는 횟수를 의미하는 단위입니다. 가령 3.5㎓는 1초에 35억번, 28㎓는 1초에 280억번 진동한다는 거죠. 

진동 횟수가 많을수록 주파수 대역폭이 더 높다는 뜻이고, 이는 속도가 빠르다는 겁니다. 참고로 4세대 이동통신(LTE)의 핵심 대역폭은 1.8㎓와 2.6㎓입니다. 

이를 고속도로에 빗대 설명하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주파수 대역폭이 높을수록 전파는 차선이 많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셈입니다. 2차선 도로보다 6차선 도로에 더 많은 차들이 지나갈 수 있듯, 대역폭이 높을수록 동일한 시간에 고용량 사진이나 동영상의 데이터를 빠르게 주고받을 수 있어 통신 품질이 좋아집니다.  

이렇게만 보면 ‘주파수가 높으면 높을수록 좋을’ 듯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주파수는 진동수가 많아지면 직진하는 성질이 강해집니다.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고, 잘 휘지도 않습니다. 이렇다 보니 주파수가 높은 전파는 장애물을 통과하는 게 어렵습니다. 28㎓만 해도 집 안이나 지하는커녕 벽 하나를 뚫는 게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사람의 손처럼 작은 방해물에도 끊길 수 있습니다.

반면 진동수가 적은 주파수에선 전파가 멀리 퍼져나갑니다. 장애물을 만나도 휘어져 들어가고, 얇은 벽 같은 건 쉽게 뚫고 나갑니다. 그래서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모바일 통신에선 낮은 주파수가 우수한 품질을 보일 수 있습니다. 고개 한번 돌렸다고 자칫 다운로드 전송이 끊겨버리면, 아무리 빠른 속도라고 해도 ‘말짱 꽝’이니까요. 

이런 특성 때문에 초고주파인 28㎓는 우리 국민이 쓰는 모바일 통신에선 활용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마 기지국을 집집마다 공유기 놓는 수준으로 설치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3.5㎓ 주파수에 비교하면 커버리지(수신권역)가 10~15%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이쯤 되면 28㎓의 단점이 명확하게 보일 겁니다. 28㎓는 5G용 주파수 중 하나이지만, 개인 모바일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아주 특수한 상황에서 활용해야 할 기술입니다. 기업간 거래(B2B)나 사물인터넷(IoT) 같은 곳에서 말이죠. 

정우기 청강문화산업대(이동통신학) 교수의 설명을 들어볼까요. “28㎓를 기업의 스마트팩토리나 항만 같은 곳에서 사용한다면 더 빠른 속도로 공정을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28㎓를 소비자 부문(B2C)에 활용하는 건 쉽지 않다. 현재로선 B2B에서 먼저 기술력을 실증해 점차 사용례를 넓혀가는 방향으로 육성하는 게 좋다.” 

28㎓ 대역은 기술적인 한계 때문에 용처가 한정돼 있고, 28㎓ 대역을 원하는 기업이 많지 않아서 기지국 숫자를 무작정 늘릴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실현 어려웠던 진짜 5G = 이쯤 되면 28㎓를 ‘진짜 5G’로 이해하고 있던 소비자들은 어리둥절해질 법합니다. ‘28㎓가 B2C에 적합하지 않은데 우리가 어떻게 진짜 5G를 누릴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떠오르기 때문이죠. 

아쉽지만, 그 의문은 정확합니다. 우리가 쓰는 스마트폰에선 ‘20배 빠른 속도’가 구현되기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국내엔 28㎓ 칩셋이 탑재된 스마트폰도 없습니다. 이통3사가 28㎓ 투자 평가에서 100점을 받았더라도, 애당초 20배 빠른 5G는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바로 여기에 정부의 실책이 있습니다. 사실 이통3사만 빠른 속도를 앞세워 난리를 쳤던 게 아닙니다. 5G 앞에서 정부도 난리법석을 떨었습니다. 세계 최초로 5G 상용화를 달성하던 2019년 4월로 돌아가 볼까요.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은 5G 상용화 기념행사에서 “기존 LTE보다 속도가 20배 빠른 통신 고속도로가 바로 5G”라고 설명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과기부가 발표한 ‘제3차 범부처 민ㆍ관 합동 5G+ 전략위원회’ 보도자료에서도 진짜 5G를 향한 기대감이 드러납니다. “연내에 5G SA 상용화와 28㎓ 대역 망 구축을 통해 초고속ㆍ초저지연ㆍ초연결의 5G 특성을 온전히 구현해, 혁신적인 융합서비스 개발을 가속화할 것이다.” 

정부 역시 ‘20배 빠른 5G(28㎓의 최대 속도)’가 이론 속 숫자였다는 걸 따로 강조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혹시 ‘20배 빠른 5G’가 쉽지 않은 목표라는 걸 몰랐던 건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2020 년 10월의 국회 과방위 국정감사에 참석한 최기영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말을 들어보시죠. 

당시는 5G의 미흡한 품질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할 때입니다. 최 전 장관은 28㎓ 주파수의 한계를 묻는 의원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정부는 5G의 28㎓ 주파수를 전 국민에게 서비스한다는 생각은 전혀 갖고 있지 않다. 대개 B2B를 많이 생각하고 있다. 실제 기업들과 그렇게 추진 중이다. B2B 를 포함한 특정 서비스를 위한 것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최 장관의 설명대로라면 정부는 ‘20배 빠른 5G’의 실체를 모르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28㎓ 주파수의 사용처와 로드맵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상황에서 ‘주파수 회수’란 무기를 들면서 이통3사에 책임을 덧씌우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입니다. 5G를 향한 기대와 현실이 어긋난 건 ‘세계 첫 상용화’란 위업 달성에만 매몰된 정부의 실기이자 패착도 크게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이동통신사 임원 출신의 한 스타트업 대표는 “5G 상용화 당시 정부는 첩보 작전을 방불케 하는 숨 막히는 눈치 게임을 벌일 정도로 세계 최초 타이틀에만 집착했다”면서 “이통3사 역시 피 말리는 가입자 유치전을 벌이느라 5G 통신의 한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지만 장밋빛 낙관만 쏟아낸 건 정부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습니다.

국민들은 앞으로도 LTE보다 20배 빠른 속도를 누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사진=뉴시스]
국민들은 앞으로도 LTE보다 20배 빠른 속도를 누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사진=뉴시스]

어찌 됐든 이통3사에 철퇴를 가한 과기부는 브리핑에서 ‘다음 전략’도 꺼냈습니다. 연내 주파수 할당 취소 처분을 확정하고, 내년 4월 말까지 주파수를 다시 할당하겠다는 시간표를 짰죠. 

흥미로운 건 취소되는 2개의 주파수 중 1개는 아예 신규 사업자로 선정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이통사 외에도 28㎓ 주파수 사용이 가능하게끔 유도하겠다는 거죠. 결국 KT나 LG유플러스 둘 중 하나는 28㎓ 주파수를 할당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경쟁을 유도해 28㎓ 대역 활성화를 촉진하겠다는 전략인데, 여기서도 5G 소비자는 빠져있습니다. 우리가 5G 요금제에 가입하려면 이통3사를 통해야 하기 때문이죠. 정부가 노리는 새로운 28㎓ 대역 활용 정책은 B2B에만 머물 가능성이 높습니다. LTE보다 20배 빠른 속도의 ‘진짜 5G’는 어떤 방식으로든 현실화하기 어렵다는 얘깁니다. 

아마 2600만명의 5G 고객 중에선 ‘LTE보다 20배 빠른’ 진짜 5G가 언젠간 가능할 거라고 기대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상용화 초기 단계만 벗어나면…” “이통3사가 망 투자를 더 늘리면…” “기술이 더 발전하면…” 이런 만약의 가정들이 충족된다면 말이죠. 

하지만 지금껏 살펴본 내용대로라면, 이런 가정을 달성한다 하더라도 몇 년 이내에 LTE보다 20배 빠른 속도를 스마트폰에서 누리는 건 불가능해 보입니다.

우리나라 정부는 ‘6G 세계 첫 상용화’에도 도전합니다. 6G는 LTE보다 20배 빠른 속도보다도 50배가 더 빠르다고 합니다. 이때에도 아무런 의미 없는 ‘진짜 6G’ 논란이 반복될까요. 여러모로 우리 국민만 허탈해졌습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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