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외환위기 경고음
한은 외환보유액 충분한가

원·달러 환율이 치솟자 외환위기를 암시하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경제의 안전판인 외환보유액을 많이 쌓아놨기 때문에 괜찮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경제 전문가들의 말은 다소 엇갈린다. 외환보유액이 4000억 달러를 훌쩍 넘고 전세계 9위 규모인 건 사실이지만, 환율 방어에 당장 쓸 수 있는 돈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웃돌자 외환위기 우려가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웃돌자 외환위기 우려가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 농사를 짓는 김한국씨는 요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농사에 필요한 물을 끌어다 쓰는 마을 저수지의 수량이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어서다. 원인은 마을 위쪽에 만들어진 댐이었다. 새로 지은 댐에 물을 가두면서 저수지로 흘러드는 물이 크게 줄었다. 

그렇다고 저수지의 물을 함부로 쓸 수도 없다. 너도나도 물을 끌어다 썼다가 저수지 물이 바닥나면 마을 전체가 큰 피해를 볼 게 뻔하다. 혹시라도 가뭄까지 겹치면 생활용수가 부족해질지 모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한국씨의 마음은 오늘도 까맣게 타들어간다. 

농부 한국씨의 현주소는 우리나라의 사정과 닮았다.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치솟으면서 외환보유액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어서다. 우리나라 금고에 차곡차곡 쌓아놨던 달러를 원·달러 환율의 지나친 상승을 막기 위해 시장에 내다팔았기 때문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이 원인이어서 손쓸 방법도 뾰족하지 않다. 환율이 계속 오르고 외환보유고가 줄어들면 외환위기가 불어닥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우선 원·달러 환율의 흐름을 살펴보자.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지난 9월 28일 달러당 1440.0원을 기록했다. 환율이 1440원을 넘어선 건 2009년 3월 13일(1485.0원) 이후 13년 6개월 만이다. 당시 세계경제가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환율의 급등세는 시장의 우려를 사기에 충분하다. 

그나마 위안거리였던 환율 상승은 수출기업에 호재라는 공식도 깨진 지 오래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8월 한국의 무역수지 적자다. 관세청에 따르면, 8월 수출액은 566억5800만 달러를 기록했다. 8월 기준 18개월 연속 수출액 500억 달러를 돌파한 것은 물론 역대 최고치였다.

하지만 무역수지 적자는 94억8700만 달러에 달했다. 7월(50억7700만 달러)보다 86.8% 늘어난 수치다. 환율 상승으로 얻는 수익보다 수입 물가의 오름세 탓에 나가는 지출이 더 크다는 것이다. 

환율이 급등하면서 주목받고 있는 것이 외환보유액이다. 앞서 농부 한국씨의 마음을 졸이게 했던  저수지의 수량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외환보유액이 중요한 이유는 그 역할에 있다. 한국은행은 외환보유액의 의의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중앙은행이나 정부가 국제수지 불균형을 보전하거나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보유하고 있는 대외 지급준비자산을 말한다. 외환보유액은 긴급 시 경제의 안전판일 뿐만 아니라 환율을 안정시키고 국가신인도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실제로 외환보유액은 외화가 부족해 환율이 급격하게 상승할 경우 시장 안정을 위해 사용한다. 국가의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외환보유액이 많으면 국가의 지급 능력이 충분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는 큰 문제가 없다. 

8월 기준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4364억3000만 달러(한국은행)에 달한다. 세계 9위 규모로 한은은 “외환보유액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오랫동안 견지해 왔다.[※참고: 외환위기가 터진 1997년 12월 외환보유액은 204억 달러였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원·달러 환율이 1600원대로 치솟았던 2009년 3월 외환보유액은 2063억4000만 달러였다.] 

그런데도 전문가들이 환율 방어를 위해 외환보유액을 더 많이 쌓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4000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을 모두 환율 방어에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다. 그중 환율 방어에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건 전체의 4.1%(179억 달러)에 불과한 예치금뿐이다. 

문제는 이마저도 줄고 있다는 거다. 일례로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1600원을 웃돌았던 2009년 3월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2063억4000만 달러였다. 하지만 예치금은 213억9000만 달러로 전체의 10.3%에 달했다. 지금보다 6.2%포인트 많은 예치금이다. 이는 한은이 자랑할 만큼 많은 외환보유액이 위기 상황에서 제 역할을 못할 수도 있다는 거다.

신세돈 숙명여대(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현재 외환보유액으로는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힘들 수 있다”며 말을 이었다. “현재 국내 주식과 채권에 투자한 외국인 투자자금은 6000억 달러 규모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해 이중 10%만 빠져나가도 600억 달러의 자금이 필요하다. 한은 외환보유액 예치금의 3배가 넘는 금액이다. 한국을 빠져나가는 외환의 지급 여력이 부족할 때 발생하는 것이 외환위기다. 상황을 긍정적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김대종 세종대(경영학) 교수의 견해도 비슷하다. 그는 “우리나라와 경제구조가 비슷한 대만에선 외환위기 가능성이 언급되지 않는 이유는 외환보유액에 있다”며 “대만의 외환보유액은 6026억 달러(7월 기준)로 GDP 의 90%에 이른다”고 말했다. “올 초 달러당 27대만 달러였던 환율은 최근 31대만 달러로 15%가량 오르는 데 그쳤지만 원·달러 환율은 20% 가까이 상승했다. 이는 외환보유액을 충분하게 보유하고 있느냐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다.”

전문가들이 제시한 해법은 명확하다. 환율을 진정시키고 외환위기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선 외환보유액의 규모와 예치금 비중을 함께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신세돈 교수는 “위급한 상황에 동원할 수 있는 예치금의 비중을 최소 30%(약 2000억 달러)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며 “주식과 채권에 묶여 있는 외환보유액도 유동성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통화스와프가 만병통치약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며 “통화스와프는 상대국이 한국에서 돈을 빼는 게 어렵다고 느낄 때 체결하기 때문에 효용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럼에도 통화스와프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조동근 명지대(경제학) 명예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현재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에 있지만, 시장의 심리도 한몫한다. 달러가 부족할 수 있다는 심리가 달러 매수세로 이어지고 있다는 거다. 이런 맥락에서 한미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면 이런 심리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는 인식이 달러 매수세를 감소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은 당분간 상승세를 탈 가능성이 높다. 미 연준이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시사하고 있는 데다, 인플레이션의 기세도 기대만큼 꺾이지 않고 있어서다. 문제는 정부와 한은이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을 내놓고 있느냐다. 괜찮다는 말로 국민의 불안감을 안정시키기엔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다. 농부 한국씨처럼 말이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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