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혁신 커리어업 인턴십 탐구
4개월 발맞춤 인터뷰 7편
아디 팀장-인턴 인터뷰

#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곳’. 세계 도처엔 누려야 할 권리를 강탈당한 채 억압받는 사람들이 여전히 숱하다. 아이러니한 건 그 가해자가 국가인 경우도 많다는 점이다. 멀리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얘기인 것도 아니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다섯시간이면 닿는 미얀마, 그곳 사람들에게 총구를 겨눈 건 국가(군부)였다. 하긴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졌던 일이기도 하다. 

# 2016년 설립한 비영리단체 ‘아디(ADI·Asian Dignity Initiative)’는 아시아 분쟁지역 사람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미얀마·방글라데시·팔레스타인·티베트 등이 이들의 주요 무대다. 배의 돛을 고정하는 ‘아딧줄’에서 따온 이름처럼, 아디는 아시아의 인권과 평화를 위해 돛의 방향을 제대로 잡고 전진하고 있다. 

# 이런 아디에 지난 9월 두 청년이 찾아왔다. 김이영 인턴, 이혜인 인턴이다. 이들은 ‘사회혁신 커리어업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아디와 인연을 맺었다. 4개월간의 인턴십 기간 그 반환점을 돈 지금, 두 사람은 무엇을 깨쳤을까. 이들의 ‘성장’은 아디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청년과 혁신기업-4개월의 발맞춤’ 일곱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김이영‧이혜인 인턴은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자 하는 꿈을 품고 있다. 아디는 그 답을 분쟁 현장에서 찾고 있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김이영‧이혜인 인턴은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자 하는 꿈을 품고 있다. 아디는 그 답을 분쟁 현장에서 찾고 있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흔히 NGO하면 ‘유니세프’나 ‘월드비전’과 같은 국제구호단체가 떠오릅니다. 아디는 어떤 단체인가요. 
이동화 팀장(이하 이 팀장) : “사실 국내에서 아디(2016년 설립)와 같은 활동을 하는 단체는 많지 않아요. 아디는 아시아 분쟁지역 피해 생존자들을 위한 인권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인도적 지원뿐만 아니라 현지 활동가들의 역량을 강화해 그들이 분쟁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 아디의 주된 사업 중 하나가 ‘기록하다’인데요. 독특합니다. 
이 팀장 : “인권 활동을 펼치기 위해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해요. 우리가 역사적으로 배운 것이기도 하죠. 위안부 할머니들의 용기 있는 고백으로 위안부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어요. 하지만 ‘누군가가 일본군의 만행을 기록해 뒀더라면 그분들의 인권을 좀 더 보호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았죠. 이렇듯 인권 활동에서 ‘피해자 중심의 기록’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미얀마 로힝야족이나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이 겪은 일을 기록하고 알리는 이유이기도 하죠.” 

저는 집단학살 생존자입니다. 그리고 학살을 기록합니다. 살아남은 자에게는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기억하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희생된 가족과 친구, 삶의 터전, 그리고 모든 것을 기록합니다. 누군가 또는 모두에게 원한을 풀어내는 일로 진척이 되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동기를 제공하며, 치유와 회복의 시작이 됩니다. -아디 홈페이지(로힝야 기록활동가 지원 캠페인) 발췌-

✚ 중요한 일이지만 쉬운 길은 아닐 듯합니다. 두 인턴은 평소 사회혁신 분야에 관심이 많았나요. 
이혜인 인턴 : “네. 아디에 앞서 사회적기업에서 인턴십도 해봤어요.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경험해보고 싶었죠. 그러던 중 아디가 눈에 띄었어요. 지난해 미얀마 민주화운동이 시작됐을 때, 미얀마 사람들을 돕기 위해 ‘굿즈’ 펀딩을 진행했는데 정작 그곳 당사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를 몰라 어려움을 겪었거든요. 현장에서 직접 활동을 펼치는 아디에서 배울 게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김이영 인턴 : “저도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사회문제를 정책적으로 푸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뭔가 실질적으로 좀 더 빠르게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을까 늘 고민했어요. 그런 면에서 현장 중심으로 활동하는 아디에서 인턴을 해보고 싶었죠.” 

✚ 실제로 아디에 들어와 보니 어땠나요.
김이영 인턴 : “‘구성원들이 진심으로 일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모든 게 당사자와 현장 중심으로 돌아가죠. 그만큼 유연한 조직이에요.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생각하고, 계속해서 발전하는 점이 좋았습니다.” 

이혜인 인턴 : “매주 모든 구성원이 모여 함께 회의하는 시간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팀에선 어떤 일을 하는지 듣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다 보면 서로 얻는 게 많더라고요.” 

✚ 자유롭게 소통하는 분위기인가 보군요. 
김이영 인턴 : “맞아요. 굉장히 수평적인 분위기예요. 많은 기업과 기관들이 상호 수평성을 강조하지만 실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잖아요. 의사결정을 할 때에도 항상 저희 의견을 물으시고, 반영해줘서 함께 협업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 팀장님 입장에서 이런 의견은 어떤가요? 
이 팀장 : “(수평적인 문화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일 거예요(웃음). 우리가 부닥치는 현장에선 늘 변화가 필요하고, 그런 변화를 불러일으키려면 구성원들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야 해요. 함께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한데 모을 때 시너지가 날 수 있죠. 그러려면 수평적인 문화가 기본이 돼야겠죠.” 

아디에선 서로 직함이 아닌 ‘별명’을 부른다. 이 팀장은 ‘셀림’, 김이영 인턴은 ‘영’, 이혜인 인턴은 ‘콘’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 서로 별명을 부르는 것도 수평적 문화를 위해서겠죠? 각자 별명의 의미를 설명해주세요. 
이 팀장 : “그렇게 거창한 의미는 아니었지만(웃음),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고민했어요. 그래서 별명을 부르기로 했고, 저는 ‘셀림’을 택했습니다. 이라크 현장에 갔을 때 사람들이 불러준 별명인데, 한국어로 ‘건강한 청년’이라는 의미죠.” 
김이영 인턴 : “저는 이름에서 따온 ‘영’으로 정했어요. 부르기도 쉽고요. 아무것도 갖지 않은 숫자(0)라는 의미도 있지만 또 그래서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는 뜻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이혜인 인턴 : “저는 단순하게 정했어요(웃음). 당시 카카오프렌즈의 악어 캐릭터 ‘콘’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걸 제 별명으로 선택했죠.” 

김이영(왼쪽부터)‧이혜인 인턴과 이동화 아디 팀장.[사진=더스쿠프 포토]
김이영(왼쪽부터)‧이혜인 인턴과 이동화 아디 팀장.[사진=더스쿠프 포토]

✚ 그럼 ‘영(김이영 인턴)’과 ‘콘(이혜인 인턴)’은 아디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이혜인 인턴 : “저는 로힝야 인권기록팀 업무를 주로 하고 있어요. 로힝야 난민 아동 인권보고서를 작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진행 중인 캠페인 프로젝트를 돕고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팀과 함께 아디의 활동을 후원자 등에게 알리는 업무도 하고 있죠. ‘어떤 채널을 통해 홍보할지’ ‘어떤 이미지를 활용하면 효과적일지’ 등 재량권을 많이 주셔서 뿌듯함을 느끼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김이영 인턴 : “저는 로힝야 여성지원팀에서 일하고 있어요. 현지 활동가들과 소통하면서 현재 진행 중인 지원 사업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고요. 정기적으로는 매달 로힝야 관련 이슈를 모아 ‘뉴스 브리프’를 만들어 발송하는 일도 맡고 있습니다.” 

✚ 후원자의 도움이 필요한 만큼, 아디의 활동을 잘 알리는 것도 중요하겠네요.
이혜인 인턴 : “맞아요. 실제로 12월 1일 ‘우리가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라는 이름으로 후원의 밤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디의 활동을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될 듯해요.” 

✚ 다양한 업무를 경험하고 계신데요. 잘 맞는 업무가 있었나요. 
김이영 인턴 : “활동가가 아닌 로힝야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삶을 기록하도록 돕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평소 글 쓰는 것도 좋아해서인지 재미있었어요.” 

✚ 인권 활동을 하다보면, 현장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커질 듯해요. 어떤가요. 
이혜인 인턴 : “맞아요. 저는 아직 현장에 가보지 못했지만 기회가 된다면 아디가 활동 중인 팔레스타인에 가보고 싶습니다. 이스라엘이 점령한 이후 팔레스타인에선 수많은 난민이 고통받고 있는데요. 저 역시 어릴 적부터 접했던 이슈인데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게 마음이 아파요. 화면으로만 접했던 그들을 직접 보고 싶고, 현지 활동가들도 만나고 싶습니다.” 

김이영 인턴 : “저는 한달가량 현장에 가볼 기회가 있었어요. 로힝야 난민들이 살고 있는 캠프에도 다녀왔죠. 제가 어떤 사람을 위해 일하고 있고,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어요. 다녀온 이후 일할 때 마음가짐이 달라지더라고요.”

✚ 현장에서 느낀 걸 좀 더 자세하게 말씀해 주시겠어요?
김이영 인턴 : “그곳에서의 경험이 제 삶의 한 부분이 된 느낌이었어요. 로힝야 난민의 삶과 한국에서의 제 삶 사이에 간극이 크다 보니 작은 일에도 죄책감을 느끼곤 했어요.”

✚ 현장을 경험하는 게 미치는 영향이 꽤 큰 듯하네요.
이 팀장 :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던 게 ‘나의 이야기’가 되는 거죠. 전기가 없는 생활은 상상한 적이 없었는데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맘껏 마시던 물은 구하기조차 힘들고, 어쩔 땐  가는 길에 폭탄이 떨어지는 위험한 상황이 펼쳐지기도 하죠. 그런 충격과 괴리감은 스스로 해결해야 해요.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고, 밸런스를 잘 잡아야 합니다. 또 세상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저는 ‘이들의 미래를 바꾸겠다’는 거창한 목표 대신 ‘이들이 해야 하는 일을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합니다.”

 

✚ 이제 인턴십이 한달 남짓 남았는데요.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나요. 
이혜인 인턴 : “처음 사회혁신 분야에 발을 내디뎠을 땐 명확한 기준이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게 사회혁신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인턴십을 통해 다른 방식의 사회혁신도 생각하게 됐어요. 변화를 이끌어 내려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제가 저만의 경쟁력을 갖추면 그 영향력으로 언젠가 사회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을 거란 꿈을 품게 됐습니다.” 

김이영 인턴 : “누군가를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는 일,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건 명확해졌어요. ‘어떻게’라는 답은 아직 찾고 있는 중입니다(웃음). 제가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의 밸런스를 찾는 게 중요한데, 아디에서 처음으로 그걸 경험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이 팀장님께선 선배로서 어떤 조언을 전하고 싶으신가요. 
이 팀장 : “‘영’님과 ‘콘’님 나이 때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좌충우돌 부딪혔던 것 같아요(웃음). 열심히 준비하고 채워나가고, 시행착오를 겪다보면 그 모든 것들이 자원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제 경험상 ‘현장’은 늘 답을 줬습니다. 현장과 너무 멀어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 현장엔 항상 아디가 있을 겁니다(웃음).” 

두 인턴은 ‘사회혁신 커리어업 인턴십 프로그램’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네! 그럼요”라며 입을 모았다. 앞으로 두 사람에겐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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