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철 안전 사각지대➋
위험천만한 지하철 혼잡도
사고 방지할 ‘안전법’ 없어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선 지하철 혼잡도를 관리하는 정식 법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사진=뉴시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선 지하철 혼잡도를 관리하는 정식 법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사진=뉴시스] 

# 지난 11월 30일 서울의 지하철역 곳곳에서 대혼란이 벌어졌습니다. 서울교통공사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며 지하철 1~8호선을 감축 운행한 탓입니다. 이로 인해 비교적 한가했던 낮 시간대 지하철마저 승객들로 꽉 들어차는 웃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 다행히 교통공사 노사는 강제 구조조정, 안전인력 충원 등의 사안을 두고 협상을 타결했습니다. 파업 하루만인 12월 1일부로 지하철도 다시 정상 운행하기 시작했죠. 그럼에도 승객들로 꽉 들어찬 지하철에서 ‘숨막히는’ 하루를 보내야 했던 시민들의 후유증은 쉬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 지하철 객차 내 인원 과밀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었습니다. 지난 10여년간 새로운 노선의 개통, 열차 증편 등의 노력이 이어졌지만,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닙니다. 지난해 기준 객차 내 혼잡도가 180%(인천국제공항철도ㆍ계양~김포공항), 200%(김포골드라인ㆍ고촌~김포공항)를 넘는 노선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 심각한 건 국내에는 지하철 혼잡도를 규제할 수 있는 법규정이 전무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출근길 ‘지옥철’ 안전은 어떻게 관리해왔던 걸까요? 승객 과밀에 대비한 안전관리 법규가 있기는 한 걸까요? 팩트체크 지옥철 안전 사각지대, 두번째 편입니다.

한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하철 승차 인원을 통제하는 법은 없을까요?” 전문가 7명의 답변은 똑같았습니다. “전세계 어디에도 그런 법은 없어요.” 

10ㆍ29 이태원 참사, 영등포역 무궁화호 탈선 사고, 오봉역 철도노동자 사망 사고 등 각종 안전사고가 이어지면서 러시아워에 승객이 밀집하는 지하철 안전을 향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팩트체크 첫번째 편(통권 521호ㆍ지하철엔 ‘법적 제한 기준’ 있는가)에서 살펴봤듯,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에도 지하철 승차정원이나 인원 과밀을 규정한 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영택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철도안전연구원 박사의 설명부터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에도 (승객의 편의를 위한) 서비스 관점에서 지하철 승차정원에 제한을 둔 법규는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하철은 좌석만 있는 게 아니라 입석도 있는 운송수단이다. 반드시 그 시간대에 이동해야만 하는 필수통행자가 몰리는 첨두 시간(붐비는 시간)에 좌석이 다 찼다는 이유로, 또는 ‘정원 제한’을 이유로 입석 승객들을 못 타게 할 순 없는 노릇이다.”

최진석 한국교통연구원 철도교통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 역시 “이용객들에게 ‘여기서부터는 정원 초과니까 지하철을 타지 마라’ 할 수는 없다”면서 “더구나 우리나라는 도시에 인구가 집중돼 있어서 지하철 탑승 인원을 제한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습니다. 만약 지하철 승차정원에 제한을 둔다면, 출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직장인들은 지금보다 더 혼란스러운 상황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평소처럼 집을 나서든 더 일찍 출발하든, 탑승 인원 제한 때문에 지하철을 타지 못해서 ‘억울하게’ 지각을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지하철 승객 수에 관한 법규가 없다면, 우리나라 지하철엔 이용객들이 무한정으로 탑승할 수 있는 걸까요? 객차 내 인원 밀집으로 인한 안전사고에 대비하는 방책은 없는 걸까요?

일단 첫번째 의문부터 풀어보겠습니다. 이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에서 아마 두번째 의문점도 해결하실 수 있을 겁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무리 국내법에 지하철 승차정원을 규정한 조항이 없더라도 승객들이 객차에 무제한으로 올라타는 건 아닙니다. 코레일, 서울교통공사 등 각 철도운영사에서 열차 운행 횟수, 시격(배차 간격) 등을 조정해 지하철 1편성당 탑승 인원을 어느 정도는 분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참고: 지하철은 여러 칸의 객차를 서로 연결해서 만듭니다. 이렇게 객차와 객차를 잇는 것을 ‘편성’이라고 합니다. 1편성당 객차 수는 노선에 따라 적게는 4량부터 많게는 10량 이상으로 구성할 수 있습니다.] 

지하철 ‘무제한 탑승’은 아냐 

물론 특정 시간대와 노선에 탑승객이 몰린다고 해서 모든 열차를 해당 노선의 운행에만 투입할 수는 없습니다. 좀 더 효율적인 열차 운행을 위해 각 철도운영사는 시간·노선별로 객차 내 승객이 얼마나 붐비는지 데이터를 집계하고, 이를 열차 운영 계획에 반영합니다. 철도운영사가 지하철 운행 빈도를 결정할 때 활용하는 이 데이터를 다른 말로 ‘혼잡도’라고 합니다. 

지하철 9호선은 전국에서 혼잡도가 가장 높다.[사진=뉴시스]
지하철 9호선은 전국에서 혼잡도가 가장 높다.[사진=뉴시스]

 

국내에선 객차 1량당 승객 160명을 적정 수용인원으로 보고, 이때를 혼잡도 100% 상태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객차당 허용 가능한 최대 혼잡도는 통상 150%(객차 내 승객 240명)로 여겨집니다.

오영택 박사는 “사람과 사람 사이 간격을 확보할 수 있어 서로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고, 승객 간 경합이 적은 상태를 가장 이상적인 승차 환경으로 본다”면서 “(이런 측면에서) 객차 3.3㎡(약 1평)당 탑승객 3~4명, 1량으로 따지면 160명이 최적의 수용량”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언급한 적정 수용인원은 서울시 지하철 기준으로, 지자체마다 그 수가 다를 수 있습니다. 지역별로 지하철 이용수요가 달라 객차의 크기에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부산시 지하철의 적정 수용인원은 서울보다 적은 120명입니다.

아울러 우리나라는 애초에 지하철역을 만들 때부터 객차 내 혼잡도가 150%에 도달할 것이란 전제를 깔고 노선을 개통합니다. 국토교통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의 예규(도시철도의 건설과 지원에 관한 기준)에는 지하철 승객 수요를 산정할 때 혼잡도를 최대치(150%)로 적용하도록 명시돼 있죠.

자, 이쯤에서 조금은 혼란스러운 분들이 계실 겁니다. ‘분명 우리나라엔 지하철 승객 수를 통제하는 법규가 없다면서, 갑자기 등장한 혼잡도란 지표는 뭐냐’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여기서부터입니다. 언급했듯, 국내 철도운영사들은 지하철 객차 내 혼잡도를 측정하고, 이를 반영해 열차 운행 일정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철도운영사들의 ‘의무’가 아닙니다.

혼잡도는 철도운영사들의 경영효율화, 서비스 품질 제고를 위한 도구일 뿐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법정 기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객차의 혼잡도가 150%를 넘겨 180%, 200%까지 치솟아도 철도운영사들에 제재를 가할 법적 근거는 없습니다.

서울 지하철 1호선(장항선), 4호선(안산선) 등 14개 노선을 운영 중인 코레일의 관계자는 “국토교통부에서 객차 내 혼잡도를 측정하는 방식에 관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는 일종의 계산식일 뿐”이라면서 “혼잡도에 따른 안전조치 사항이 법으로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서울교통공사(지하철 1~9호선 운행) 관계자 역시 “2019년까지는 2년에 한번씩, 2020년부터는 1년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혼잡도 조사를 하고 있다”면서도 “이와 관련한 별도의 내규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철도운영사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우리나라엔 혼잡도를 계산하는 ‘표준 공식’은 있지만 정작 혼잡도를 낮추기 위한 안전 기준이나 관리규정은 없는 상태란 겁니다. 어쩌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이어지게 된 걸까요? 그 배경은 다음 시간에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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