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감세 정책 펼친 과거 정부
양극화 심화하는 결과 초래
尹 정부 ‘백스텝’ 우려하는 이유

법인세 최고 세율 인하를 두고 정치권의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사진=뉴시스]
법인세 최고 세율 인하를 두고 정치권의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사진=뉴시스]

# 12월 15일, 대망의 디데이(D-DAY)가 밝았다. 이날은 내년 예산안을 확정하기 위한 정치권의 협상 시한이다. 하지만 여야 정치권은 여전히 벼랑 끝 대척점에 서서 각자의 입장을 고집하고 있다. 정쟁의 중심에는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법인세 인하 문제가 있다.

# 윤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적극적인 ‘감세 정책’을 공언했다. 기업활동 활성화→경기 부양→소비 확대로 이어지는 낙수효과를 이끌어내겠다는 목적에서다. 이 때문에 윤 정부는 영업이익 3000억원을 초과하는 법인에 적용하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25%에서 22%로 낮추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금을 낮춰서 외국자본을 유치하고, 이를 통해 기업 경쟁력과 경기를 제고하겠다는 거다. 

# 김진표 국회의장이 예산안 확정을 위한 본회의를  앞두고
 “법인세를 1%라도 낮춰야 한다”는 최종 중재안을 제시하면서, 윤 정부의 감세 정책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가지 리스크가 있다. 법인세나 재산세 인하처럼 기업이나 고소득층에 집중한 감세 정책은 자칫 계층간 양극화만 부채질할 수 있다.

실제로 ‘부자 감세’를 표방했던 역대 정부의 정책은 소득불평등을 심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양극화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인 ‘지니계수’를 통해 감세 정책의 맹점을 짚어봤다.[※참고: 이 기사는 더스쿠프 매거진 503호 기사를 근거로 재작성했다.]


법인세 인하, 재산세 인하…. 윤석열 정부가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대표 정책은 ‘감세 기조’다. 윤 정부가 감세정책을 통해 바라는 건 ‘낙수효과落水效果’다.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고소득층에서 저소득층으로 ‘소득’이 내려가면 경제 밑단까지 유동성이 풍부해질 것이란 계산에서다. 

새 정부가 출범 한달여를 맞은 6월 17일 용산 대통령실 앞 도어스테핑에서 꺼낸 윤 대통령의 발언도 낙수효과를 향한 정부의 기대감을 잘 보여줬다. “(법인세 등 감세를 통해) 기업이 제대로 뛸 수 있게 해줌으로써 시장 메커니즘이 역동적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 중산층과 서민에게 큰 도움이 된다.” 

그로부터 6개월여가 흐른 지금, 윤 정부는 법인세 인하 문제를 두고 야당과 충돌하고 있다. 정부는 “해외 자본을 유치해 기업경기를 활성화하겠다”며 법인세 최고 세율을 현행 25%에서 22%로 낮추고, 세율 구간을 간소화하겠다는 ‘감세’ 카드를 꺼내들었다. 야당은 “정부안은 ‘초超부자감세’일 뿐”이라면서 반발했다. 법인세 논란이 정쟁으로 비화하면서 결국 내년 예산안을 확정하기 위한 여야의 협상 시한(12월 15일)은 코앞에 들이닥쳤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지만 여야가 협상을 타결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무엇보다 정부의 주장대로 법인세 인하를 통한 ‘낙수효과’가 효과적으로 작동할지를 두고 회의적인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실제로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낙수효과’는 폐기된 경제이론이라고 꼬집는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2001년)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의 저서 「불평등의 대가」에서 낙수효과의 허상을 이렇게 지적했다. 

“대기업을 위한 국가의 우선적 지원과 규제완화는 부의 양극화를 가져오고 공공 부문의 투자를 축소한다. 그 결과는 기회의 상실로 인한 사회적 불안정이다.”

쉽게 말해 기업 중심의 감세정책이 낙수효과는커녕 되레 계층간 양극화를 심화할 수 있다는 거다. 사실 우리에겐 ‘낙수효과 무용론’이 현실에서 작동했던 전례前例가 있다. 윤 정부와 비슷한 경제정책을 펼친 이명박(MB) 정부(2008~2012년)의 ‘MB 노믹스’, 박근혜 정부(2013~2016년)의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자)’ 정책이다.

두 정부는 대기업 감세정책, 규제완화 등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으로 경제 활성화를 꾀했다. 하지만 당초 정부가 기대했던 낙수효과는 작동하지 않았다. 이는 소득불평등을 측정하는 대표적 지표인 지니계수를 통해 엿볼 수 있다. 하나씩 살펴보자.

[※참고: 양극화를 측정하는 척도는 지니계수 외에도 소득 5분위배율, 상대적 빈곤율 등이 있다. 하지만 이 지표들엔 정부의 산업 및 고용 정책, 인프라 투자 상황 등 다양한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반면 ‘지니계수’는 증세ㆍ감세 등의 조세정책이 소득재분배와 양극화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는 척도로 쓰인다. 따라서 이번 논의에선 다른 양극화 지표는 배제하고 지니계수를 우선 분석했다.]

■ 세전 지니계수 = 지니계수란 계층간 소득분배가 얼마나 공평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가늠하는 지표다. 0부터 1까지의 수치로 표현하는데, 값이 ‘0’에 가까울수록 소득분배가 평등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1’에 근접할수록 소득분배가 불평등함을 의미한다.


2008~2012년까지 MB 정부의 평균 지니계수는 0.361을 기록했다(1인 이상 전국 가구 기준). 여기서 주목할 점은 연도별 지니계수의 가파른 오름세다. MB 정부가 처음 들어선 2008년 0.344였던 지니계수는 임기 마지막 해인 2012년 0.382까지 치솟았다. MB 정부 5년간 소득불평등이 심화했다는 방증이다. 

지니계수는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악화일로를 걸었다. 박근혜 정부의 임기 첫해인 2013년 0.380이었던 지니계수는 임기 마지막 해인 2016년 0.402로 오르며 ‘0.3’이란 선마저 넘어섰다. 

다음 바통을 이어받은 문재인 정부 역시 임기 첫해(2017년) 지니계수가 0.406으로 2016년에 비해 소폭 올랐다. 하지만 이후 2018~ 2020년까지 3년간은 이전 정부들과 달리 큰폭의 오름세 없이 ‘0.4선(0.402→0.404→ 0.405)’을 지켜냈다. 급속도로 이뤄지던 소득불평등 악화에 일단 브레이크를 걸었다는 얘기다.

■세후 지니계수 = 중요한 건 여기서부터다. 앞서 살펴본 지니계수는 세금을 떼기 전 시장소득을 기준으로 한 ‘세전稅前 지니계수’다. 증세나 감세처럼 정부의 조세정책을 통한 소득재분배 효과를 따져보기 위해선 소득에서 세금을 떼어낸 처분가능소득을 기준으로 한 ‘세후稅後 지니계수’를 짚어봐야 한다. 

MB 정부 시절 평균 세후 지니계수는 0. 330으로 세전 지니계수(0.361) 대비 8.6% 떨어지는 데 그쳤다. 이 수치는 같은 기간(2008 ~2012년) 캐나다(27.4%), 영국(31.4%), 핀란드(45.6%) 등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박근혜 정부의 경우 세전 대비 세후 지니계수가 10.1% 낮아져 MB 정부보다 개선율이 좋아졌지만, 집권 기간(2013~2016년) OECD 주요국(▲캐나다 27.1% ▲영국 30.9% ▲핀란드 48.1%)의 개선율과는 여전히 큰 차이를 보였다. 

소득 밑단에도 유동성을 흐르게 만들겠다면서 선택한 MBㆍ박근혜 정부의 감세정책이 양극화를 해소하는 덴 별다른 영향을 주진 못한 셈이다.[※참고: 세후 지니계수와 세전 지니계수의 차이를 ‘지니계수 개선율’이라고 하는데, 이를 통해선 세금의 소득재분배 효과를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게 가능하다.]

세금의 소득재분배 효과


반면 법인세 인상, 다주택자 재산세 강화 등 전임 정부들과 반대의 길을 걸었던 문재인 정부는 의미 있는 소득재분배 효과를 거뒀다. 2017~2020년까지 문재인 정부의 지니계수 개선율은 15.3%에 달했다.

MB정부(2008~2012년 8.6%), 박근혜 정부(2013 ~2016년 10.1%)보다 개선율이 각각 6.7%포인트, 5.2%포인트 높았다. 세금을 통한 계층간 소득불평등의 개선이 문재인 정부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얘기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 시절 캐나다와 영국의 지니계수 개선율이 각각 21.5%, 28.7%라는 점을 감안하면, 조세 형평성 측면에서도 OECD 주요국과의 차이를 대폭 좁힌 셈이다. 

법인세 인하를 비롯한 부자 감세는 자칫 양극화를 심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법인세 인하를 비롯한 부자 감세는 자칫 양극화를 심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감세의 덫 ‘양극화’ = 자, 어떤가. 앞서 살펴봤듯 정부의 조세 정책은 계층간 소득분배에 큰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현 정부의 ‘부자 감세’가 계층간 격차를 벌리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서민층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위험이 있다는 사실이다. 

신승근 한국산업기술대(복지행정학) 교수는 “과거 줄푸세를 단행했던 박근혜 정부는 낙수효과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담뱃값ㆍ자동차세 등 소비세를 늘려 서민들의 부담을 늘렸다”면서 “현 정부 역시 (낙수효과는커녕) 감세로 인해 부족한 세수를 늘리기 위해 서민층을 위한 복지혜택을 축소하거나 세 부담을 늘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와 닮은꼴 행보를 보이고 있는 윤 정부가 양극화에 불을 지피는 ‘백스텝’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법인세 인하 논쟁으로 아직까지 새해 나라살림 계획도 세우지 못한 정부가 과연 과거와 같은 패착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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