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늘면서 화재사고 빈번
화재 진압 쉽지 않은 전기차
안전 매뉴얼 구축 서둘러야  

전기차 운전자들이 안전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원인을 막론한 화재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지만, 여기에 대응하고 수습할 수 있는 안전 매뉴얼은 아직까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다. 바야흐로 ‘전기차 30만대(연간 판매량) 시대’, 우리는 어떻게 안전한 미래를 준비해 나가야 할까.

2022년 들어 전기차 화재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사진은 지난 11월 이뤄진 제주도 소방안전본부 전기차 화재 대응 현장.[사진=연합뉴스]
2022년 들어 전기차 화재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사진은 지난 11월 이뤄진 제주도 소방안전본부 전기차 화재 대응 현장.[사진=연합뉴스]

적막한 밤거리에 새빨간 불길이 치솟았다. 신고를 받은 소방당국이 즉시 출동해 한시간여 만에 거리에 휩싸인 화염을 진화했다. 애석하게도 사상자가 발생한 뒤였다.

그로부터 열흘 뒤, 이번엔 또 다른 곳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역시나 좀처럼 불길이 잡히지 않았다. 결국 커다란 수조를 동원해 가까스로 화재를 진압할 수 있었다. 지난 12월 5일부터 15일까지 열흘 사이 발생한 이 화재사고들의 진원지는 전기차였다.   


새해를 앞두고 또다시 전기차 화재사고가 연달아 발생하면서 전기차 안전을 향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가 열리면서 차량 보급 대수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사고를 방지할 만한 기술적ㆍ제도적 여건은 아직 미비한 탓이다.

통계를 살펴보자.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1년 전(1만998대)보다 69.9% 늘어난 1만8684대를 기록했다. 1~10월 누적 판대 대수는 13 만5919대로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7만958 6대)보다 70.8% 늘어난 수치다. 전기차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문제는 전기차 보급 대수가 늘면서 화재사고도 빈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전기차 화재 건수는 2019년 7건에서 2020년 11건, 2021년 23건으로 3년 만에 3배 이상 증가했다(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올해도 상반기에만 벌써 17건의 화재사고가 터졌다.  

전기차 화재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건 배터리다. 지난 12월 각각 경북 영주와 제주도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 역시 배터리를 직간접적 사고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영주에서 일어난 사고의 경우, 차가 건물 외벽에 충돌하면서 5초도 안 돼 불길이 번지기 시작했다. 충돌 시 전기차 내부에 탑재한 배터리 셀에 손상이 생기면서 배터리 발열→배터리 내 에너지 팽창→배터리 화재로 이어지는 ‘열폭주’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풀이된다.

주차장에 세워둔 전기차에서 발생한 제주 화재사고도 배터리 모듈이 불에 탄 것으로 알려졌다.[※참고: 배터리 셀은 배터리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부품으로, 셀이 있어야 전기에너지를 충전 및 방전할 수 있다. 여러 개의 셀을 묶어서 하나의 사각형 틀로 만든 것이 모듈이다.] 

앞선 사례들에서 알 수 있듯 전기차 배터리는 한번 불이 붙으면 단시간에 큰 화재로 번질 우려가 있다. 더욱이 대부분의 전기차 화재는 진화 작업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가령, 지난해 4월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사고는 8명의 소방대원이 7시간 동안 10만6000리터(L)의 물을 쏟아붓고서야 불길을 잡을 수 있었다. 내연기관차의 화재 진압 시간이 통상 50분, 소화에 필요한 물의 양이 1000L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전기차의 불을 끄는 데 내연기관차 대비 8.4배의 시간과 106배의 물이 더 드는 셈이다. 세계 각국 소방당국의 고민이 깊어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소방당국에서는 전기차 화재를 진압하는 당장의 해결책으로 이동식 대형 수조를 활용하거나 차 전체에 질식 소화포를 덮어 산소를 차단하는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한계가 있다. 수조와 소화포는 차 안의 탑승객을 모두 구조하고 나서야 사용할 수 있는 데다, 사고가 난 전기차 근처에 소방관들이 직접 설치해야 해서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기차 안전 매뉴얼 마련 시급

그렇다면 현재의 기술과 역량에서 전기차 화재사고와 이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은 무엇일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인명사고를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을 늘리는 방책을 찾는 것이다. 

일례로 우리나라 현대차그룹에서는 배터리 셀 사이에 특수 소화 기능을 가진 캡슐을 장착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소화캡슐은 배터리 셀의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전기차 화재의 가장 큰 원인인 열폭주 현상을 최대한 늦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다음으로 전기차 사고 시 비상조치 및 소화 방법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내연기관차는 지난 130여년을 사용하면서 사고 발생 시 대처방법은 물론 재난에 관한 대응책이 확실하게 정비됐다. 반면 전기차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만큼 각종 위험ㆍ안전 대책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다행히 최적의 화재 진압법을 강구하기 위한 국내 소방당국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소방재난본부와 경북도소방본부의 화재 실험이 대표적이다. 서울시소방재난본부는 지난 6월 국립소방연구원, 한국소방기술원과 함께 실제 전기차를 사용한 화재 재연 실험을 실시했다. 이 실험을 통해 확보한 데이터를 정리해 다른 지자체도 활용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할 계획이다. 

경북도소방본부는 전기차 사고에 대비해 2017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총 101차례의 화재 대비 소방훈련 및 교육을 실시해왔다. 지난 8~9월에는 두차례의 화재 실험을 진행했다. 설사 당장의 성과가 없다 해도, 소방당국의 지속적인 연구와 훈련이 이어진다면 전기차 화재 시 적용할 최적의 대응책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안전한 전기차 운행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조사·소방당국·운전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사진=연합뉴스] 
안전한 전기차 운행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조사·소방당국·운전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사진=연합뉴스] 

마지막으로 전기차 운전자를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도 절실하다. 현재 상당수의 운전자들이 전기차에 관한 기초지식조차 없는 상태에서 차를 운행하고 있다. 아직까지 운전자를 위한 안전 가이드라인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아서다. 

이제라도 전기차 충전 시 위험 요인, 침수도로 운행법, 과속방지턱 운전법, 사고 발생 시 탈출법 등의 기본 정보를 정리해 운전자들에게 고지해야 한다. 그래야 안전사각지대에 놓인 운전자들을 보호하고, 이를 통해 전기차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삼위일체의 노력 필요한 때 

전기차의 인기만큼, 잊을 만하면 날아드는 사고 소식에 전기차를 향한 운전자들의 공포와 불안도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앞서 살펴봤듯 안전한 전기차 운행 환경을 만들기 위해선 결국 전기차 제조사, 소방당국, 운전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함께 발을 맞춰 나간다면 분명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전기차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안전을 위한 노력을 반드시 앞세워야 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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