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➊
숨가쁘게 흘러간 3개월
레고랜드부터 이태원 참사까지
한국 흔든 사건사고 그 후 이야기

이태원 참사 희생자에 대한 온전한 추모를 위해 지난 24일 유가족 협의회와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활동가들이 참사 현장을 재단장했다.[사진=뉴시스]
이태원 참사 희생자에 대한 온전한 추모를 위해 지난 24일 유가족 협의회와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활동가들이 참사 현장을 재단장했다.[사진=뉴시스]

9월 28일 레고랜드 사태, 10월 15일 카카오 먹통 사태·SPL(SPC 계열사) 노동자 사망사고, 10월 17일 푸르밀 사업종료 선언,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2022년 9~10월엔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사고가 터져나왔다. 누군가는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고, 누군가는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짚어봐야 할 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하지만 사고가 또 다른 사고 때문에 잊히면서 책임 소재를 밝히는 일도, 대안을 만들어내는 일도 함께 잊혔다. 2022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우리가 지난 사건을 다시 들춰본 이유다.

■ 레고랜드 사태 = 지난 9월 터진 ‘레고랜드’ 사태는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입에서 시작했다. 김 지사는 강원도가 채무보증을 선 강원중도개발공사(GIC)의 채무 상환일을 하루 앞둔 9월 28일 “2050억원에 이르는 GIC의 빚을 강원도가 대신 갚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GIC에 대한) 회생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자금 시장은 이를 ‘강원도의 채무 불이행 선언’으로 받아들였고, 크게 출렁였다. 결국 김 지사는 10월 21일 “채무를 상환하겠다”고 번복했고, 정부는 자금시장 안정화를 위해 ‘50조+a’의 유동성 지원책(10월 23일)을 내놨다. 

레고랜드 사태는 강원도가 추경을 통해 GIC 보증채무를 모두 상환(12월 12일)하면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김진태발發 금융위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채권시장이 얼어붙으면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금경색이 심화했고, 이는 중소 건설사를 벼랑으로 내모는 변수로 작용했다. 하지만 석달여가 지나는 동안 김 지사가 내놓은 사과는 “의도치 않게… 조금 미안하다(10월 28일)”가 전부였다. 

■ 카카오 먹통 사태 = “세상이 멈춘 거나 다름없었다.” 지난 10월 15일 카카오 통신 장애로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이 멈춰 섰다. 카카오톡뿐만 아니라 카카오의 금융(카카오뱅크·카카오페이), 모빌리티(카카오T), 콘텐츠(카카오웹툰) 서비스가 모두 작동을 멈췄다. 파장은 상상을 초월했다. 

음식점은 배달기사를 호출하지 못해 장사를 공쳤고, 택시기사는 호출을 받지 못해 토요일 대목을 놓쳤다. 당연히 카카오의 허술한 시스템 관리 체계가 도마에 올랐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홍은택 카카오 대표는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피해보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태가 터진 지 두달여가 흐른 지금, 카카오가 풀어야 할 과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소비자 피해보상책을 마련하기까지 갈 길이 멀다. 카카오의 10여개 유료 멤버십 이용자를 위한 보상절차는 완료했다. 하지만 마땅한 보상 규정이 없는 피해 사례는 숱하다. 카카오가 접수한 피해사례는 10만5116건에 달하는데 개별 사례를 어떻게 분류하고, 보상할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카카오는 먹통 사태를 제대로 마무리 지을 수 있을까. 

허영인 SPC 회장은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지 6일이 지난 후에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사진=뉴시스]
허영인 SPC 회장은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지 6일이 지난 후에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사진=뉴시스]

■ SPL 노동자 사망사고 = 10월 15일 새벽 6시께 샌드위치 소스 배합기 앞에서 혼자 일하던 노동자가 기계에 빨려 들어가 목숨을 잃었다. 이 사고가 일어난 곳은 연매출 5조원대 SPC그룹의 계열사(SPL)였다. 업계 1위 제빵회사가 안전장치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노동자를 속도전에 내몰았다는 데 사람들은 분노했다. 

허영인 SPC 회장이 나서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사태는 확산했다. SPC 불매운동에 불이 붙었고, 파리바게뜨 등 SPC 계열의 가맹점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입었다. 

그로부터 70여일이 흐른 지금, SPC 측은 사망사고 노동자 유가족과 합의했다. 안전경영위원회를 출범해 사업장의 안전진단도 실시했다. SPC 측은 “안전진단에서 지적받은 사항 90%를 시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불매운동으로 인한 피해를 입은 가맹점주들은 온전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 고용노동부의 SPC 사업장 기획감독 결과도 발표를 앞두고 있다. 그보다 큰 문제는 사람들의 관심이 시들해지면, SPC가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속도전을 다시 시작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 푸르밀 사태 = “현재 직면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흑자 경영 달성을 위해 사업 구조를 개편하겠다.” 신동환 푸르밀 대표가 지난 9일 내놓은 ‘비전’이다. 사실 푸르밀은 불과 두달여 전만 해도 역사 속으로 사라질 기업이었다. 신 대표가 10월 17일 경영난을 이유로 갑작스럽게 ‘사업종료’를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사업종료(11월 30일)까지 불과 50여일을 앞둔 상황이었다. 

350여명의 직원뿐만 아니라 5000여개 대리점, 100여개 운송업체, 25개 낙농가 농민들로선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다. 노조와 대리점, 농민들은 즉시 반발했고, 여론마저 악화했다. 결국 신 대표는 11월 10일 사업종료 선언을 철회했다. 하지만 모두가 일자리를 보전받은 건 아니었다. 인력의 30%를 구조조정하면서, 110명의 직원과 대리점이 푸르밀을 떠나야 했다. 

어쨌거나 조직을 슬림화한 푸르밀은 ‘흑자경영’이란 미래 비전을 제시했다. 하지만 지금 시급한 건 함께하는 이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오너 2세인 신 대표가 부임한 2018년 이후 푸르밀의 실적(2018년 매출액 2301억원→2021년 매출액 1799억원)이 급격히 악화했다는 점도 풀어야 할 숙제다. ‘푸르밀에 남은 과제는 오너가 쇄신을 보여주는 일뿐’이란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 이태원 참사 = 159명. ‘이태원 참사’ 희생자 수다. 지난 10월 29일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사회적 거리두기 없이 열린 핼러윈 축제를 즐기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이태원으로 몰려 들었다. 4m가량의 비좁고 비탈진 골목에 사람들이 쏠리면서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압사 등 직접적인 원인으로 사망한 희생자는 158명이다. 하지만 지난 12일 이태원 참사에서 살아남은 10대 생존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159번째 희생자로 기록된 그는 악성 댓글 등 2차 가해로 고통을 겪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태원 참사 49재(12월 16일)가 치러졌지만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언제쯤이면 희생자를 제대로 떠나보낼 수 있을지 모른다. ‘희생자’를 ‘사망자’로 표기하고, 영정과 위패 없는 분향소를 연 정부는 사고를 축소하는 데만 급급한 모습이다.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을 해 달라”는 유가족의 호소는 묻혀 버렸다. 국회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는 참사 발생 54일이 지난 21일에야 활동을 시작했다. 출발부터 정쟁으로 얼룩진 국조특위는 유가족의 고통과 답답함을 풀어줄 수 있을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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