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시중은행 몸집 줄이는 이유
5년 새 945개 줄어든 영업점
당기순이익 절반을 배당으로…
배당 수혜 누리는 외국인 투자자
수조원 벌면서 사회공헌엔 인색

모두가 힘들어하는 3고高 시대, ‘나홀로’ 쾌재를 부르는 곳이 있다. 무시무시한 ‘고금리 수혜’를 톡톡히 보고 있는 시중은행이다. 그럼에도 시중은행은 몸집 줄이기에 급급하다. 비대면 거래 활성화와 효율성 제고를 이유로 영업점 통폐합에 힘을 쏟고 있다. 문제는 이를 통해 불편함을 겪는 고객이 적지 않다는 거다. 

국내 시중은행의 영업점 수가 최근 5년 사이 945개 감소했다.[사진=뉴시스] 
국내 시중은행의 영업점 수가 최근 5년 사이 945개 줄어들었다.[사진=뉴시스] 

최근 몇 년간 겨울이면 어김없이 금융업계에 삭풍朔風이 몰아쳤다. 새 회계기준 도입, 수익성 부진, 비대면 거래 증가 등 삭풍의 이유는 다양했지만, 결국은 위기를 넘기기 위한 구조조정의 일환이었다. 2017~2018년 생명보험업계와 증권업계에 불어온 구조조정 바람이 대표적이다. 당시 금융회사들은 영업점과 인력 감축을 통해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불확실성이 커진 시장에 대비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이런 감축 바람이 최근엔 은행권을 흔들고 있다. 시중은행의 희망퇴직은 연례행사가 됐다. 지난해 11월 희망퇴직을 단행한 NH농협은행에서는 500명이 희망퇴직을 신청했고, 493명이 은행을 떠났다. KB국민은행도 올해 진행한 희망퇴직에서 713명이 짐을 쌌다.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까지 희망퇴직에 나섰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을 제외한 주요은행은 이번에도 40세 이상 직원(1982년부터)을 희망퇴직 대상에 포함했다. 이런 탓인지 지난해와 올해 단행한 희망퇴직으로 은행을 떠나는 직원이 3000명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인력만 감축하고 있는 건 아니다. 시중은행은 영업점도 빠르게 줄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7년 9월 4859개였던 국내은행(인터넷전문은행·특수은행 제외)의 영업점(지점+출장소)은 지난해 9월 3914개로 19.4%(945개) 감소했다. 같은 기간 국내 증권사의 영업점(지점+영업소+사무소)은 1117개에서 908개로 18.7%(209개) 줄었다. 영업점이 주는 속도가 증권사보다 은행이 더 빠르다는 거다. 

국내 4대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영업점 수가 가장 많이 줄어든 곳은 KB국민은행이다. 2017년 9월 1057개였던 영업점은 지난해 9월 854개로 203개(19.2%) 감소했다. 뒤를 이어 하나은행 183개, 신한은행 175개, 우리은행 161개 등의 순으로 영업점이 감소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주요은행 중 우리 영업점이 가장 많았기 때문에 크게 줄어든 것으로 보이는 것”이라며 “사전영향평가 등의 과정을 거쳤고, 한 권역 내 중복된 영업점 위주로 통폐합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업점 감소 속도가 가장 빠른 곳은 하나은행이다. 2017년 781개였던 하나은행의 영업점은 지난해 9월 598개로 줄었다. 5년 사이 23.4% 감소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의 통합으로 중복된 영업점을 줄이면서 수가 크게 줄어든 것”이라며 “영업점 통폐합과 관련한 계획은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한해 수조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리는 은행이 왜 이렇게 열심히 몸집을 줄이고 있느냐다. 언급했듯 지난해 한국 경제가 3高고(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위기에 허덕일 때 시중은행은 실적 증가세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4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3분기 벌어들인 당기순이익은 8조6132억원으로 2021년 7조5561억원보다 1조571억원(13.9%) 증가했다. 고금리 기조의 영향으로 이자 수익이 크게 늘어난 덕분이었다.

그런데도 인적·물적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이유를 시중은행 측에 물으면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온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비대면 거래가 급격하게 증가했고, 거리두기의 영향으로 영업점을 찾는 고객이 크게 줄었다. 이용 고객이 많지 않아 적자가 나거나 중복으로 설치된 영업점을 통폐합해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영업점이 줄면 인력 구조조정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은행의 ‘인터넷뱅킹서비스 이용현황(금융서비스 전달 채널별 업무처리 비중)’에 따르면, 2018년 3월 사상 처음으로 10%(9.5%)를 밑돈 은행 창구의 업무 비중은 지난해 6월 5.0%로 떨어졌다. 은행 업무를 보는 고객 100명 중 5명만 은행을 찾고 있는 셈이다. 같은 기간 인터넷뱅킹의 업무 비중은 49.4%에서 77.4%로 확대했다. 

그렇다면 은행은 그 많은 수익을 어디에 쓰고 있을까. 시중은행은 수익의 대부분을 배당에 사용하고 있다. 2021년 국민은행은 2조5644억원의 당기순이익(이하 별도 기준) 중 1조311억원을 배당에 사용했다.

다른 은행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신한은행은 당기순이익(2조1529억원)의 41.8%에 달하는 9000억원을 배당에 썼고, 하나은행의 배당액은 1조604억원(단기순이익 2조3801억원)을 기록했다. 우리은행은 당기순이익 2조1523억원의 절반이 넘는 1조1756억원(54.6%)을 배당에 사용했다. 

시중은행이 이자장사로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면서도 고객의 불편함은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사진=뉴시스] 
시중은행이 이자장사로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면서도 고객의 불편함은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사진=뉴시스] 

은행을 믿고 투자한 주주를 위한 정책이라고 하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은행 지분 100%를 갖고 있는 4대 금융지주의 외국인 투자자 지분율은 KB금융그룹 73.9%, 신한금융지주 63.1%, 하나금융그룹 71.4%, 우리금융그룹 40.3%에 이른다. 은행 배당 수혜의 대부분을 외국인 투자자가 보고 있다는 얘기다. 

반면, 4대 시중은행의 사회공헌 실적은 초라하기만 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2021년 4대 시중은행이 사회공헌에 사용한 금액은 총 5782억원(KB국민은행 1619억원+신한은행 1450억원+하나은행 1359억원+우리은행 1354억원)에 불과했다. 

2021년 은행 4곳의 당기순이익이 9조2486억원이라는 걸 감안하면 순이익의 6.2%를 사회공헌에 사용한 셈이다. 이자 장사로 벌어들인 돈을 배당에만 쓰고 그것도 모자라 효율성을 명분으로 몸집을 줄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노인과 같이 인터넷뱅킹을 사용하기 어려운 금융 취약계층에게 은행 영업점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은행들이 취약계층의 금융소외 현상을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은행은 일반 기업과 달리 공공성을 갖고 있는 특수한 산업”이라며 “이자로 수조원의 돈을 버는 은행이 영업점 축소로 겪는 고객의 불편함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2023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4대 시중은행장들은 모두 고객 중심과 고객 신뢰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항상 고객과 함께하고, 은행보다 고객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연 시중은행은 고객을 먼저 생각하고 있을까.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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