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정부 노동정책 어디로 가나
국정과제에는 ‘노동 존중’ 명시
노동자 배제한 노동정책 양산
文도 尹도 ‘노동 존중’은 없어

‘노동 가치 존중 사회’를 실현하겠다는 윤석열 정부가 그에 걸맞은 노동정책을 펴고 있는지 의문이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노동 가치 존중 사회’를 실현하겠다는 윤석열 정부가 그에 걸맞은 노동정책을 펴고 있는지 의문이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2140만8000명. 지난해 12월 기준 우리나라 임금노동자 수다. 전체 인구(5162만8000명)의 41.5%, 전체 경제활동인구(2867만4000명)의 74.7%가 임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란 얘기다. 정부의 노동정책이 국민 삶에 직접적이고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난해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 나침반은 어느 곳을 가리키고 있을까.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고, 노동자 권익이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이던 지난해 5월 1일(노동절)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내용의 일부다. 이틀 후인 5월 3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서 밝힌 노동정책의 큰 틀도 ‘노동 가치 존중 사회 실현’이었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는 방향성에 걸맞은 실질적인 노동정책들을 내놓고 있을까. 우선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나온 대표적인 노동 이슈부터 살펴보자. 

■ 산재보상보험법 개정 = 윤석열 정부의 첫 노동정책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이었다. 지난해 5월 29일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 징수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첫 노동법 개정이어서 이 법은 ‘윤석열 정부 1호 노동법’으로 불렸다.

개정법의 핵심은 산재보험 적용 요건 중 하나인 ‘전속성專屬性’을 폐지한 거다. 전속성이란 ‘한 노동자가 한 사업장에 소속돼 일정 시간 이상 일을 하고 있어야 산재보험을 적용할 수 있다’는 조건이다.

당연한 논리로 보이지만 한계가 있다. 전속성을 인정하면 여러 사업장과 관계를 맺는 상당수 플랫폼 노동자가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못한다. 따라서 노동법 개정은 산재보험의 사각지대를 없애 플랫폼 노동자들이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개정법은 올해 7월 적용된다. 

그렇다고 한계를 모두 메운 건 아니다. 산재보험을 적용받으려면 특수고용노동자로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산재보상보험법 시행령에 열거된 직종(현재 14종)에 속해야만 한다. 특수고용노동의 형태가 점점 다양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또다른 사각지대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산재보험료 징수 문제도 숙제로 남았다. 일반 노동자는 사업주가 산재보험료를 100% 부담하는데, 특수고용노동자는 산재보험료의 절반을 자신들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특수고용노동자가 ‘노동자’로 인정받아 맘 편히 산재보험을 적용받기에는 갈 길이 아직 멀다.

그럼에도 이 법 개정에 의미를 둘 수 있는 건 윤석열 정부 출범과 동시에 여야가 큰 이견을 보이지 않고 산재보상보험법을 개정했다는 점, 이로 인해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처우가 일정 부분 좋아질 것이란 점 때문이다. 

노동계도 꽤 고무적이었다. 산재보상보험법 개정안이 지난해 5월 16일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이후 민주노총은 “노무제공자를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좁혀놓은 탓에 개인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는 간병인이나 가사노동자 등은 제외됐다”고 아쉬움을 전하면서도 “전속성 폐지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차별을 폐지하는 방향이라는 점에서 진일보했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사진 | 뉴시스]
[사진 | 뉴시스]

■ 화물연대 1차 파업 = 곧이어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은 심판대에 올랐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이하 화물연대 노조)는 지난해 6월 ‘2020년에 도입한 화물차 안전운임제의 일몰(2022년말) 폐지’와 ‘시행 성과를 토대로 한 확대 시행 약속 이행’을 주장했다. 정부가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화물연대는 6월 7일 총파업에 돌입했다.

총파업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커지자 강경할 것 같던 정부도 화물연대와의 협상에 나섰다. 정부가 화물차 안전운임제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제도를 확대하기 위한 논의를 할 것을 약속하면서 14일을 기점으로 파업은 막을 내렸다. 노조로선 아쉬운 선택이었을지 모르지만, 타협점을 찾은 건 다행이었다. 

■ 상병수당 시범사업 실시 = 화물연대 파업이 끝난 후인 7월, 윤석열 정부는 상병수당제를 도입해 1년간 시범사업을 실시하기로 했다. 상병傷病수당이란 노동자가 업무와 관련 없는 일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려서 일을 못 하게 되면 상병수당(최저임금의 60%)을 지급해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업종이나 소득 수준과는 무관하게 지급된다.[※참고: 물론 급여 수준이 최저임금의 80% 이하여서 실질적인 생계유지에 유용하지 못하고, 혜택기간이 90~120일에 불과해 오랜 치료가 필요한 경우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 제도의 시범사업은 2021년 12월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한국형 상병수당 시범사업 추진계획’에 따른 것이었는데, 윤석열 정부에서도 별 차질 없이 이어졌다. 

■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발족 =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7월 18일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발족하자 정부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고용노동부가 ‘근로시간 제도(주 52시간제 유연화)와 임금체계(직무ㆍ성과급제 추진) 개편’을 집중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발족한 전문가 자문기구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주 52시간 제도를 무력화하려는 형식적 절차”라면서 “연구회의 구성도 편파적”이라고 비판했다. 노동 의제를 다루면서 노동계의 의견을 듣지 않는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예상대로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통해 다양한 노동 의제가 불거졌다.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월 이상’으로 바꿔서 ‘주 69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견해가 나왔고, 노동법 다층화(고용형태별로 다른 노동법 적용)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직무ㆍ성과급제로 임금체계를 재편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참고: 직무ㆍ성과급제는 말 그대로 직무나 성과 등을 평가 기준으로 잡아 임금을 산정하는 거다. 난도가 더 높은 일을 하거나 성과가 높으면 더 많은 임금을 받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근속연수에 따라 더 높은 임금을 받는 호봉제를 택하고 있다.] 

그동안 ‘주 52시간제’는 잔업이 필요한 생산현장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역시 비정규직의 권리 보장을 막는 요소로 작용했다. 또한 비정규직들이 주장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위해서는 직무ㆍ성과급제를 택하는 게 맞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정부가 내놓은 대안들은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주 69시간 근무제’는 포괄임금제를 그대로 둔 채 근무시간을 늘리면 사실상 임금이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반론에 부딪혔다.[※참고: 포괄임금제란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연장ㆍ야간ㆍ휴일 근무를 모두 포함해 예정된 수당을 임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을 말한다.]

법적으로 보장된 유급휴가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 생활 리듬 파괴로 건강이 나빠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직무ㆍ성과급제 역시 도마에 올랐다. 직무나 성과에 따른 임금체계를 어떻게 책정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발생한 다양한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노동법 다층화는 각 노동자에게 다른 노동법 기준을 적용한다는 건데, 이럴 경우 실질적인 처우 개선이 필요한 노동자들에게 노동법이 되레 현재의 처우를 감내하게 하는 장치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도 윤석열 정부처럼 약자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사진은 이재갑(가운데) 전 고용노동부장관.[사진=뉴시스]
문재인 정부도 윤석열 정부처럼 약자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사진은 이재갑(가운데) 전 고용노동부장관.[사진=뉴시스]

■ 화물연대 2차 총파업 = 갑론을박이 오가는 가운데, 화물차 안전운임제 일몰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11월 24일 화물연대는 정부에 1차 파업 당시의 약속을 요구하면서 또다시 총파업에 돌입했다.

정부의 태도는 1차 총파업 때와 달랐다. 11월 29일 국토교통부는 화물연대에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12월 2일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화물연대의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화물연대를 사업자단체로 규정해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 행위를 부당한 공동행위로 봤기 때문이었다.

화물연대 측은 공정위의 행태가 “화물기사들은 노조법에 의해 설립된 단체나 자신의 이익을 증진하고 보호할 단체에 가입할 권리가 있다”는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에 위배된다고 주장했지만, 정부의 태도는 강경했다. 오히려 공정위의 조사 방해 행위를 엄단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참고: 우리나라는 ILO 협약에 비준했기 때문에 ILO 규약이 국내법과 동일시된다.]

결국 전방위적인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화물연대는 12월 9일 파업을 종료했다. 정부가 협상카드로 내밀었던 현행 안전운임제의 연장은 없던 일이 됐다. 

■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권고문 = 화물연대 파업이 종료된 직후인 12월 12일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노동시장 개혁 방안에 관한 권고문을 내놨다. 권고문에는 ▲주 52시간제를 업종과 기업 특성에 맞게 유연화해 산술적으로는 주당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체계는 직무 중심 성과급제로 변경하는 내용 ▲미래지향적 노동법제를 마련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모두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내용들이었다. 

노동계는 반발했지만,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12월 16일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을 수용해 2023년 상반기 중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한발 더 나아가 정부는 ‘노동개혁’의 기치 아래 ▲노조의 회계 투명성 강화 ▲노조의 고용세습과 협박 채용 근절과 처벌 강화 ▲최저임금 차등 지급 방안 ▲중대재해법 개정 등을 본격적으로 손보겠다는 입장까지 밝혔다. 

■ 의문스러운 노동정책 = 이런 일련의 과정을 꼼꼼하게 되짚어보면 노동계가 다양한 비판을 제기했는데도 윤석열 정부는 미래노동시장연구회 발족 이후 각종 노동정책을 ‘개혁’이라는 미명으로 밀어붙이는 것으로 보인다. 

이쯤에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런 노동정책들이 처음 언급했던 윤석열 정부의 ‘노동 가치 존중 사회 실현’이라는 기조와 어울리냐는 거다. 이 의문의 답은 ‘누굴 위한 노동 존중인가’를 살펴보면 쉽게 풀린다. 그건 바로 ‘상대적 약자’다.

역설적이지만 노동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잔업으로 소득을 올릴 수밖에 없는 영세기업의 노동자에게서 나왔고,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영세자영업자에게서 나왔으며, 직무ㆍ성과급제 주장은 기성세대보다 성공할 기회가 줄어든 청년층으로부터 나왔다.

그러니 그들의 불만을 해소한다는 게 ‘윤석열식 노동정책’의 그럴듯한 명분이 된 셈이다.[※참고: 물론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들이 현실화하면 이런 명분과는 달리 기업에 더 유리하게 악용될 수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 지점에서 주목할 건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기조도 ‘노동 존중 사회 실현’이었다는 점이다. 그럼 문 정부의 노동정책은 윤석열 정부와 달리 노동자들부터 환영받았을까.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비난을 받은 건 매한가지다. 

특이한 점은 문재인 정부의 ‘노동 존중’도 ‘상대적 약자’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는 점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비정규직을 위한 거였고, ‘주 52시간제’와 최저임금 인상은 중소기업 노동자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마치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노동정책의 미비점들을 보완한다는 명분을 갖고 진행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렇다면 두 정부가 나름 ‘상대적 약자’를 위한 노동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비판 받는 이유는 뭘까. 답은 간단하다. 두 정부 모두 정책 수혜자를 배려하지 않아서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문재인 정부도 윤석열 정부도 모두 노동자 중에서도 약자들을 대변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누구도 그 약자들에게 제대로 귀 기울이지 않았다”면서 “그러니 정책을 짤 때도 약자들에게 미칠 여파를 예상하는 세심한 정책을 짜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 연구실장은 “사실 약자의 어려움을 세심하게 살필 의지조차 없는 상황에서 국정과제를 짜야 하니까 고용노동부 공무원들이 교과서처럼 짜놓은 정책 기조를 가져다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면서 “둘 다 ‘노동 존중’을 외치지만 누구도 노동을 존중하지는 않았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도 윤석열 정부도 그들이 말하는 ‘약자’를 정책 구상 단계에서 논의의 테이블에 부르지 않았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노동자들이 진정으로 뭘 원하는지,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가 뭘 요구했는지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두 정부가 외친 ‘노동 존중’이란 구호에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건 그래서다.

윤 정부의 노동개혁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미래를 알 순 없지만, 분명한 건 있다. 사회적 약자를 논의 대상에서 뺐더라도 노동개혁의 성패를 결정하는 주체는 그들이란 거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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