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 尹의 처방전❸ 디지털
뉴욕구상 기반의 디지털 청사진
“디지털 강국 등극해 질서 제시”
공공 강조한 文과 달리 민간 내세워
갈등 첨예한데 자율규제 작동할까

세계 각국 정부가 디지털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가의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우리나라도 디지털 모범국가로 등극해 그 경험을 세계에 공유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전략을 세웠다. 큰 틀에선 문재인 정부의 전략과 비슷하지만 전술이 다르다. 문 정부가 공공의 힘을 강조한 반면, 윤 정부는 민간 중심의 자율규제에 무게를 실었다. 다만, 자율규제란 말 자체가 ‘형용모순’이라는 건 윤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다. 

카카오 먹통 사태를 계기로 플랫폼을 규제해야 한단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카카오 먹통 사태를 계기로 플랫폼을 규제해야 한단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디지털이 자유를 확대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경제적ㆍ사회적 가치도 창출해야 하고, 국민의 안전과 삶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공존과 번영에 이바지해야 한다(2022년 9월 22일 뉴욕대 ‘디지털 비전 포럼’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기조연설).” 

정부는 이 연설에 ‘뉴욕구상’이란 이름을 붙였다. 디지털을 통해 자유와 인권, 연대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고 전 세계가 공동으로 추진할 디지털 질서를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당시 해외 순방이 ‘48초 회담’ ‘막말 논란’ ‘조문 불참’ 등 숱한 이슈에 흔들리는 가운데 거둔 의미 있는 성과였다. 

뉴욕구상을 뒷받침하는 실행전략은 일주일 뒤인 9월 28일 공개됐다. 이른바 ‘대한민국 디지털 전략’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디지털 역량을 갖추고 정부와 경제, 사회 전반을 디지털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르네상스의 이탈리아, 산업혁명의 영국, 세계 IT경제를 선도하고 있는 미국처럼 디지털 혁신으로 글로벌 모범국이 되겠다는 거다. 스위스 국제경영대학원(IMD)이 매년 발표하는 국가별 디지털 경쟁력 순위(2022년 8위→2027년 3위)를 크게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구체적으론 ▲세계 최고 디지털 역량 ▲확장되는 디지털 경제 ▲포용하는 디지털 사회 ▲함께하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 ▲혁신하는 디지털 문화 등 5대 과제를 제시했다. 5개 과제 밑으론 19개 계획을 세세하게 짰다. 

윤석열 정부의 디지털 전략은 큰 틀에서 보면 문재인 정부의 ‘디지털뉴딜’과 유사하다. 디지털뉴딜 역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경제ㆍ사회 전반의 디지털 대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범부처 차원의 국가 혁신 프로젝트였다. 실제로 두 전략의 설명자료를 나란히 놓고 보면 다른 점을 찾기 어렵다. 무엇보다 디지털 혁신을 널리 보급해 국가와 사회를 한단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기본 취지가 똑같다.

가령, 윤석열 정부의 19대 과제 중 ‘충분한 디지털 자원 확보’에서 등장하는 자원들은 인공지능(AI), 데이터,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등인데, 이는 ‘DNA(데이터ㆍ네트워크ㆍAI) 생태계 강화’를 꾀했던 문 정부의 디지털뉴딜 전략과 비슷하다. 

다만 결정적 차이는 있다. 혁신 주체가 다르다. 문재인 정부의 디지털뉴딜 전략은 총 사업비 58조2000억원(국비 44조8000억원)을 강조했다.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공공의 힘으로 전략을 실행하겠단 거였다. 새 정부의 디지털 전략에선 예산 얘기가 쏙 빠졌다.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신산업 분야 성장을 주도하는 게 아닌 민간 중심의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새 정부의 플랫폼 자율규제가 잘 작동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사진=뉴시스]
새 정부의 플랫폼 자율규제가 잘 작동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사진=뉴시스]

전략의 차이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건 기업을 향한 태도다. 문재인 정부는 플랫폼 규제 강화를 목표로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온플법)’의 입법을 추진했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 법을 사실상 폐기했다. 대신 플랫폼 사업자가 소상공인ㆍ소비자와 거래할 때 발생하는 불공정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방향의 ‘자율규제’를 추진하고 있다.  

윤 정부는 플랫폼과 입점업체, 소비자 등이 다양한 자율규제 방안을 논의하는 거버넌스인 자율규제기구를 구축했다. 현재 갑ㆍ을 분과, 소비자ㆍ이용자 분과, 데이터ㆍ인공지능(AI) 분과, ESG 분과 등 4개 분과로 나눠 운영하고 있다. 

윤 정부의 디지털 전략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자율규제책은 규제와 자율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은 불안 요소다. 징후는 벌써 나타나고 있다. 자율규제기구에서 논의 중인 이슈 가운덴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 게 적지 않다. 부처 협업이나 이해집단의 갈등을 조정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방증이다. 

윤 정부의 자율규제기구에 참석하고 있는 한 전문가는 “어떤 조항을 제시해도 기업들의 준수가 어려울 것 같다면서 반대를 하는 바람에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면서 “어느 쪽이 크게 양보하지 않는 이상 자율규제 가이드라인이 나오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인지 빅테크 등의 독과점에서 야기하는 문제를 방어할 수 있는 ‘법제화’를 공론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카카오 먹통 사태가 터지면서 다시 제기된 주장들인데, 이는 윤 정부의 정책 방향과 반대다.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는 “유럽이나 미국은 이미 빅테크 플랫폼의 독점적 지위로 인한 폐해를 체감하고 대책을 고심하며 만들어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면서 “세계적인 흐름에 발맞춰 시장의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하고 독과점 폐해를 예방할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물론 잘 정립된 자율규제를 기업들이 순순히 지킨다면 윤석열 정부가 원하는 디지털 혁신에 한걸음 다가설 가능성은 높다. 자율규제 성과를 지켜보고 규제철학을 정립한 이후, 사후규제로 나아가도 늦지 않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는 이유다. 

다만 자율규제를 추진하더라도 온전히 민간에만 맡길 게 아니라, 정부가 효율적으로 조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 교수는 “원래 규제는 타율적 개입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율규제라는 용어 자체가 형용모순일 정도로 어려운 과제”라면서 “정부는 이를 면밀히 설계해 혁신과 공정이 균형을 이루는 플랫폼 생태계가 조성되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현경 서울과기대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이걸 지키지 않았을 때 소비자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껴야 기업들도 자율규제를 준수할 것”이라면서 “이렇게 자율규제가 잘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윤 정부의 디지털전략에 숨은 문제는 또 있다. 전략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예산 계획을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산이 곧 정책’이란 관점에서 보면 언제든 실행 동력을 잃을 수 있다.

클라우드 비즈니스를 다루는 스타트업의 한 대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예산안에 디지털 전략 관련 예산을 책정하긴 했지만, 디지털뉴딜 전략처럼 선언적인 예산 숫자가 없다는 점이 아쉽다”면서 “아직 산업이 성숙하지 않은 분야는 정부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자율’을 강조했지만, 디지털 시장에선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조정자, 조율자 등 그 역할의 범주도 다양하다. 윤 정부는 ‘자율규제’란 형용모순을 극복하고 원하던 성과를 이뤄낼 수 있을까.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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