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尹의 처방전❺ 소상공인
소상공인 대출 잔액 1000조원
난방비 폭탄까지 맞아 흔들
규제 완화 정책 펼치는 尹 정부
지역화폐 국비 지원 예산 축소
대형마트 의무휴업 무력화 시도
글로벌+로컬=글로컬 괜찮나

‘규제’와 ‘보호’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어느 입장에 서느냐에 따라 규제가 될 수도, 보호가 될 수도 있어서다. 대형마트 의무휴업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유통업체 입장에선 ‘규제책’이지만 골목상권 입장에선 ‘보호책’이다. 윤석열 정부는 아마도 기업의 입장에 선 듯하다. 대형마트 규제 완화를 밀어붙이고 있어서다. 윤 정부의 소상공인 정책 정말 괜찮을까. 

소상공인 대출잔액이 2022년 사상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어섰다.[사진=뉴시스]
소상공인 대출잔액이 2022년 사상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어섰다.[사진=뉴시스]

‘예비 대통령 후보’와 ‘골목길 경제학자’가 만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출마선언 직전이던 2021년 6월 서울 연희동을 찾았다. 그곳에서 골목길 경제학자라 불리는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를 만났다. 숱한 미디어가 이 만남을 주목했다.

무엇보다 연희동은 특색 있는 가게들이 모여 골목경제를 이룬 곳이다. 모종린 교수는 “매력 있는 골목상권이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강조해온 학자다. 이 때문인지 사람들은 ‘그(윤석열)가 대통령이 된다면 골목상권에 새로운 바람이 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었다.

하지만 취임 8개월차를 맞은 윤석열 대통령은 “골목상권을 말려죽이려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발원지는 골목 속 소상공인들이다. 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지난 3년간 괴롭혀온 코로나19가 끝나는 듯했지만 금리인상, 경기침체, 물가상승이란 3중고가 덮쳤다. 팬데믹 기간을 빚으로 버텨온 소상공인들에게 지금의 위기는 너무 가혹하다. 자영업자 대출잔액이 지난해 말 사상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어선 건 단적인 예다.

여기에 각종 공공요금이 치솟으면서 소상공인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무엇보다 도시가스 요금이 38.7%(2022년 1월 대비 12월) 인상되면서 ‘난방비 폭탄’을 맞았다. 도시가스 요금은 올해 2분기 이후 추가 인상될 예정이다.

전기료도 무거운 짐이다. 정부는 올해 전기료를 1㎾h당 총 51.6원을 인상할 계획인데, 이는 지난해 전기료 인상분(19.3원)의 2.7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1월부터 오른 전기료(1㎾h당 13.1원)가 아직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상공인의 어려움은 시작에 불과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도세까지 인상될 조짐을 보이면서 팬데믹을 지나온 소상공인들에겐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는 벼랑 끝에 놓인 소상공인들에게 어떤 정책을 내놨을까. 그 정책은 또 직전 정부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 지역화폐 지원 축소 =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와 온도차를 드러낸 대표적인 소상공인 정책은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이다. 지역화폐 국비 지원을 늘렸던 문 정부와 달리 윤 정부는 올해 지역화폐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지역화폐는 2000년대 중반 몇몇 지자체가 지역 내 소비활성화를 위해 도입했다.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발행하고, 지역민이 지역화폐로 결제할 경우 일정 비율(5~10%)을 캐시백으로 돌려주거나 지역화폐 충전 시 할인해주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지역 내(유흥업종 제외)에서만 사용 가능한 데다, 대형마트·백화점 등 대형 유통채널에선 쓸 수 없다는 점에서 소상공인은 물론 지역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자료|한국은행, 사진 | 연합뉴스]
[자료|한국은행, 사진 | 연합뉴스]

여기에 2018년 정부가 국비 지원에 나서면서 지역화폐 도입 지자체가 급증했다. 정부는 고용·산업위기지역(군산·거제 등)을 중심으로 지역화폐 발행금액의 4~8%를 지원했다. 2016년 53개에 불과했던 지역화폐 도입 지자체 수는 2019년 177개로 늘어난 데 이어 현재 230여개(전체 243개)로 증가했다.

지역화폐 사용 시 제공하는 할인혜택은 지자체와 정부의 재원으로 마련했다. 특히 코로나19 기간엔 정부 지원이 큰 폭으로 늘었다. 2019년 884억원이던 국고지원금은 2020년 6689억원, 2021년 1조522억원으로 증가했다. 팬데믹으로 전환한 지난해에도 7053억원을 지원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9월 2023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지역화폐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당시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역화폐의 효과는 지자체에 한정되는 만큼 국고 지원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과 각 지자체는 즉각 반발했다.

정부 지원을 줄이면 지역화폐가 위축할 수밖에 없을뿐더러 현재로선 골목상권을 활성화할 뚜렷한 대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전 정부의 성공한 정책을 없애려는 것 아니냐” “‘이재명표’ 공약이라서 그런 것 아니냐” 등의 비판이 쏟아진 이유다.

논란 끝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지역화폐 예산을 되살렸고, 3525억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하지만 지난해 예산의 절반 수준에 불과해 일부 지자체는 지역화폐 발행액을 줄이거나 할인혜택을 축소했다. 

이성원 한국중소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소상공인에게 꼭 필요한 경제 정책인데 정치적 맥락에서 좌우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꼬집었다. 오세조 연세대(경영학) 교수는 “지역화폐는 지역경제 활성화에 효과를 나타냈다”면서 “정책의 연속성이 중요한 만큼 국가 재정 의존도를 낮추더라도 단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준석 대전세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역화폐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많은 투자를 했고, 소기의 성과가 있었던 만큼 지역화폐가 꾸준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대형마트 규제 완화 = 윤 정부는 ‘규제 완화’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문 정부와 차이가 있다. 대표적인 게 대형마트 규제 완화다. 사실 대형마트 규제를 도입한 건 이명박 정부다. 대기업 유통업체의 골목상권 침탈을 조금이라도 막아보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해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자정~오전 10시)하고 월 2회 의무휴업을 도입했다. 

하지만 대형마트 업계는 2018년 단체 헌법소원(패소 결정)을 제기하는 등 제도를 끊임없이 흔들어왔다. 또 유통산업발전법상 영업제한 시간이나 의무휴업일에는 점포 온라인 배송이 불가한데, “이 때문에 이커머스 업체 대비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운 윤 정부는 곧장 대형마트 규제 완화에 나섰다. 대통령실은 지난해 6월 ‘국민제안’ 사이트를 열었다. 국민들로부터 받은 제안 중 톱10을 추리고, 일주일간 투표에 부쳐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제안 3가지를 정책에 반영하는 게 골자였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해제가 톱10에 꼽혔고, 이후 투표에서도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았다. 하지만 투표 직후 어뷰징(조작) 논란이 일면서 일단락됐다. 

그럼에도 윤 정부는 규제 완화 의지를 꺾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국무조정실이 나서 대기업 유통업체와 중소유통업체 간 ‘상생협의회’를 출범한 데 이어 12월엔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상생협약의 주요 내용은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의무휴업일에도 온라인 배송 허용 ▲의무휴업일 관련 지자체 자율성 강화 등이다. 

기존 일요일이나 공휴일로 지정해야 했던 의무휴업일을 지자체가 평일로 조정할 수 있도록 방침을 세웠던 거다. “대형마트 규제를 개별 지자체의 손에 맡겨 제도가 와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상생협약 체결 직후인 지난해 12월 대구광역시가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에 나섰다. 마트산업노동조합은 “대구시가 일부 상인협회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골목상권을 죽이는 의무휴업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참고: 대구시는 2월부터 의무휴업일을 종전 둘째, 넷째주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전환한다.] 

양준석 연구위원은 이렇게 지적했다. “온라인 쇼핑 활성화로 대형마트 규제 효과가 과거보다 줄어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도 의무휴업일에는 지역 슈퍼마켓을 찾는 사람들이 많고, 제도 자체가 무용하다고 판단하긴 어렵다고 본다.” 

소상공인들의 시름이 깊어지는 가운데 중소벤처기업부는 ‘2023년 주요업무 추진계획(2022년 12월 발표)’을 내놓고 “골목상권을 ‘글로벌’에서 찾아오는 지역 대표 브랜드로 육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골목상권의 세계화와 현지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이른바 ‘글로컬(Glocal)’ 전략이다. 맞는 말이고, 옳은 방향이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얼마나 좋겠느냐만 꽁꽁 얼어붙은 골목상권에 ‘글로컬’이 싹틀 수 있을지부터 점검해 볼 일이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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