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은 총재, 부동산 비관 전망
파월 의장 한마디에 8일 주가 급락
부동산 완화정책 후 분양 경쟁률 폭등
중앙은행장의 말과 엇갈린 정책

7일 미국과 한국의 중앙은행장이 각각 카메라 앞에서 대중의 심리를 자극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구두개입을 하는 건 중앙은행장의 중요한 업무다. 제롬 파월의 기준금리 발언은 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내뱉은 부동산 발언의 여파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적절한 구두 개입으로 시장에 영향을 준다. [사진=뉴시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적절한 구두 개입으로 시장에 영향을 준다. [사진=뉴시스]

트레버 노아는 지난해 5월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에 초청받아 조 바이든 대통령 옆자리에서 풍자 코미디를 선보인 유명 코미디언이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당신이 흑인 혼혈 남성 옆에 있으면 지지율이 높아져서 나를 초청한 것 같다”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소환하기도 했다.

트레버 노아가 자주 사용하던 농담 중엔 경제를 풍자한 것이 있다. “미국인은 야구 얘기를 할 때는 온갖 통계를 다 사용하는데, 정작 경제를 설명할 때는 숫자 하나 없이 심리 얘기만 한다.” 

‘경제는 심리’라고들 한다. 1930년대 존 메이너드 케인스, 어빙 피셔와 같은 거시경제학자들은 적극적으로 심리학 개념을 받아들였다. 1950년대 들어선 인간의 심리를 경제학 이론에 적용한 행동경제학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 

지금과 같은 개념의 행동경제학은 1970년대 심리학자 출신 대니얼 카너먼과 경제학자 아모스 트버스키가 발전시켰다. 1970년대 이후의 이런 흐름을 신행동경제학이라고 한다. 이는 구행동경제학과 달리 심리학 이론을 경제이론모형 안에서 설명해낸 게 특징이다. 그런데 이렇게 발전한 신행동경제학 체제 아래서도 여전히 트레버 노아의 농담은 유효해 보인다.

■ 파월 의장의 말= 7일 미국과 한국의 중앙은행장이 각각의 카메라 앞에서 대중의 심리를 자극했다.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구두개입을 하는 건 중앙은행장의 중요한 업무다. 중앙은행장의 말이 떨어지면 외환시장은 즉각 반응하고, 최근 미국에서처럼 기준금리를 두고 기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은 7일(현지시간) 올해 반기 통화정책 보고서를 제출하기 위해 미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했다. 파월 의장은 모두발언을 통해 “인플레이션 지표들이 올해 1월 완화 추세를 보였지만 부분적으로 반등해 물가 압력이 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예상보다 높아졌다”며 “최종 금리 수준은 이전에 전망한 것보다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최종금리 수준을 묻는 질문에는 “가장 최근인 지난해 12월 FOMC 회의에서 참석자들이 5.0~5.5%를 예측했지만 발표된 데이터들을 볼 때 이보다는 높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파월 의장은 앞으로 금리인상 여부를 결정할 때 주목할 부분도 공개했다. 그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을 구성하는 상품, 주택, 주택 제외 서비스에서 물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관측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주택 부문에서 임대료 하락이 얼마나 빨리 물가에 반영되는지도 살펴보겠다고 덧붙였다. 

시장의 반응은 빨랐다. 파월 의장의 발언으로 연준이 3월 FOMC에서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다우존스지수는 이날 1.72% 하락했고, S&P500 지수는 1.53%, 나스닥지수는 1.25% 하락해 장을 마쳤다. 미국의 장·단기 금리차는 1981년 이후 가장 크게 역전됐다. 

파월 의장의 발언은 미국 내에서만 유효하지 않다. 발언 여파로 이날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3.6% 급락했다.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가 1.2% 상승하면서, 원·달러 환율은 8일 오후 현재 전날보다 1.19% 오른 달러당 1321.50원을 기록하고 있다.

■ 한은 총재의 말=파월만이 아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입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총재는 7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지난 2월 기준금리를 1년 만에 동결한 것과 관련해 “만일 경기를 정말 걱정했으면 금리를 인하했을 것”이라며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또 “당분간 금리인하 논의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이날 기자의 질문을 받고 부동산 시장을 조망하는 의견을 내놨다. 이 총재의 부동산 시장 분석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집값이 2년 동안 약 40% 올랐다가 지난해 19~20%가량 떨어졌다. 올해도 고금리 영향 등으로 조정되는 국면에 있다. 너무 빨리 가격이 하락해서 금융안정에 영향을 주는지 여부를 관찰하는데, 다행히 하락 속도가 조금 완화돼서 연착륙 가능성이 보인다. (사람들은) 우리나라 부동산은 대마불사이고, 부동산 투자를 하면 성공한다는 견해에 잡혀있는데, 고령화 등을 고려하면 과거 추세가 미래에 계속될 거란 생각은 다시 고민해 봐야 한다. 한국은 세계 1위 수준의 저출산·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사회다. 미래에는 주택 수요 위축이 우려된다. 집을 살 정도의 자금력을 지닌 대체 수요층이 등장할지는 결코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자율 등을 고려할 때 젊은 사람이 자기 능력에 맞는 고민을 하고, 신중하게 자산을 운용하기 바란다.”

■ 부동산 흔드는 말의 힘=이 총재의 발언은 추가 하락과 반등 사이에서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는 부동산 시장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이익보다는 손실 가능성에 초점을 두는 설명 방식은 살펴볼 가치가 있다. 

집값 논란이 계속되는 건 미국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 신규 주택 판매 건수가 시장 예상치보다 높게 반등하고, 지난 2월 연준의 금리인상이 예상보다 일찍 종료될 수 있다는 월가의 전망이 퍼지자,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연은)은 “미국 집값이 추가로 19.5% 더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며 “통화정책이 예상보다 더 긴축적이기 때문에 더 가혹한 가격 조정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3일 발표된 미국의 중간 주택가격은 35만246달러로 1년 전보다 0.6% 하락하며 다시 안정세를 보였다. 미국의 중간 주택가격이 전년보다 떨어진 건 2012년 이후 처음이다. 

물론 연은의 개입만으로 집값이 잡혔다고 볼 순 없다. 다만, 주택 구입 희망자들이 금리인상과 긴축이 자신들의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고 판단하는 근거 중 하나로 작용했던 것은 틀림없다. 

■ 중앙은행-정부의 엇박자=문제는 중앙은행장의 부동산 시장 전망과 정부의 부동산 부양책이 일부 어긋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나라가 그렇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월 3일 미분양 대책을 통해서 강남3구와 용산을 제외한 규제지역 해제, 전매제한 기간 완화, 12억원 이상 주택 중도금 대출 허용을 결정했다.

부동산 하락기에 연착륙을 위한 장치로 해석하기엔 부동산 관련 세금 규제 완화 조치가 많았다. 다주택자의 양도세 중과를 배제하고, 종합부동산세 기본 공제금액을 상향 조정했기 때문이다. 

1·3 부동산 대책 이후 처음 분양에 나선 영등포구 양평동 ‘영등포자이 디그니티’ 1순위 청약에는 7일 98가구를 뽑는 데 1만9478명이 몰려들어 평균 경쟁률 198.75대 1을 기록했다. 인기 면적대의 경우 최고 356.89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중앙은행 총재의 부동산 언급이 앞으로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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