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펀드 두 얼굴➌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
주주민주주의 내세우지만
약탈적 본능이란 위험성 존재
표면적 명분과 속성의 간극
행동주의펀드의 태생적 이중성
SM엔터·홀푸드·허츠 사례 탐구

올해 3월 주총에선 행동주의펀드의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사진은 지난해 삼성전자 주총 모습.[사진=뉴시스]
올해 3월 주총에선 행동주의펀드의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사진은 지난해 삼성전자 주총 모습.[사진=뉴시스]

# 장기비전과 뚝심

2017년 무렵. 미국의 자연산·유기농 식료품 업체 홀푸드(Whole Foods Market) 경영진은 ‘장기 비전’을 뚝심 있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중 고객 수요에 따라 재고를 관리·공급하는 ‘백오피스(BackOffice) 시스템’ 도입 작업은 많은 소비자의 지지를 받았다. 작업만 잘 마무리하면 경쟁사처럼 비용은 줄이고 매출은 늘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홀푸드 경영진에겐 고민거리가 하나 있었는데, 그건 신통찮은 실적이었다.

# 헤지펀드의 등장

1980년 창립 이래 고속성장하던 홀푸드의 매출은 2015년 10월을 기점으로 꺾였다. 미국의 주요 소매업체 지표인 ‘동일매장(신점포 제외)’ 매출도 2015년 9월~2016년 9월 1년 새 2.5% 줄었다.

‘월가의 총아寵兒’란 별칭이 무색하게 주가는 바닥을 맴돌았다. 2016년 4월 이후 1년간 S&P500지수가 15% 상승하는 동안, 홀푸드의 주가상승률은 1.5%에 그쳤다. 몇몇 주주에겐 분명 마뜩지 않은 성적표였다. 바로 그때 마치 ‘이리떼’처럼 세력을 규합한 헤지펀드가 등장했는데, 다름 아닌 자나파트너스였다.

2017년 4월 홀푸드의 지분 8.8%를 사들이면서 2대 주주에 오른 이들은 기존 주주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우린 홀푸드가 턴어라운드(실적 개선) 속도를 높이고, 가능하면 매각을 고려하길 원한다.” 기업 가치를 당장 끌어올리지 않으면, 경영진을 교체하겠다는 엄포였다.

위협을 느낀 홀푸드 경영진은 비용을 절감하고 매장 수를 늘리려던 미래 비전을 포기했다. 대신 단기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을 폈다. 홀푸드 창업자 존 매키는 자신의 저서 「의식 있는 리더십(Conscious Leadership)」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2017년께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한 헤지펀드 자나파트너스가 홀푸드의 매각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난 홀푸드 고유의 브랜드 가치가 망가질 것이란 우려가 들었다.” 존 매키는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먼저 그의 철학부터 살펴보자.

# 행동주의펀드의 습격

1980년 홀푸드를 창업한 존 매키는 독특한 CEO였다. 그는 무조건적인 이윤 추구를 거부했다. 이익금 중 일부를 지역경제에 환원했고, 지역 농부들이 기른 제품을 따로 팔기도 했다. 이민자나 소수민족을 채용하는 일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무엇보다 홀푸드마켓에서 제품을 판매하려면 ‘동물 학대’ 없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했다. 그만큼 홀푸드는 ‘느림과 공감의 경제학’을 추구했다.

이런 그에게 ‘단기수익’을 앞세운 자나파트너스의 습격은 눈앞까지 칼날이 들어온 것이나 다름 없었다. 실제로 자나파트너스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우려한 존 매키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미국의 슈퍼마켓 프랜차이즈 앨버트슨스(Albertsons)를 경유한 끝에 2017년 7월 아마존에 회사를 넘겼다. 당시로선 아마존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M&A(137억 달러)였다.

이처럼 홀푸드의 ‘M&A 단추’는 존 매키가 끼웠지만, 불씨를 제공한 건 자나파트너스였다. 그럼 이쯤에서 한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아마존에 넘어간 지 7년여가 흐른 지금, 홀푸드의 정체성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을까. 그렇게도 비판받았던 ‘주주가치’는 회복됐을까.

SM엔터 경영권 분쟁의 불씨를 붙인 건 행동주의펀드다. [사진=뉴시스]
SM엔터 경영권 분쟁의 불씨를 붙인 건 행동주의펀드다. [사진=뉴시스]

# 주주민주주의 발현

답을 찾기 전에 관점을 ‘주주행동주의’로 옮겨보자. 이 낯선 용어를 쉽게 풀면 다음과 같다. “주주는 오너나 경영진의 선택을 소극적으로 수용해선 안 된다. 그들을 적극적으로(Positive) 감독하면서 직접 행동에 나서야 한다(Activism). 그래야만 회사와 주주의 가치가 동시에 향상된다.” 쉽게 말해, 기업의 지배구조를 ‘주주 중심’으로 재설정하는 게 주주행동주의의 목표란 거다.

이런 주주행동주의를 지향하는 금융 세력을 ‘행동주의펀드’라 지칭한다. 이들은 지분 취득을 통해 일정한 의결권을 확보한 후, 기업의 지배주주나 경영진을 향해 ▲자산 매각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 등을 요구한다. 홀푸드 M&A의 방아쇠를 당긴 자나파트너스가 대표적 사례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행동주의펀드가 활약하고 있다. 최근 SM엔터테인먼트의 경영권 분쟁을 불러일으킨 얼라인파트너스,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 이의를 제기한 엘리엇파트너스 등이 바로 행동주의펀드에 해당한다.

행동주의펀드의 근간은 ‘주주민주주의’다. 다수의 의견을 전면에 내세운 이 펀드는 철학상 지배주주의 독단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익을 추구하려는 그들의 욕망도 막아세운다. 지배주주나 경영진의 사사로운 욕심을 억제해야 회사와 주주의 부富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게 이 펀드의 신념이다.

행동주의펀드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도 한다. 이들이 주총 같은 공론의 장에 올린 안건은 종종 사회·경제적 변화를 이끄는 신호탄 역할을 한다. 2015년 행동주의펀드 엘리엇이 삼성을 향해 던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 논리적 결함은 없느냐’란 질문은 한국경제에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비록 엘리엇이 소송에서 모두 패하긴 했지만, 쥐꼬리 지분으로 그룹을 지배하던 국내 재벌의 문제점을 공론화하는 덴 성공했다. 그 방향이 맞든 틀리든, 재벌 오너의 결정에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국내 기관투자자와는 다른 발걸음이었다. [※참고: 엘리엇은 2016년 삼성물산 지분 7.12%를 매각해 엄청난 시세차익을 올리고 한국을 떠났다. 이 때문에 엘리엇은 최악의 행동주의펀드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속내야 어찌 됐든 행동주의펀드 얼라인이 SM엔터의 내재적 가치를 훼손하던 ‘이수만 전 총괄 PD’의 개인사업체(라이크기획) 문제를 공론화한 것도 되짚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하이브-이수만’ ‘SM엔터-카카오’ 중 어떤 진영이 승리하든 잠재적 위험요인을 제거하는 게 장기적으론 기업 가치의 제고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이런 점에서 행동주의펀드는 인적 유대감 없이 자본으로만 연결된 소액주주에게도 반가운 세력이다. [※참고: 커버 파트2 행동주의펀드가 띄운 SM 드라마의 비밀.] 

# 칼 아이칸과 허츠의 몰락

그렇다고 행동주의펀드가 소액주주에게 유리한 가치만 전하는 건 아니다. 명목상으론 주주민주주의를 근간으로 삼은 건 맞지만, ‘단기간 고수익’을 추구하는 헤지펀드의 약탈적 본능을 무시하긴 어렵다. 표면적 명분과 내재적 속성의 간극이 크다는 거다.

이런 이유로 ‘주주가치를 제고하라’는 요구에 경영진이 지나치게 동조하는 순간, 되레 행동주의펀드가 부정적 편익을 취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미국 주주행동주의의 현대적 전개와 성과에 관한 비판적 고찰·장우영· 2020년).

또다른 한편에선 “행동주의펀드가 견인한 것으로 알려진 실질적 편익은 단 한번도 검증된 적 없다”는 냉소적 분석도 내놓는다. ‘렌터카 사업의 원조’ 허츠(Herts)의 속절없는 몰락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2005년 자동차 업계의 출혈경쟁으로 궁지에 몰린 포드자동차는 허츠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허츠의 새 주인은 칼라일·메릴린치를 필두로 뭉친 사모펀드(PEF) 컨소시엄이었다. 하지만 허츠는 매각 이후 사모펀드의 자금줄로 전락했다. 사모펀드는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단기배당을 하거나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무차별적으로 발행했다.

허츠의 가치가 땅으로 떨어진 2014년 주주행동주의자 칼 아이칸이 등장했다. 그는 ‘주식 저평가’를 명분으로 내세워 경영진 교체를 요구한 뒤 스스로 경영 전면에 나섰다. 주주행동주의의 상징적 행보였지만, 허츠의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코로나19가 불어닥친 2020년 칼 아이칸은 20억 달러의 손실만 입은 채 허츠에서 발을 뺐다. 칼 아이칸으로선 ‘실익 없는 엑시트’이자 ‘웃픈 결과’였다. [※참고: 커버 파트1 야누스의 얼굴과 행동주의펀드의 깃발.]

# 아마존과 홀푸드의 성과 

자! 이제 첫 질문으로 돌아와보자. 7년 전 아마존이 인수한 홀푸드는 어떤 성과를 내고 있을까. ‘아마존식 혁신’이 홀푸드의 정체성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아마존에 합류한 뒤 홀푸드의 독특함은 희미해졌다.

일부 고객은 아마존의 가격인하책과 편의성이 자연산·유기농이란 홀푸드 특유의 가치를 깎아내렸다면서 못마땅하게 여긴다. 이민자나 소수민족을 채용하던 상생의 문화도 조금은 변질된 듯하다. 

주주행동주의를 주창한 칼 아이칸은 2014년 허츠를 살려내지 못했다. [사진=뉴시스]
주주행동주의를 주창한 칼 아이칸은 2014년 허츠를 살려내지 못했다. [사진=뉴시스]

행동주의펀드가 주장했던 것처럼 홀푸드의 기업가치가 몰라보게 개선됐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이마저도 낙제점에 가깝다. 시장조사업체 뉴머레이터에 따르면, 아마존닷컴(1.3%)과 홀푸드(1.1%)를 합친 아마존의 식료품 시장점유율(2021년)은 3%를 한참 밑돌았다. 1위 월마트의 점유율과는 무려 16%포인트 차이다. 이런 홀푸드의 사례는 행동주의펀드가 목적과 기대에 부합하는 결과를 ‘백이면 백’ 낼 수 없음을 시사한다.

# 야누스의 얼굴과 3월 주총

3월 주총 시즌이 다가오자 행동주의펀드의 기세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KT&G ·BYC·남양유업·태광산업 등 행동주의펀드가 이슈를 불러일으킨 기업은 숱하다. 이 펀드를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세간의 평가도 제각각일 게 분명하다. 행동주의펀드는 마치 동전처럼 태생적 양면성을 품고 있어서다. ‘야누스’란 가면을 쓴 이들은 3월 주총에서 어느쪽 얼굴을 드러낼까.

이윤찬 더스쿠프 편집장
chan4877@thescoop.co.kr

강서구·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 535호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은 3월 6일 발간한 더스쿠프 커버 총론입니다. 이어지는 기사 「3월 주총과 행동주의펀드의 깃발」 등과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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