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없는 전기차 충전기 2편
충전기 사고율 낮다는 이유로
안전 설비 설치 규정한 법 부재
50층 이상 초고층 아파트만
의무 설치 건물 대상에 해당
안전 사고 방지할 대안 있나

우리는 ‘안전 없는 전기차 충전기’ 1편에서 전기차 충전 시설의 허점을 지적했다. 무엇보다 전기차 관련법에 ‘안전 규정’이 전혀 없다는 점은 되짚어봐야 할 부분이다. 관건은 이미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설치됐거나 지금 설치 중인 전기차 충전 시설의 위험성을 어떻게 해소하느냐다. 정부는 “전기차 충전 시설에서 불이 날 확률이 지극히 낮다”면서 제대로 된 안전 법규를 마련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해결책을 기대할 수 있을까. 

안전 설비 없는 전기차 충전 시설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안전 설비 없는 전기차 충전 시설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출퇴근길에, 나들이길에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이용하면서 이곳이 ‘위험하다’고 생각해 본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운전자에게 주차장은 말 그대로 ‘차를 대놓는 공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용하던 아파트 지하주차장은 사실 24시간 위험에 처해 있다. 전기차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지하주차장에도 전기차 전용 충전 시설이 하나둘씩 생겨난 탓이다. 전기차 충전 시설이 위험을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부터 자세히 살펴보자. 

2022년 1월 친환경자동차법 시행령 개정으로 우리나라에선 100세대 이상 아파트에는 무조건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하게 됐다. 이 때문에 상당수 충전기가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만들어졌다. 

만약 이곳에서 충전기 합선이나 과부하로 화재가 났다고 가정해보자. 공간이 개방돼 있고 곳곳에 창문이 있는 지상과 달리 개구부가 없는 폐쇄적 구조의 지하에선 열연기가 빠져나가지 못한다.

운전자들이 지하에서 지상으로 대피하려고 해도, 아래에서 위로 움직이는 열연기의 방향과 동선이 겹친다. 더욱이 열연기의 속도는 사람의 이동 속도보다 빠르기 때문에 운전자들은 피신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연기를 마실 수밖에 없다. 

위험은 이뿐만이 아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지하주차장에 설치한 대부분의 충전기는 고전압 배전함 근처에 있다. 배전함에서 충전에 필요한 전기를 끌어오기 위해서다. 만에 하나 충전 시설에 이상이 생기면 가까이 있는 고전압 배전함이 화재의 불씨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배전함에 달라붙은 불은 전류와 만나 더 큰 불길을 일으킬 수 있다. 이 경우 최소한의 안전설비조차 없다면, 종국에는 주차장 전체가 불에 타 붕괴될 공산이 크다. 단지 ‘사고 횟수가 드물다’ ‘비용이 많이 들고 효율이 떨어진다’는 명분으로 안전 설비를 경시해선 안 되는 이유다. 

이처럼 언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전기차 운전자들의 안전을 지킬 당장의 대안은 있는 걸까. 방법이 없진 않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소방방재학) 교수는 “건축물이 ‘성능위주 설계대상’에 해당하는 경우 방재를 위한 안전 설비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50층 이상 초고층 아파트가 아니면 충전기 안전 설비를 의무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내에선 50층 이상 초고층 아파트가 아니면 충전기 안전 설비를 의무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화재하중이나 환기요소를 고려하지 않은 ‘시방위주 설계’와 달리 성능위주 설계는 건축물의 소재ㆍ구조ㆍ온도 등을 통해 화재가능성을 예측하고, 내화(불에 타지 않고 잘 견디는 것) 성능을 강화하도록 돼 있다.

소방청의 행정규칙 중 하나인 ‘소방시설 등의 성능위주 설계 방법 및 기준’ 제5조 1항에 따라 지자체 건축심의위원회는 성능위주 설계 신고서를 확인·평가하고 검증하는 역할을 한다. 이때 신고서에 안전설비 마련이 포함돼 있지 않으면, 건축심의위원회는 해당 건물의 건축 인가를 불허할 수 있다. 건설사로선 건축 허가를 받기 위해서라도 안전설비를 갖춰야 한다. 일종의 ‘간접적 의무’인 셈이다. 

문제는 성능위주 설계 대상의 범위가 한정적이란 점이다. 아파트의 경우 50층 이상(지하층 제외)이거나 지상으로부터 높이가 200m(미터) 이상인 건물만 성능위주 설계 대상에 포함된다(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ㆍ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사정이 이렇다보니 ‘초고층’이 아닌 대부분의 아파트에는 소화전이나 자동화재탐지설비, 스프링클러 같은 기본적인 방화시설만 있을 뿐이다. 

안전 설비 갖출 대안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정부나 국회 차원의 발빠른 법제화를 기대할 수도 없다. 지난해 9월 정찬민 국민의힘 의원은 친환경차 충전 시설에 안전 설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내용을 담은 친환경자동차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법안은 여전히 국회 소관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11월엔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전기차 충전설비 전주기 안전관리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지만, 개정해야 할 기술기준과 관련 규칙이 많은 탓에 언제쯤 시행을 확정할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뾰족한 수가 없는 상태에서 당장 시도할 수 있는 건 위험회피 전략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창우 교수는 “해외의 경우 주차장은 지하에 있어도 충전기는 지상에 설치하는 게 일반적”이라면서 “우리나라는 지하주차장에서 주차와 충전을 동시에 하는 게 가능하지만, 해외에선 주차와 충전을 철저하게 분리한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이어 “주차와 충전을 병행하면 충전기가 과부하하면서 사고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우리도 주차와 충전 시설을 떨어뜨려 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호근 대덕대(미래자동차학) 교수는 “설비 중심의 대책은 장기적 관점에선 반드시 필요하지만 단기적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면서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제시했다.

“가령, 전기차 배터리가 95% 이상 충전되면 화재 위험성이 높아지는 만큼, 완충 이후 주차 시간이 10분을 초과하면 추가 요금을 부과하는 것도 안전사고를 방지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아울러 배터리 화재사고의 주요 원인인 덴드라이트 현상(전류의 흐름을 방해해 배터리를 손상하는 것)이 잦은 급속충전기 요금을 지금보다 더 올려 이용률을 낮추는 것도 방법이다. 말하자면 ‘수동적 축소’ 전략으로 안전사고의 가능성 자체를 줄여버리는 거다.” 

국내 전기차 시장은 불경기 속에서도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기차의 대중화를 뒷받침하는 충전기 보급에서도 해외 주요국에 뒤처지지 않는다. 

하지만 안전 설비 하나 없이 무작정 늘어나기만 하는 충전 시설은 향후 각종 사고와 재난이라는 커다란 후폭풍을 불러올 수 있다, ‘전기차 40만대 시대’를 눈앞에 둔 지금, 우리가 가장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은 운전자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충전 시설의 안전성 아닐까. 정부가 여전히 지지부진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는 지금, 골든타임은 머지않았다.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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