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없는 전기차 충전기 1편 
빠르게 늘어나는 전기차 충전기
아파트 지하주차장도 예외 없어
하지만 ‘안전 설비’ 없는 곳 숱해
안전 설비 의무화한 법·제도 없어
폐쇄적인 지하 공간 사고 위험 커
안전 사각지대 놓인 전기차 충전기   

국내 전기차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충전 시장은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사진=연합뉴스]
국내 전기차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충전 시장은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사진=연합뉴스]

전기차가 대중화하면서 충전 인프라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전기차 충전기 보급 대수는 빠르게 늘고 있다. 하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충전 시설엔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안전 설비가 충분히 설치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전기차 충전 시설을 설치할 때 적용할 수 있는 ‘안전 법규’도 전혀 없다. 충전기 시장은 어쩌다 안전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을까. 안전 없는 전기차 충전기 시장, 첫번째 편이다.

국내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최근 3년간 하이브리드차를 제외한 순수전기차 판매량은 2020년 4만5000대→2021년 9만7000대→2022년 15만7000대로 무려 248.9% 급증했다. 2022년 우리나라의 전체 자동차 판매량은 168만4000대였는데, 이중 전기차의 비중은 10%에 육박했다. 지난해 도로 위를 달린 자동차 10대 중 1대는 전기차였다는 뜻이다.

전기차가 확산하면서 내연기관차의 ‘연료’와 같은 역할을 하는 전기차 충전기도 빠르게 보급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22년 12월 기준 전국의 전기차 충전기(급속ㆍ완속) 설치 대수는 20만5205기다. 지난해까지 전기차 누적 보급 대수가 38만9855만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전기 1기당 전기차 1.9대를 충전할 수 있는 수준이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선 이 숫자가 낮으면 낮을수록 충전기 보급이 활성화한 것으로 해석한다. 하나의 충전기에 다수의 전기차가 몰릴수록 운전자들의 편의가 떨어져서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전기차 시장의 충전 인프라는 낙제점이 아닌 셈이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숫자 뒤에는 치명적인 허점이 있다.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할 때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 ‘안전 설비’ 규정이 전혀 없다는 거다. 전기차의 소관 법률인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약칭 친환경자동차법)’에는 총 16개 조항이 있는데, 그 어디에도 ‘안전’이란 용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친환경차 보급을 담당하는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와 환경부의 내부 지침에도 ‘충전기 설치 시 안전 설비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는 의무 조항은 없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전기차 충전 시장의 안전 문제를 공론화했던 권동현 선임비서관(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현재로선 충전기 안전 설비와 관련한 법제가 전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나마 지자체 혹은 지역별 소방재난본부와 같은 화재안전 관련 기관에서 자체적인 안전설비 기준을 마련해 운영 중이지만, 이마저도 강제성 없는 ‘권고’에 불과하다. 전기차 충전의 심각한 안전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참고: 지난 7일 서울시 중구는 자체적인 주차 안전기준을 마련했다. 지하주차장의 경우 피난층과 가까운 1층에 설치하고, 차수판과 급수설비 등의 전기차 전용 소화설비를 갖춘다는 게 골자다. 중구는 이 기준을 건축물 신·증축 심의에 적용해 강제력을 부여하기로 했다.]  

국내에는 전기차 충전 시설에 안전 설비를 의무 설치하도록 규정한 법제가 없다.[사진=연합뉴스]
국내에는 전기차 충전 시설에 안전 설비를 의무 설치하도록 규정한 법제가 없다.[사진=연합뉴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소방방재학)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전기차 충전 시설을 구축할 때 안전 설비를 설치하느냐 마느냐는 업체의 자율적 판단에 따라 정해진다. 대부분의 충전기 공급 업체들은 안전 설비는 고사하고 충전기만 덜렁 설치하는 실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 역시 “2018년 부산소방재난본부에서 ‘안전 설비 설치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아파트 건설사들에 이를 반영할 것을 직접 권고했다”면서 “하지만 강제력이 없으니 건설업체는 안전 설비를 설치해도 안 해도 그만”이라고 밝혔다.  


이쯤에서 전기차 운전자들은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아무리 의무 조항이 아니더라도, 사고 위험이 존재하는 만큼 안전 설비는 기본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일견 합리적 의문이다. 그렇다면 충전기 공급 업체들은 왜 안전 설비를 따로 마련하지 않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경제성과 효율성 때문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전체 전기차 안전사고 건수에서 충전으로 인한 사고는 극히 적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런데 전기차 충전 관련 기기를 만드는 산업 현장을 다녀보니 (소화 도구 중 하나인)질식포는 200만원, 화재 시 자동으로 수중 디핑(물체를 액체에 담그는 것)을 해주는 장치는 1000만원 정도 했다”고 말했다. 이를 좀 더 자세하게 풀면, 안전 설비를 설치해봤자 비용 대비 가용성이 떨어져서 그동안 ‘의무’ 규정이 없었다는 얘기다. 

충전 시설에 안전 설비 없는 이유 


이창우 교수는 “전기차 충전기로 인한 사고가 드물다 보니, 안전 설비를 의무화한다고 했을 때 자칫 ‘과잉 설비’가 되지 않겠냐는 반론도 있다”면서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설사 안전 설비를 갖춘다고 해도 운전자들이 이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란 시각이 있다. 가령, 화재 사고가 발생했을 때 양옆에서 물을 방사하는 차수판의 경우 운전자들이 콘센트를 꽂지 않으면 아예 작동하지 않는다. 높은 비용을 들여 안전 설비를 설치해도 운전자의 책임의식이 따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 거다.” 

이호근 대덕대(미래자동차학) 교수도 “이를테면 주차장에 질식포가 있어도 운전자 혼자서는 컨트롤할 수 없다”면서 “결국 누가 안전설비를 운영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되는데, 이는 관리비나 인건비 등의 고정비용과 연관되기 때문에 ‘들이는 비용만큼 방재 효과가 있을 것이냐’는 질문이 계속해서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런 부정적 시나리오를 무조건 수용할 순 없다. 전기차 충전 시설로 인해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도 어떤 경우에든 존재한다. 특히 수도권 아파트에 인구가 집중된 우리나라의 주거 형태를 간과해선 안 된다. 대부분의 아파트가 지하주차장을 사용하는 데다, 50층 이상의 ‘초고층’ 아파트가 아닌 이상 충전 시 사고를 방지할 만한 장비를 충분히 갖추지 못하고 있어서다.

역으로 풀면, 아파트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시민들이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그 배경은 무엇일까. 자세한 내용은 2편에서 살펴보자.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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