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리퍼블릭 뱅크에 자금 지원
은행 연쇄 부도 방파제 역할 할까
신뢰 붕괴시대, 세계 금융 어디로

우리는 미국 은행의 연쇄 부도 사태 1편에서 현재 미국의 상황을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에 빗대 점검했다. 예상대로 공포가 전염된 미국 시중은행의 연체율은 치솟고 있었고, 국내도 다르지 않았다. 이번 2편에선 유럽과 일본의 상황을 점검하면서 미 재정적자, 신뢰 붕괴 등 불안한 변수를 짚어봤다. 

스위스 은행 크레디트스위스가 5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사진=뉴시스]
스위스 은행 크레디트스위스가 5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사진=뉴시스]

■ 손실 증가=은행의 줄파산은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다음 뇌관은 유럽이 될 가능성이 꾸준히 지적되고 있다. 스위스 은행 크레디트스위스가 2021년 이후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크레디트스위스 주가는 지난 1년 동안 63.67% 떨어지고, 올해 들어서도 13.93% 하락했다. 

크레디트스위스의 위기는 투자 실패에서 비롯됐다. 이 회사는 2021년 3월 영국 그린실 캐피털이 파산하면서 17억 달러 손실을 입었고, 4월에는 한국계 빌 황이 운영하던 아케고스캐피털이 파산하면서 55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크레디트스위스의 운용자산 규모는 지난해 4분기 기준 1조3000억 스위스프랑(약 1780조원)이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지난해 4분기에도 13억9000만 스위스프랑(약 1조90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면서 5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총 순손실 규모도 72억9000만 스위스프랑(약 9조9800억원)으로 금융위기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세계 금융계에서 막대한 손실을 기록하고 있는 또 다른 회사는 일본의 소프트뱅크다.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는 크레디트스위스와 함께 지난해 3월 그린실 캐피털 파산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전펀드가 그린실에 베팅한 투자금은 총 15억 달러에 달한다. 소프트뱅크는 지난해 암호화폐 거래소 FTX가 파산할 때도 1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월 발표된 소프트뱅크의 지난해 실적에 따르면, 비전펀드는 4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해 지금까지 누적 6조2000억엔(약 60조원) 손실을 입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창립 이후 처음으로 지난 2월 실적 발표 현장에 불참했다. 

이 때문인지 소프트뱅크는 반도체 기업 ARM의 상장 프로젝트에 사활을 걸고 있다. 소프트뱅크의 목표는 ARM을 미국 증시에 상장해 80억 달러(약 10조4000억원)를 조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프트뱅크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진 의문이다. 상장 가능성도 불명확하지만, 성공해도 막대한 손실을 덮기엔 역부족이다.

■ 재정적자 부메랑=이렇게 미국을 넘어 유럽, 일본 금융회사가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재정적자는 더 큰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재정적자는 총수요를 끌어올린다는 점에서 단기적으로 좋은 효과를 보인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향후 10년간 2조9000억 달러에 달하는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를 줄이겠는 계획을 세워놨다.

구체적 방법론으론 억만장자 자산증가분에 25%의 세율로 과세하고,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을 현행 37%에서 39.6%로 높이며, 법인세 세율 최고구간을 28%로 끌어올려 재정적자를 줄일 방침이다. 재정적자를 줄여야 할 시기라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참고: 부유층에게 증세를 하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시도는 공화당에 의해서 저지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적절한 시기에 재정적자를 해소하지 못한 대가를 치르게 될 수도 있다.]

이론적으로 재정적자는 국가 저축을 감소시킨다. 이는 대출 자금의 공급 비용을 높여 이자율을 끌어올리고, 이에 따라 기업과 가계의 투자가 감소한다. 이자율은 달러화 가치에도 영향을 준다. 국채의 주요 투자자인 외국인들이 높은 이자율의 국채를 매입하기 위해 달러화를 사는 과정에서 그 수요가 증가해서다. 

여기서 재정적자의 본질을 생각해야 한다. 재정적자는 현재의 납세자에게 혜택을 주고, 그 부담을 미래의 납세자가 지는 것이다. 재정적자의 규모가 늘어날 때에도 정부를 향한 투자자의 믿음이 굳건하다면 문제가 없지만, 만약 어떤 이유에서든 투자자의 신뢰가 하락하면 자산 수요가 급감해 경착륙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재정적자가 세계 은행 위기를 부채질할 수 있다는 거다. 

■ 불신의 전염=세계 각국의 은행이 연쇄 부도 위기에 몰린 지금, 투자자가 주목해야 할 건 또 있다. 신뢰다. 투자자‧납세자의 정부나 금융 시스템을 향한 신뢰는 영원하지 않다.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의 오렌지카운티 지방정부는 1994년 16억 달러의 투자 손실을 기록했는데, 카운티 정부가 이 손실분을 상환하기 위해서 소비세를 7.7%에서 8.1%로 증세하는 안을 주민투표에 부쳤다. 주민들은 이를 반대 61%로 부결했고, 오렌지카운티 지방정부는 연방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

금융 시스템의 신뢰가 무너질 때 발생하는 또다른 현상은 뱅크런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2일 SVB가 파산하던 당시 뱅크런이 발생하던 상황을 자세하게 보도했다. 보험 스타트업인 커리지 캣을 설립한 맥스 조는 지난 9일 휴가를 가던 중 SVB 앱을 통해서 자금을 인출하는 동료들을 보고, 자신도 현금을 이체하려고 했다.

하지만 거래가 불가능했다. 신문은 뱅크런이 온라인으로 일어나는 상황을 전하며 이는 뱅크런이 발생하기에 취약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SVB의 파산 원인으로 꼽힌 건 이 은행이 미국 장기국채를 지나치게 많이 보유해 채권 포트폴리오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18억 달러 손실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SVB가 채권 자산을 손해를 보고 매각한 건 고객들이 한꺼번에 자금 인출에 나서는 뱅크런이 발생해 유동성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이 은행은 유상증자를 시도했지만 주가가 폭락해서 여의치 않았다. 이런 맥락에서 장단기 미국 국채의 수익률을 따지기 전에 이미 SVB는 고객과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주저하던 미 연준이 은행 연쇄 부도 사태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사진=뉴시스]
주저하던 미 연준이 은행 연쇄 부도 사태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사진=뉴시스]

8일 실버게이트은행, 13일 시그니처은행 파산도 결국 신뢰의 문제가 원인이었다. 실버게이트는 이미 지난 1월 5일 고객들의 대규모 인출 요구 사태가 발생했다. 실버게이트 모회사는 매각 등 여러 방안을 고려하던 중 청산을 결정했다. 시그니처은행의 경우 뱅크런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금융당국이 미리 폐쇄를 결정했다. 

13일 재무부, 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가 공동성명에서 밝힌 시그니처은행의 ‘구조적 위험’은 결국 뱅크런을 뜻한다. 파산한 은행들은 주가가 떨어지면서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었고, 무너진 신뢰는 뱅크런으로 이어졌다. 

파산한 은행들과 함께 주가가 급락했던 ‘퍼스트 리퍼블릭 뱅크 샌프란시스코’는 연준의 자금을 지원받기로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3일(현지시간) 연준과 JP모건이 퍼스트 리퍼블릭에 700억 달러를 지원했다고 보도했다. 공적자금을 투입하지 않겠다던 미국이 과연 이번 자금지원으로 은행들의 연쇄 파산을 막을 수 있을지에 전세계 투자자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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