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탐구생활-브랜드스토리
카너먼처럼 생각하기
할리데이비슨 흥망성쇠 2장
좋은 선례에 숨은 해법

1910년대 미국 내 모터사이클 브랜드는 150여개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순위권 내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건 ‘할리데이비슨(Harley-Davidson)’뿐입니다. 이렇게 숱한 경쟁자를 따돌린 할리데이비슨을 위기로 몰아넣은 건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던 일본의 소형 바이크 브랜드들이었죠. 일본 브랜드에 밀렸던 할리데이비슨은 어떻게 재기에 성공했을까요. 더스쿠프 같이탐구생활 ‘카너먼처럼 생각하기’, 할리데이비슨 흥망성쇠 두번째 이야기입니다. 

할리데이비슨의 라이더 커뮤니티인 호그는 전세계 130만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할리데이비슨의 라이더 커뮤니티인 호그는 전세계 130만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우람한 차체와 묵직한 배기음으로 존재감을 뽐내는 ‘할리데이비슨(Harley-David son)’. 1903년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의 한 허름한 창고에서 시작한 할리데이비슨은 모터사이클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할리데이비슨이 사업을 막 시작한 1910년대만 해도 미국 내 모터사이클 브랜드는 150여개에 달했습니다. 이런 춘추전국시대에서 살아남은 할리데이비슨은 1970년대 미국 시장점유율 75%를 거머쥘 만큼 성장했습니다.


이렇게 ‘거물’이 된 할리데이비슨을 위기로 몰아넣은 건 존재감 없던 ‘작은’ 경쟁자였습니다. 소형 바이크를 앞세워 1960~1970년대 미국 시장에 진출한 일본 브랜드(혼다·야마하·스즈키 등)에 자리를 내준 겁니다. 앞서 ‘카너먼처럼 생각하기’에선 일본 브랜드에 밀린 할리데이비슨이 어떻게 재기했는지 그 첫번째 비결을 알아봤습니다. 

이번 편에선 또 다른 비결을 소개합니다. 1969년 미국 레저용품 업체 AMF(American Machine and Foundry)에 매각되는 굴욕을 겪은 할리데이비슨은 1981년 새 주인을 맞았습니다. 창업주의 손자 윌리 G. 데이비슨을 포함한 경영진 13인이 할리데이비슨을 인수했던 겁니다.

그중 핵심이었던 본 빌스(Vaughn Beals) 대표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파는 건 모터사이클이 아니다. 체험이다.” 이 가치가 바로 할리데이비슨의 부활을 이끈 두번째 비결입니다. 

사실 당시 할리데이비슨이 처한 상황은 최악에 가까웠습니다. 일본 브랜드에 시장을 빼앗긴 할리데이비슨의 점유율은 한 자릿수로 고꾸라졌죠. 경영면에서도 녹록지 않았습니다. 유가는 역대 최고치를 찍었고 금리마저 치솟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새 경영진이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 택한 전략이 바로 ‘브랜드 체험’을 파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체험을 어떻게 파느냐였는데, 할리데이비슨이 택한 방법은 신선했습니다. 먼저 할리데이비슨과 문화적 접점이 있는 ‘로큰롤 콘서트’나 ‘레이싱팀’을 후원했습니다. 할리데이비슨 마니아를 한데 모아 ‘H.O.G(The Harley Owner Group·이하 호그)’란 커뮤니티도 창설(1983년)했습니다. 이들은 함께 투어(호그 랠리)를 떠나거나 파티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체험을 공유했죠. 

이런 ‘체험 팔기’ 전략은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할리데비슨의 독특한 호그 문화는 전세계로 확산했습니다. 1990년대엔 유럽에서 ‘호그 랠리’를 시작했고, 1999년부턴 한국에서도 매년 호그 랠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현재 호그는 전세계 130만명에 달하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할리데이비슨이 호그를 발판으로 막강한 팬덤을 갖춘 브랜드로 성장한 셈입니다. 

이렇게 경쟁 브랜드에 밀려 설 자리를 잃었던 할리데이비슨은 자신만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다시 찾음으로써 재기할 수 있었습니다. 라이더가 함께 체험하는 문화를 만들어 공고한 팬덤을 구축하겠다는 전략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죠.

할리데이비슨은 2022년에도 57억5513만 달러(약 7조4908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코로나19 국면에서도 매출이 전년(2021년‧53억3631만 달러) 대비 7.8% 증가했습니다. 

물론 할리데이비슨 앞에 아무런 위협요인이 없는 건 아닙니다. 무엇보다 MZ세대를 새로운 고객으로 확보하는 건 가장 큰 과제입니다. 영화 ‘이지 라이더’를 보고 할리데이비슨에 로망을 갖고 있는 세대는 한정적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MZ세대가 환경에 관심이 많고, 친환경 바이크를 선호한다는 점도 부담요인입니다.

할리데이비슨은 이런 난제를 풀기 위해 ‘선택과 집중’ 전략을 선택한 듯합니다. 무엇보다 할리데이비슨은 ‘프리미엄’ 전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MZ세대를 잡기 위해 무리하게 전략을 바꾸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됩니다. 정체성을 버린 이전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MZ세대를 신경쓰지 않는 건 아닙니다. 할리데이비슨은 2019년 별도의 전기 바이크 브랜드 ‘라이브 와이어(live wire)’를 론칭해 대응하고 있습니다.[※참고: 할리데이비슨은 2021년 자회사인 ‘라이브 와이어’를 분사했습니다. 이후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와 합병해 뉴욕증시 상장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120주년을 맞은 할리데이비슨이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한 셈입니다.

[사진|연합뉴스, 참고|업계 종합] 
[사진|연합뉴스, 참고|업계 종합] 

시장은 냉정하고, 경쟁자는 넘쳐납니다. 이 때문에 위기가 끝나면 또다른 위기가 찾아오는 게 시장의 섭리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했지만 또다른 위기에 대응하고 있는 할리데이비슨의 행보는 시사점이 많습니다. 

뛰어난 경쟁자가 등장해 위기감을 느끼거나 ‘시장의 흐름을 좇아야 할지’ ‘일관성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지켜야 할지’ 고민인 스타트업이라면 할리데이비슨의 길을 곱씹어봐도 좋을 듯합니다. 좋은 선례先例엔 해법이 숨어있게 마련이니까요.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정안석 인그라프 대표 
joel@ingraff.com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