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기준금리 2차례 연속 동결
투자심리·소비심리 낮고
잠재성장률·자연이자율 낮아져
금리인하 효과 있을지 의문
구조적 개혁 없이 성장 어려워

# 한국은행이 11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50%로 2월에 이어 2차례 연속 동결했다. 물가상승률이 둔화한 데다, 미국발 은행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작용한 결과다.

# 이창용 한은 총재는 “아직 금리 인하를 고려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지만, 이미 시중은행 대출·예금 금리의 하단은 기준금리 이하로 떨어져 있다. 금리가 인하할 것이란 전망, 경기 침체를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그런데, 우린 이 지점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기준금리가 다시 인하하면 경제는 정말 성장하는 걸까.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2차례 연속 동결하면서 금리인하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2차례 연속 동결하면서 금리인하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 중앙은행 vs 투자자 동상이몽=경기침체 우려가 짙어지면서 ‘이젠 금리를 떨어뜨려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건 한국은행만의 얘기가 아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이미 지난 2월부터 금리 인하를 주장하는 이들과의 기싸움에 돌입했다. 지난 3월 은행 연쇄 파산으로 잠잠했던 금리 인하론이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10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보고서를 통해서 “연준이 5월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한차례 금리를 인상한 후 연말까지 동결할 것”이라며 사실상 기준금리가 고점을 찍고, 내년부터 금리 인하기에 돌입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제 매체 블룸버그의 리서치센터 격인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도 10일 보고서를 내고 미국 기준금리가 최고치에 임박했다며 “내년에 23개국 중앙은행 중 20곳이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의문스러운 금리인하 효과=만약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하루짜리 초단기 시장금리인 콜금리, 7일물 환매조건부증권(RP) 매각 금리는 하락폭만큼 내려간다. 이에 따라 양도성예금증서(CD), 회사채 금리와 같은 단기금리도 조정된다. 

하지만 기준금리 인하가 1년 이상의 장기금리에도 반드시 그만큼의 효과를 주는 건 아니다. 국고채 시장에선 장기 보유의 프리미엄이 존재하는데, 여기엔 기준금리 외에도 시장 전망, 인플레이션 수준 등이 영향을 미친다. 

다만, 금리 인하 효과가 나타난다는 말은 결국 기업의 투자와 소비가 늘어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서는 기준금리 인하가 장기금리의 하락으로 이어져야 하고, 투자심리와 소비심리가 이 효과가 퍼지는 것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행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비심리지수는 올해 2월 90.2포인트를 기록해 지난해 7월과 8월보단 회복했지만, 지난해 6월의 96.7포인트, 지난해 5월의 102.9포인트에는 미치지 못했다. 국내 기업들의 설비투자 동향을 나타내는 설비투자지수(계절조정치)도 올해 2월 123.4포인트를 기록해 전월보단 소폭 상승했지만, 지난해 12월 수준은 밑돌았다. 

■ 금리인하 효과의 충족조건=금리 인하가 경제성장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충족돼야 할 다른 조건들이 있다. 먼저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을 나타내는 잠재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받쳐줘야 한다.

잠재성장률이란 안정적인 물가 수준을 유지하면서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생산 규모를 뜻한다. 잠재성장률을 높이려면 자본·노동·기술과 같은 생산요소들이 생산성을 높여나가야 한다. 한마디로 성장할 수 있는 경제구조가 갖춰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2021년 9월 이슈노트에서 코로나19 확산으로 2020년 이후 잠재성장률을 재추정했다. 한국은 이 이슈노트에서 2000년대 초반 5%에 달하던 잠재성장률은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팬데믹 영향이 맞물리면서 2021년 2.2% 수준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지난해 3월 한국금융연구원은 ‘향후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 경로 추정’ 보고서에서 우리 잠재성장률이 2025년까지 1.57%로 하락하고, 2030년에는 0.97%로 추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금리인하가 경제성장으로 이어지기 위한 또다른 조건은 금리의 수준이다. 물가상승률과 상관없이 오직 수요와 공급 요인으로만 형성되는 금리인 자연이자율은 경제 수준이 높을수록 낮아진다. 자연이자율은 한 나라의 경제가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 없이 잠재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의 금리여서다.

디플레이션에 시달려온 일본은 오랜 기간 사실상의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써왔다. 우리의 자연이자율도 계속 낮아지고 있다. 출산율 하락 등 생산요소별 생산성이 떨어져 잠재성장률이 낮아지면 자연이자율도 낮아진다. 

자연이자율이 0%대나 그 이하라면 기준금리 인하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이 양적완화(QE)를 주요 경기부양책으로 삼은 것도 자연이자율의 수준이 너무나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엔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것만으론 경기를 충분히 부양하기 힘들었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2008년 금융위기 발생 전부터 미국의 자연이자율이 마이너스 상태여서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것만으로는 경제성장을 이룰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아울러 자산시장의 버블 없이는 경제성장을 달성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고통 없이는 성장도 없다는 얘기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지난 3월 각국 이민정책을 알아보기 위해서 현지 출장을 다녀왔다. [사진=뉴시스]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지난 3월 각국 이민정책을 알아보기 위해서 현지 출장을 다녀왔다. [사진=뉴시스]

■ 경제성장의 조건=그렇다면 우리 경제가 다시 금리인하 국면을 맞았을 때 그 효과가 온전히 경제성장으로 연결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2015년 9월 17일 이주열 당시 한국은행 총재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리면 GDP는 0.05% 증가하고, 물가는 0.03% 상승한다”는 내용의 자료를 공개했다.

현재 잠재성장률이 상당히 하락한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하 효과는 이보다 더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금리인하가 기대만큼의 효과를 내려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이는 구조적인 변화 없이는 달성하기 힘들다.

현 정부는 그 구조개혁의 중심에 ‘노동’을 놨다. 노동의 생산성이 높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 3월 국회 예산정책처가 공개한 ‘2023 경제전망’은 정부가 지난해부터 엇박자를 내면서까지 추진해온 노동 관련 정책들에 대한 아이디어가 어떻게 나왔는지를 엿볼 수 있다. 최근 5년간 생산요소별 성장기여도를 보면 자본·생산효율성을 뜻하는 총요소생산성은 높았고, 노동의 기여도는 낮았다.

보고서는 “평균 주당 근로시간의 감소율이 취업자 수 증가율보다 컸던 2018년부터 2020년까지는 노동투입 및 생산에 노동이 기여한 부분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 논리에 따르면, 노동의 경제성장 기여도를 높이려면 취업률을 높이든지 근로시간을 늘려야 한다. 정부가 근로시간 증가 정책을 밀어붙이고, 이민청을 만들어 이민 문호를 개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이에 대한 답변이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지난 3월 각국 이민정책을 알아보기 위해서 현지 출장을 간 것도 이민을 통해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경제 정책이 시험이라면 두 정책은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정책은 시험이 아니다. 민심과 이반된 정책은 성공하기 힘들다. 먼저 사회적 합의를 달성해야 한다.

제이미 다이몬 JP모건체이스 CEO.[사진=뉴시스]
제이미 다이몬 JP모건체이스 CEO.[사진=뉴시스]

이런 점에서 미국이 규정하는 경제성장의 정의가 우리의 경제 성장에 하나의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다. 지난 7일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CEO는 CNN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성장의 일단을 언급했다.

다이먼 CEO는 워런 버핏과 함께 근로소득 세액공제를 높이자고 주장해왔는데, 미국인들이 더 많은 노동소득을 가져가야 학위를 따고, 돈을 빌려 집과 차를 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마디로 아메리칸 드림이 지속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이먼 CEO는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는 세계 경제의 기둥이며 누구나 동맹을 맺고 싶어하는 나라”라며 미국에 모여든 우수한 인력이 투명한 자본시장과 만나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 있는 것이 미국의 중심이라고 주장했다. 숫자 맞추기식의 노동정책보단 인적자원의 질적 성장이 가능한 경제 구조가 필요한 이유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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