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거래 전년보다 감소
불신만 가득한 시장도 한몫
불신 없애는 두가지 방법은
인증중고차 시스템 확립하고
가격조사ㆍ산정 제도 활용

자동차관리법에는 흥미로운 제도가 있다. 중고차 구매자가 계약 전 매매업자에게 해당 중고차의 가격을 산정해달라고 요청하면 제3의 전문가에게 가격조사ㆍ산정을 의뢰해 서면으로 고지해 줘야 하는 제도다. 하지만 이 제도를 모르는 이들이 적지 않고, 매매업자도 잘 지키지 않는다. 그러자 이 규정을 지키지 않을 시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발의됐다. 개정안이 현실화하면 어떤 나비 효과들이 나타날까.

인증중고차 거래와 가격조사ㆍ산정 제도가 정착하면 중고차 시장의 불신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사진=뉴시스]
인증중고차 거래와 가격조사ㆍ산정 제도가 정착하면 중고차 시장의 불신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사진=뉴시스]

중고차 시장이 얼어붙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고차 거래 대수는 239만대(실질거래대수 기준)였다. 2021년(253만대)보다 5.5% 줄었다. 2020년(259만대) 이후 2년 연속 거래량이 감소했다. 경기침체와 금리인상이 맞물린 결과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일례로, 1년 전만 해도 3~5%대였던 중고차 할부금리는 최근 15%대까지 크게 올랐다. 

하지만 중고차 시장의 침체가 경기와 금리에만 있는 것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미국ㆍ일본 등의 중고차 시장이 신차 마켓의 2배를 웃돌 정도로 성장한 게 ‘경기가 좋고, 금리가 낮아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국내 중고차 시장은 왜 침체일로를 걷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시장의 투명성이 부족해서다. 선진국 중고차 시장에선 중고차를 살 때 딜러로부터 뒤통수를 맞을 일이 거의 없다. 중고차의 인증이나 보상 체계가 그만큼 체계적이다.

여기서 인증의 사전적 의미는 ‘문서나 행위가 정당한 절차로 이뤄졌다’는 걸 공적 기관이 증명하는 거다. 이를 근거로 소비자는 중고차의 사고나 침수 여부를 확실하게 고지받고, 혹시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법적ㆍ제도적 절차에 따라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반면 국내 중고차 시장은 그렇지 않다. 숱한 지적이 쏟아졌음에도 허위매물과 미끼매물이 여전히 판을 치고 있고, 대부분의 중고차는 인증의 사각지대에 있다. 그러다 보니 성능점검 기록을 고지하지 않거나 주행거리를 조작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보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중고차 딜러로부터 뒤통수를 맞고 억울함에 자살한 소비자도 있다. 

물론 중고차 딜러가 모두 나쁜 건 아니다. 시장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다만 시장이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불신을 만든 책임은 중고차 시장 종사자와 유관단체, 중고차 시장을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국토교통부에 있다. 다행스러운 건 시장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변화가 하나씩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중 하나가 완성차 업계의 진출이다. 사실 선진국에선 완성차 업계의 중고차 시장 진입은 당연한 일이다. 소비자들도 반기는 모습이다. 지난해 정부는 이런 현실을 반영해 단서를 달긴 했지만,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입을 허가했다.

덕분에 국내에서도 인증 중고차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참고: 그렇다고 대기업이 이 시장을 장악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 기존 사업자들의 피해를 막고자 3년의 제한기간을 둔 것도 그래서다. 대기업은 시장에 진입한 후에도 실질적 상생을 위한 고민을 멈춰선 안 된다.] 

중고차 시장에는 여전히 허위ㆍ미끼매물이 넘쳐난다.[사진=뉴시스]
중고차 시장에는 여전히 허위ㆍ미끼매물이 넘쳐난다.[사진=뉴시스]

최근 중고차 거래 시 딜러가 구매자에게 ‘중고차 가격조사ㆍ산정 제도’를 고지하지 않으면 처벌하도록 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 제도의 골자는 구매자가 계약 전 매매업자에게 해당 중고차의 가격을 조사해서 산정해달라고 요청하면 매매업자가 제3의 전문가(자동차 진단평가사)에게 가격조사ㆍ산정을 의뢰해 그 내역을 소비자에게 서면으로 고지해줘야 하는 것이다. 2016년 1월부터 발효된 제도다.

지난해 4월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중고차 거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국내 중고차 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허위ㆍ미끼 매물’과 ‘불투명한 중고차 가격정보’를 꼽았다. 그런 만큼 ‘중고차 가격조사ㆍ산정 제도’는 허위ㆍ미끼 매물을 골라내고, 중고차 가격정보를 투명하게 해주는 장치임에 틀림없다. 

다만, 지금껏 소비자들은 이 제도를 잘 몰라 활용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매매업자가 이 제도를 고지하지 않으면 처벌까지 할 수 있도록 처벌규정을 신설하자는 게 개정안의 핵심이다. 소비자의 권리를 좀 더 적극적으로 알려주라는 거다.

특히 매매업자가 인터넷 등을 통해 중고차를 판매하기 위해 광고를 할 때는 해당 중고차의 이력과 판매자 정보, 구조와 장치, 침수 사실 등 성능ㆍ상태 점검 내용, 가격조사ㆍ산정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의무적으로 게재하도록 했다. 이를 어길 경우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을 뒀다. 

물론 중고차의 가격을 상태에 따라 정확하게 산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중고차의 연식이나 주행거리, 사고 유무와 그 정도, 침수 여부, 색상, 지역, 운행특성 등 각종 정보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자동차 진단평가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재 국가 공인 자동차 진단평가사는 8000명가량이다. 중고차 가격조사ㆍ산정 제도가 정착하면 자동차 진단평가사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중고차 가격조사ㆍ산정 제도를 통해 중고차 시장의 불합리한 구조를 개선하는 동시에 일자리 창출까지 노릴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자동차 진단평가사 취득자 10명 중 3명은 중고차 딜러다. 중고차 딜러의 전문성을 높여 이 직종에 관한 편견을 깨뜨릴 수도 있을 것이다. 

관건은 객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중고차 가격을 산정할 시스템인데, 지난 20년간 한국자동차진단보증협회가 일본의 자동차사정협회와 연계해 한국형 성능점검제도와 가격산정시스템을 갖춰 놓은 만큼, 잘만 보완한다면 시스템을 구축하는 덴 어려움이 없을 듯하다. 

미국ㆍ일본 등의 중고차 시장이 신차의 2배에 웃돈다는 걸 감안하면, 국내 중고차 시장은 상당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문제는 그런 잠재력을 소비자의 불신이 막고 있다는 점이다. 주요 원인은 언급했듯 허위ㆍ미끼매물과 부정확한 가격정보다.

완성차 업계의 진출을 통한 인증중고차 활성화와 자동차관리법 개정을 통한 중고차 가격조사ㆍ산정 제도는 이런 불신을 없애고, 투명한 선진형 중고차 거래 문화를 구축할 수 있도록 해줄 좋은 도구다.

향후 중고차 구매에 따른 피해보상에 관한 규정만 좀 더 보완한다면 우리도 선진국 못지않은 중고차 시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시스템을 구축하는 작업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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