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급발진 사고 방지책
소비자 구제 어려운 게 일상
급발진 피해 건수 201건 중
기업이 책임진 사례는 ‘0건’
예방-매뉴얼-사후 대처까지
기술적·제도적 장치 긴요해

#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발생한 급발진 사고의 후폭풍이 크다. 그동안 국내에선 소비자들이 급발진 사고의 입증책임을 져야 했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이 소송을 벌인다 해도 완성차기업에 패소하기 일쑤였다.

# 하지만 강릉 사고를 계기로 자동차 제조사가 직접 차의 결함을 밝혀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더스쿠프가 김필수 교수와 함께 국내 자동차 급발진 사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당면과제를 살펴봤다.

2012~2021년 9년간 자동차 급발진 사고는 10만건을 훌쩍 넘었다.[사진=연합뉴스]
2012~2021년 9년간 자동차 급발진 사고는 10만건을 훌쩍 넘었다.[사진=연합뉴스]

219만1381건. 2012년부터 2021년까지 9년간 발생한 교통사고 건수다. 그중 10만1348건은 차량단독 사고다. 공작물 충돌, 도로이탈, 주ㆍ정차차량 충돌, 전도ㆍ전복까지 차량단독 사고의 원인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한가지 ‘튀는’ 사고 유형이 있다. 자동차 급발진 사고다. 자동차 급발진이란 차가 운전자의 제어를 벗어나 의지와 관계없이 가속되는 현상을 말한다. 급발진은 정지 상태, 저속 상태, 정속주행 상태에서 모두 일어날 수 있다.

자동차 급발진 사고가 발생하기 시작한 건 1980년대 초반부터다. 이 무렵 완성차기업들은 자동차에 전자제어엔진을 본격적으로 장착했다. 급발진은 자동차가 전자화하면서 나타난 일종의 부작용인 셈이다.

급발진의 원인을 한가지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10여년 전 미국에서 도요타 자동차의 급발진 사고로 소송이 벌어졌을 때 피고측 변호인단이 밝혀낸 중요한 사실이 있다. 급발진이 전자제어시스템 내 소프트웨어의 결함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오류는 겉으로 보기엔 흔적이 남지 않는다. 이미 소프트웨어가 오작동한 뒤여서 급발진이 발생한 후 로직을 복구해 재연하는 게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급발진 사고 수사 과정은 난항을 겪곤 한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서도 급발진 사고를 조사하면 ‘제동 장치 자체는 이상 없이 작동한다’는 앵무새 같은 보고서를 써낸다.

자동차 에어백이나 엔진 ECU(Electronic Control Unit)에 내장한 사고기록장치(EDR ㆍEvent Data Recorder)를 살펴봐도 별다른 소용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급발진 사고 100건 중 99건의 EDR을 분석해봤자 하나같이 ‘100, 99, OFF’라는 결괏값이 나와서다. 이 결괏값은 각각 엔진 스로틀밸브(공기량을 조절하는 장치) 열림량, 가속페달 개도량, 브레이크 작동 여부를 뜻한다.

쉽게 풀면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최대로 밟아서(99) 스로틀밸브는 모두 열렸는데(100), 브레이크는 밟지 않은 경우(OFF)’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운전자가 자동차 속도를 높이면서 브레이크는 작동하지 않는 바람에 사고가 난 것이나 다름없다는 거다. 그래서 EDR 분석 결과는 대개 완성차기업들에 ‘면죄부’를 주는 증거자료로 이용되곤 한다.

심각한 건 급발진 사고 대부분이 탑승객의 목숨을 앗아간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급발진 사고를 근본적으로 방지할 방법은 아직까지 없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사고 후 소송을 해도 모든 정황이 운전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법정 재판이 매번 ‘기울어진 운동장’ 상태에서 열린다는 얘기다.

이쯤에서 지난해 10월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한국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자동차리콜센터 급발진 신고현황)를 살펴보자. 자료에 따르면 2017년~2022년 7월 자동차리콜센터의 급발진 사고 피해접수 건수는 총 201건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신고 사례 중 ‘차량 결함에 의한 급발진’을 인정받은 케이스는 ‘0건’이었다. 이 때문에 급발진 입증책임이 완성차기업이 아닌 운전자에게 있어 피해구제가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모든 자동차의 구조는 완성차기업에 유리하도록 설계돼 있다. EDR은 사고기록을 저장하는 일종의 블랙박스가 맞지만, 최초의 목적은 사고기록용이 아니었다. 자동차 제조사가 차의 에어백이 터지는 전개 과정을 보기 위한 프로그램이 언제부터인가 ‘사고기록장치’로 불렸다.

급발진 사고 이후 나온 데이터를 보면 사고 상황과 맞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당연히 재차 확인이 필요한데도, 이 절차를 건너뛰고 소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자동차에 좀 더 효율적인 사고기록장치를 탑재하려면 비행기처럼 이 장치를 별도로 개발해야 한다. 그래야 기록의 정확도와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

자동차 시장의 중심축이 내연기관차에서 하이브리드차, 전기차로 옮겨진다고 해도 급발진 사고에서 예외가 될 순 없다. 2017~ 2022년 7월 급발진 피해건수(201건) 중 하이브리드차 사고는 19건, 전기차 사고는 20건으로 결코 적지 않았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전기차 판매량을 감안하면, 앞으로 전기차 급발진 사고는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급발진 사고를 해결할 근본적인 방안이 무엇보다 긴요한 이유다.

이 지점에서 고려할 수 있는 방법은 총 세가지다. 하나는 급발진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차단하는 거다. 두번째는 급발진 발생 시 운전자가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매뉴얼을 수립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론 사고 이후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공정한 절차를 밟는 거다.

■ 방법❶ 급발진 예방 = 구체적인 방법론을 알아보자. 자동차 급발진 사고를 사전에 방지하는 수단으론 이른바 ‘킬(Kill) 프로그램’을 예로 들 수 있다. 차에 있는 전자제어엔진이 먹통이 돼 폭주할 경우 이를 인위적으로 중지할 수 있는 킬 프로그램을 심어 가속 상황을 차단해버리는 거다. 일본의 경우 2019년부터 킬 프로그램 장착을 의무화해 지금도 제도를 시행 중이다. 

운전석에 비상 완전정지 스위치를 장착해 ‘물리적으로’ 엔진을 멈추게 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최첨단 기술을 적용한 ‘페달 블랙박스’를 활용할 수도 있다. 그동안 페달 블랙박스는 발을 찍는 위치나 세기 등 다양한 문제점 탓에 완성도가 높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엔 이런 문제를 극복한 페달 블랙박스가 상용화하고 있다.

물론 기계적 장치는 설계 구조의 조정, 부품 설치 등의 여러 가지 부대조치가 필요해 자동차 생산비용을 올릴 수 있다. 그래도 소비자들의 ‘안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점에서 이들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한번쯤 고민해볼 만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 방법❷ 긴급조치 매뉴얼 = 다음으로 살펴볼 내용은 자동차 급발진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응급조치 방법이다. 급발진 사고는 단 몇초 만에 모든 상황이 끝나는 만큼 운전자가 초기 조치를 하기엔 쉽지 않은 영역이다.

가령, 미국에서는 급발진이 나타나는 순간 브레이크를 한번에 세게 밟고 변속기를 중립에 넣는 동시에 시동을 끄라는 매뉴얼을 공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숙달된 전문가들도 단번에 해낼 수 없을 만큼 무척이나 어렵다. 더욱이 갑작스러운 급발진에 운전자들은 쉽게 당황한다. 복잡한 매뉴얼은 그만큼 한계도 크다.

그럼 급발진 발생 시 어떤 긴급조치를 해야 할까. 일단 차가 이상 작동을 하는 순간 가능한 한 빨리 주행을 멈춰야 한다.

이런 상황에선 자동차와 자동차끼리 충돌하는 것이 그나마 이상적이다. 주변에 세워져 있는 차의 범퍼에 부딪치면 달리는 자동차의 에너지를 분산시킬 수 있다. 시판 중인 자동차의 엔진룸과 트렁크의 구조 자체가 에너지 분산에 최적화돼 있어서다. 에너지가 흩어지면서 운전자 역시 치명상을 피할 수 있다.


주의할 것은 도심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기둥형 구조물이다. 가로수, 가로등, 전봇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처럼 수직적인 구조물에 차가 부딪히면 내부 장치에 이상이 생겨 에어백이 터지지 않을 수 있다.

당장의 위험을 모면하기 위해 장애물을 두번, 세번 피하는 것도 바람직한 대처법은 아니다. 장애물을 피하는 사이 자동차는 시속 100㎞을 넘어 더 큰 위험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 방법❸ 사고 이후 대처 = 세번째로 이야기할 것은 사고 이후의 대응책이다. 앞서 언급했듯 국내에선 운전자가 자동차의 결함을 찾아서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송사에 얽히면 100% 패할 수밖에 없다.

브랜드도 이런 한국의 특성을 악용해 되레 ‘한국법대로 하자’고 나설 정도다. 이 경우 소송을 진행한다 해도 제조사 측이 늑장을 부리며 재판을 대법원까지 끌고 가서, 운전자들은 시간과 비용만 허비할 공산이 크다.


미국은 반대다. 완성차기업이 자신들이 만든 차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직접 밝혀내야 한다. 재판 과정에서 입증책임을 지지 못할 경우 완성차기업은 피고에게 합의를 종용해서 보상금을 지불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아울러 미국은 집단소송제나 무제한적인 징벌적 보상제가 있어서 소비자 친화적 환경 속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은 소비자 친화적인 법률 환경에서 급발진 사고 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국은 소비자 친화적인 법률 환경에서 급발진 사고 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미국 수준까지 도달하지는 못해도, 제조사가 최소한의 입증책임을 지도록 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관런 법규가 마련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무법지대와 같은 지금보단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자동차 급발진 사고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관건은 사전부터 사후까지 얼마나 객관적으로, 철저하게 대처해 나갈 수 있느냐다.

우리의 당면과제는 완성차기업 쪽에 쏠린 무게추를 바로잡고, 주요 자동차 시장에 비견할 만큼 정교한 매뉴얼과 법제를 세우는 거다. 지금은 자동차 제조사는 물론 교통당국과 전문가 집단이 머리를 맞대 효과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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