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對韓 수출규제 품목 현주소 분석
일본의 수출규제에도 반도체 생산 증가
수입 다변화와 국산화 성공했다는 방증
수출규제에 폴리이미드 수입 되레 늘어
급한 거 없는데 WTO 제소 선제 철회
화이트리스트 복원도 우리가 먼저

“욕을 먹더라도 할 일을 하겠다.” 지난 3월에 있은 한일정상회담을 두고 ‘굴욕외교’라는 지적이 나오자 윤석열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그 말 속에는 ‘지난 2019년 7월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국내 반도체 산업이 타격을 받았으니 내가 정상회담을 통해 그걸 풀 것이다’란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럼 우리는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일본 소재의 ‘난 자리’를 메우지 못했을까.

일본의 수출규제 후에도 국내 반도체 산업은 큰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사진=뉴시스]
일본의 수출규제 후에도 국내 반도체 산업은 큰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사진=뉴시스]

“전임 정부는 수렁에 빠진 한일관계를 방치했다. 그 여파로 양국의 경제와 안보는 깊은 반목에 빠졌다 … 이번에 일본은 반도체 관련 3개 소재·부품 수출규제 조치를 해제하고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철회하기로 발표했다 … 한일관계의 개선은 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한국 기업의 뛰어난 제조기술과 일본 기업의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이 연계돼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지난 3월 21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발언한 내용의 일부다. 앞서 16~17일에 열린 실무급 한일정상회담을 두고 비판이 이어지자 윤 대통령이 나서 회담의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여기서 윤 대통령의 관점 하나를 읽을 수 있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가 국내 반도체 산업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인식이다. 그러니 윤 대통령 입장에선 2019년 7월 일본이 우리나라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2018년)에 반발해 실시한 대한對韓 수출규제 조치가 ‘제3자 변제(국내 기업이 배상하는 것)’라는 방식을 도입해서라도 풀어야 할 짐이 된 거다. 

심지어 정부는 4월 24일부터 수출 절차 간소화 혜택을 주는 백색국가 리스트(화이트리스트)에 일본을 다시 넣었다. 2019년 7월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응해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지 3년 반 만이다. 일본은 아직 꿈쩍도 하지 않는데, 우리 정부가 먼저 수출 규제를 해제해 준 셈이다. 

중요한 건 그의 생각처럼 일본의 수출규제가 국내 반도체 산업에 그렇게 큰 타격을 줬느냐다. 그 사실 여부에 따라 정부의 대일 외교 평가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그런데 저마다 해석들이 다르다. 일부에선 일본의 수출규제로 국내 산업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또다른 일부에선 그다지 큰 영향이 없었다고 맞받아친다.

맹점은 양쪽 주장 모두 해석만 있을 뿐 정확한 근거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스쿠프가 일본의 수출규제 항목이었던 불화수소(HS코드 2811111000), 포토레지스트(HS코드 3707901010), 플루오린 폴리이미드(HS코드 3920999010)의 지난 5년간(2018~2022년) 수입 현황을 분석해본 이유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 수출규제에도 반도체 생산 증가 = 먼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생산실적부터 보자(표❶). 금융감독원 공시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수량으로, SK하이닉스는 금액으로 생산실적을 표기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8년 7110억개의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했는데, 그 양이 매년 꾸준히 늘어 2022년에는 1조9057억개를 만들었다. 2.7배 늘어난 수치다.

일본의 수출규제 후 국내 반도체 생산은 더 늘었다.[사진=삼성전자 제공]
일본의 수출규제 후 국내 반도체 생산은 더 늘었다.[사진=삼성전자 제공]

같은 기간 SK하이닉스는 2018년 18조1303억원어치를 생산했는데, 2022년에는 33조3261억원어치를 생산했다. 역시 1.8배 늘었다. 당연히 일본이 우리나라에 수출하지 말라고 규제한 품목의 수요도 늘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전제를 깔고 수출규제 품목의 수입 현황을 따져보자. 

■ 국산화율 높인 불화수소 = 먼저 불화수소를 보자. 우리나라의 대일對日 반도체용 불화수소 수입량은 2018년 3만8339톤(t)에서 일본의 수출규제가 있었던 2019년 1만9836t으로 반토막났다(표❷). 2022년에는  3451t에 불과했다. 5년 만에 수입량이 10분의 1로 줄어든 거다. 5년간 t당 단가도 1744달러에서 2405달러로 37.9% 올랐다. 

당시 기업들은 공급선 다변화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다변화한 공급선은 외국이 아니다. 불화수소 수입처는 일본과 중국, 대만이 거의 전부라 봐도 무방하다. 같은 기간 중국산 불화수소는 4531t 늘어나는 데 그쳤다. 대만산도 크게 늘지 않았다. 제4의 공급처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2018년 대비 2022년 일본산 불화수소 수입량이 3만4888t 감소했다는 걸 감안하면 줄어든 수입량만큼 국내에서 조달했다는 뜻이다. 일본 수출규제 이후 국내 기업인 솔브레인과 SK머티리얼즈가 고순도 불화수소를 생산했는데, 그만큼 국산화율이 진행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 포토레지스트 수입 다변화 = 포토레지스트는 어땠을까. 2018년 대일 수입량은 1011t이었는데 2022년엔 896t으로 11.4% 줄어드는 데 그쳤다(표❸). 불화수소 수입량이 크게 줄었던 것과 대비된다. 일본산 포토레지스트의 t당 단가는 29만5551달러에서 36만6003달러로 23.8% 올랐다. 

포토레지스트는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과 벨기에에서도 수입한다. 미국산 수입량은 미세하게 줄었고, 벨기에산 수입량은 크게 늘었다(2018년 0.5t→2022년 34t). 이유는 삼성전자가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해 포토레지스트 생산업체인 일본의 JSR이 벨기에의 IMEC사와 합작해서 만든 기업으로부터 포토레지스트를 수입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반도체 생산이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포토레지스트는 모자란다. 업계에 따르면 이 부족분은 2021년 포토레지스트 국산화에 성공한 동진쎄미켐 등이 채웠다. 대일 수입량이 그렇게 줄어들지도 않았지만, 수입처 다변화와 국산화 등이 함께 진행되면서 리스크를 확 줄였던 거다. 

■ 수입량 증가한 폴리이미드 = 마지막으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수입량을 보자. 흥미롭게도 2018년 대비 2022년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수입량은 수출규제 이후 되레 늘었다(표❹). 2018년 157t에서 2019년엔 255t, 2020년엔 253t, 2021년 254t으로 증가했다.

2022년엔 177t으로 약간 줄었지만, 그래도 2018년보다는 증가한 수치다. 2020년 t당 단가가 11.5%가량 상승했지만, 2022년에는 종전 가격보다 26.3% 하락했다. 그 외 수입처는 대만·말레이시아·중국 등인데, 이들 국가로부터의 수입량도 줄었다. 

종합하면 일본의 수출규제는 국내 반도체 산업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현장에서도 비슷한 분석이 나온다. 지난 3월 29일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 304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중소기업 한·일 경제협력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어려움이 없다’고 답한 기업은 54.4%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욕을 먹더라도 할 일은 하겠다”면서 한일정상회담의 정당성을 일본의 수출규제 해제와 화이트리스트 복원에서 찾았다. 윤 대통령은 이 통계를 알고 있을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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