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視리즈] 시중은행 도덕적 해이❷
연이어 터진 배임·횡령 사건
금융사지배구조법 있지만…
여전히 허술한 내부통제 제도
금융당국 내부통제 혁신안 발표
효과 있겠지만 100% 근절될까
처벌 수위 강화해 경각심 높여야

지난해 시중은행에서 크고 작은 배임·횡령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금융당국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내부통제 강화에 나섰다. 허술한 내부통제가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돼서다. 내부통제시스템을 강화하는 건 바람직하다. 문제는 내부통제만 강화한다고 해서 배임·횡령과 같은 비위행위를 근절할 수 있느냐다. 

금융당국이 끊이지 않는 은행의 금융사고를 막기 위해 내부통제제도 강화에 나섰다. 사진은 지난해 국감에 출석한 5대 시중은행장들.[사진=뉴시스] 
금융당국이 끊이지 않는 은행의 금융사고를 막기 위해 내부통제제도 강화에 나섰다. 사진은 지난해 국감에 출석한 5대 시중은행장들.[사진=뉴시스] 

지난해 10월 11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5대 시중은행장이 국감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장이 국감에 참석한 것은 2017년 이후 5년 만이었다. 

이날 진옥동 신한은행장(현 회장), 이재근 KB국민은행장, 임동순 NH농협은행 수석부행장(현 NH아문디자산운용 대표), 박성호 하나은행장(현 부회장), 이원덕 우리은행장이 줄줄이 출석했다(당시 착석 순서). 금융감독원 국감 증인으로 출석한 자리였지만 분위기는 냉랭하기만 했다. 은행장들을 향한 국회의원들의 질타도 거셌다. 

5대 시중은행장은 “국민 여러분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하나같이 몸을 낮췄다. 5대 시중은행장들이 국감에서 머리를 숙인 이유는 지난해 연이어 터진 은행권의 배임·횡령 사건 때문이었다. 

이재근 은행장은 “고의적 일탈 등은 완벽하게 막기가 어려운 만큼 내부통제 교육이나 연수 등에 중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진옥동 은행장은 “(횡령 사건은) 일벌백계의 자세로 분위기를 잡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박성호 은행장은 “예방조치를 할 수 있게 인프라에 투자하겠다”는 다짐을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해 은행권의 배임·횡령 사건은 계속해서 터졌다. 윤창현 의원(국민의힘)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시중은행에서 발생한 배임·횡령 사건은 20건으로 금액은 878억1000만원에 달했다. 더 큰 문제는 시중은행 배임·횡령 사건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는 거다. 

양정숙 의원(무소속)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에선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연속 배임·횡령 사건이 발생했다. NH농협은행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 연속 횡령사건이 터졌고, 신한은행도 2021년만 빼고 매년 횡령으로 직원이 처벌받았다. 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에 구멍이 뚫려있다는 건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은행 직원의 배임·횡령을 막을 관련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금융기관 임직원의 불법행위 등을 방지하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사지배구조법)’을 2017년 시행했다.

이 법은 내부통제 기준이 없거나 내부통제를 소홀히 하면 최고경영자(CEO)까지 제재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이는 형식적인 행위에 불과했다. 금융기관은 CEO의 처벌을 막기 위한 면피용으로 내부통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최재승 의원(국민의힘)이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의 준법감시인이 2018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업무정지 요구권을 행사한 곳 단 한곳도 없었다. 은행에서 매년 수십건의 배임·횡령, 사적금전대차, 성희롱·성추행 사건이 발생한다는 걸 감안하면 이해할 수 없다.[※참고: 준법감시인은 내부통제 기준과 준수 여부를 점검하고, 문제점이 발견되면 개선이나 개정을 요구하는 직책이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지난해 11월 “은행 지주 그룹 전반의 내부통제 체계를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고 나섰다. 그리고 얼마 후 ‘내부통제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혁신방안의 주요 골자는 준법감시부서 인력을 총 임직원 수의 0.8% 또는 15명 이상 확보할 것을 의무화하고, 동일부서 장기근무자라는 순환근무 대상 직원의 5% 이내 또는 50명 이하로 관리한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내부고발자 제도를 활성화하고, 상시 감시 대상을 확대·체계화해 문제점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금융회사 CEO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법 개정에도 나섰다. 금융당국은 중대한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CEO의 해임·직무정지 등의 제재를 할 수 있게 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을 준비 중이다.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기능을 개선해 배임·횡령 등 금융사고가 발생하는 걸 막겠다는 거다.[※참고: 금융사고 발생 시 대표이사를 무조건 제재하는 건 아니다. 금융당국은 중대한 금융사고가 발생해도 적정한 내부통제 시스템이 작동했다면 대표이사의 책임을 경감·면책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내부통제 강화 방안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김대종 세종대(경영학) 교수는 “시중은행의 배임·횡령 사고가 계속되는 것은 내부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제도개선을 통해 내부통제에 관한 불확실성을 없애고 기준을 명확하게 해주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기훈 홍익대(경영학) 교수도 “금융회사의 취약한 내부통제가 금융사고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내부통제와 관련 교육을 강화해 인식 개선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내부고발 제도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2017년 회계부정신고 포상금 한도를 10억원으로 증액한 후 2019년부터 내부고발에 따른 포상금 지급 건수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며 “내부고발에 따른 포상금을 회사의 과징금에 비례해 지급하는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은 회계부정으로 회사에 부과되는 과징금의 10~30%를 내부고발자에게 포상금으로 주고 있다”며 “관련 제도의 시행 이후 회계부정 발생 가능성이 12~22%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물론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내부통제를 강화하는 것보다 수시로 금융회사를 들여다보고 점검하는 게 낫다는 이유에서다. 전성인 홍익대(경제학) 교수는 “금융회사를 수시로 점검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을 이었다. “내부통제 강화 방안의 핵심은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대한 금융사고가 발생한다고 해서 CEO를 무조건 제재하는 게 아니다. 금융당국이 내부통제를 잘했다면 제재 수위를 낮추거나 면책해 주겠다고 밝혀서다. 행정소송만 늘어날 수 있다. 차라리 수시로 검사를 하는 게 현명한 일이다.”

내부통제 제도를 마련하는 것과 별개로 관련자의 처벌 수위를 높일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린다. 형사고발을 통해 강력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한 배임·횡령 등 윤리강령 위반 행위를 뿌리 뽑는 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사내 윤리강령 위반 행위를 은행이 덮어 버리면 그 효과는 반감할 게 뻔하다는 것이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내부통제 혁신방안이 본격화하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그렇다고 내부통제 방안이 금융회사의 모럴해저드를 100% 없앨 수 있는 묘책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에도 내부통제 방안은 있었지만 이를 무시하고 비위행위를 저지르는 임직원은 항상 있었다”며 “내부통제를 강화하는 것은 기본으로 하고 사후 처벌 수위를 높여 불법을 저지를 여지를 사전에 막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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