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탐구생활-붉은 점
정부가 내놓은 탄소중립계획
더 편한 방법 가져간 기성세대
미래에 감축량 떠넘긴 선택들

윤석열 정부의 탄소중립 계획서가 나왔습니다. 2021년 문재인 정부 시절 목표치와는 다를 바 없지만, 산업계의 부담은 줄었습니다. 아울러 2023년부터 2030년까지 줄여야 하는 탄소 감축량 중 윤석열 정부가 줄여야 할 규모는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나머지는 미래가 떠안아야 합니다. 이 결정, 과연 공정할까요?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는 8년 중 윤석열 정부 4년간 줄일 감축량은 전체의 33% 수준이다.[사진=뉴시스]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는 8년 중 윤석열 정부 4년간 줄일 감축량은 전체의 33% 수준이다.[사진=뉴시스]

두 사람이 같은 돈을 내고 하나의 케이크를 사왔습니다. 케이크를 똑같이 나눠 먹으려고 할 때 가장 공평하게 나눌 수 있는 방법은 뭘까요. 사실 정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한명이 자르고 다른 한명이 케이크를 선택하는 겁니다. 이 규칙대로 케이크를 나눈다면 케이크를 ‘자르는’ 사람은 최대한 두 조각의 케이크가 같은 크기가 되도록 신경 쓸 겁니다. 케이크를 고르는 건 전적으로 상대방이니까요. 

하지만 케이크를 ‘자르는’ 사람이 ‘선택’까지 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절대적 양심을 가진 이가 케이크를 자르지 않는다면, 아마도 조각 크기가 꽤나 다를 겁니다. 같은 돈을 냈는데도 이런 방식으로 케이크를 나눈다면 공정한 게 아닐 겁니다. 

이쯤에서 2022년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의 탄소중립 1차 국가 기본계획(탄소중립 1차 계획)을 살펴볼까요? 4월 10일 발표된 탄소중립 1차 계획은 2023년부터 2030년까지 2억4970만톤(t)의 온실가스를 어떻게 줄여야 하는지 로드맵을 그렸습니다. ‘케이크’와 ‘온실가스 감축량’은 비슷한 비유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는 케이크와 마찬가지로 ‘온실가스 감축량’도 나눠야 합니다.

그럼 2억4970만t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어떻게 나누면 좋을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2030년까지 햇수로 8년이란 목표 기간이 있으니 그대로 나누는 겁니다. 2018년 대비 5240만t을 줄인 2023년을 제외하고 2024년부터 계산하면 1년마다 우리가 줄여야 할 온실가스는 2819만t이 될 겁니다.

그런데 정부의 계획표는 이와 다릅니다. 2023년부터 21대 대통령 선거가 이뤄지기 전인 2026년까지 전체 감축량의 33.4%를 맡습니다. 

그다음 정부는 2027년부터 2030년까지 나머지 66.6%를 줄여야 합니다. 어려운 일을 다음 정부의 몫으로 미뤄버린 겁니다. 온실가스 목표를 자른 쪽이 선택까지 한 결과입니다. 

유리한 조건을 가져간 건 정부만이 아닙니다. 2021년 10월 기존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 따르면, 산업계는 2023년 배출량을 기준으로 2030년 목표한 전체 감축량의 17.1%를 맡았어야 합니다. 하지만 정부가 바꾼 NDC대로면 산업계는 감축량의 13.0%만 감당하면 됩니다. 

제대로 된 배분일까요. 환경부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가 배출한 온실가스의 86.9%는 에너지 분야입니다. 산업 공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도 전체의 7.5%를 차지합니다. 우리나라 최종 에너지 중 63.1%를 산업 분야가 소비하고 있으니 우리가 만들어내는 온실가스 중 절반 이상은 산업계의 책임인 셈입니다. 

그런데도 산업계가 맡아야 할 감축량이 전체의 13.0%에 불과하니, 다른 분야에서 이를 메워야 할 겁니다. 부담을 더 떠안아야할 분야는 ▲신재생에너지(전환 부문) ▲이산화탄소 포집ㆍ저장ㆍ활용(CCUS·Car bon Capture, Utilizatin and Storage) ▲국제감축입니다. CCUS는 이산화탄소를 수집해 폐가스전 등의 아래에 넣는 겁니다.

하지만 이 기술로 탄소배출을 줄이는 건 아직까진 불가능합니다. 우리나라에는 탄소 포집 기술만 있을 뿐 저장 기술은 없습니다. 윤 정부는 이번 계획에서 10억t의 탄소를 저장할 수 있는 저장소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저장소를 만드는 데는 평균 5년이 걸립니다. 당장 2024년 계획을 잡아 만든다고 해도 2029년에야 완공할 수 있습니다. 

정부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윤 정부는 동티모르 등 해외에 있는 가스 생산설비를 ‘저장소’로 사용할 방침을 내놨습니다. 이 설비가 생산을 종료한 다음 탄소 저장소로 사용하면 문제가 없을 거란 주장입니다. 하지만 기후위기운동단체들은 “다른 나라의 설비에 기대는 건 불확실한데다 책임을 떠넘기는 행위”라고 지적합니다. 

이처럼 정부와 산업계는 케이크를 자르면서 ‘큰 조각’까지 선택했습니다. 케이크를 자르지도 못하고 선택도 먼저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불리한 처지가 됐습니다. 다름 아닌 미래세대입니다.

정부가 발표한 탄소중립 1차 국민 기본계획에 미래세대의 자리를 마련하려는 내용이 포함돼 있긴 합니다. ▲청년ㆍ미래세대 등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이행점검 체계 구축 ▲지역계획 내 청소년 참여방안 포함 ▲학교내 신재생 에너지 설비 설치로 탄소중립 학습 환경 조성 등 3가지가 가장 큽니다. 일단 의견을 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자리’일 뿐 실제로 얼마나 반영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김보림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자리 늘리기는 절차적 정당성만 얻으려는 시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인원을 늘린다는 것과 의견을 실질적으로 반영한다는 건 다른 얘기입니다. 우리는 계속 탄소중립과 관련해서 미래 세대가 말할 자리가 없다고 지적해왔어요. 문재인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죠. 자리를 늘려서 그런 지적을 수용했다는 것처럼 발표할 수는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게 정말 미래 세대의 의견을 반영하는 결과로 이어질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청소년기후행동을 포함한 많은 기후위기운동 단체들은 2018년 문재인 정부 시절 내놓은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의 40%(2018년 대비)를 감축하는’ 계획을 미래 세대에게 과제를 떠넘기는 결정이라며 비판해왔습니다.

독일은 65% 감축(1990년 대비)을 계획하고 있고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2030년 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최소 45%는 감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더 과감한 감축이 필요하다는 미래세대의 의견에 문 정부도, 윤 정부도 응답한 적이 없습니다.

대통령실 직속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관계자는 “청년과 미래세대의 자리를 탄소중립위원회에 만들 계획이지만 참여 비율이나 인원수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비율과 인원수를 결정하는 과정에 청년과 미래 세대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게 어떻겠느냐라고 묻자 “검토해 볼만하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실제로 탄소중립위원회에 미래 세대의 자리가 얼마나 있을지는 5월에야 알 수 있습니다. 5월은 윤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이 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는 우리나라 산업에 탄소중립이 부담을 줘선 안 된다는 발언을 했고 실제로 산업계의 부담은 줄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여러 차례 ‘미래 세대’를 위한 개혁을 언급했습니다. 탄소중립 계획에서도 그 말을 지킬 수 있을 지는 두고볼 일입니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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