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사 다시보기➋ 승자독식 없앴나
유엔, 사회적연대경제 결의안 채택
MB, 박근혜 사회적경제 적극 도입
尹 “자유는 결코 승자독식 아냐”
110대 국정과제 사회적경제 포함
하지만 사회적경제 조직 위축돼
통폐합된 사회적경제 조직 괜찮나
사회적경제 기업 보조사업 줄어
금융지원 늘렸지만 효과는 의문

# “자유는 승자독식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말이다. 이 말을 ‘경제’로 좁혀서 해석하면, 자유시장경제의 한계인 ‘승자독식’을 지양해야 한다는 거다. 이 말을 실현하려면 어떤 개념적 틀을 준비해야 할까.

# 답은 간단하다. 사회적경제다. 연대와 포용을 추구하는 사회적경제는 자유시장경제의 단점을 메워주는 합리적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그럼 윤석열 정부는 지난 1년간 사회적경제를 집중적으로 육성했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사회적경제를 110대 국정과제에 포함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은 사회적경제를 110대 국정과제에 포함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2022년 5월 10일. 4만1000명 참석자의 눈이 한사람의 입으로 쏠렸다.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에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경제에서도 자유가 중심이었다.

윤 대통령은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자유로운 정치적 권리, 자유로운 시장이 숨 쉬고 있던 곳에선 언제나 번영과 풍요가 꽃 피었다”며 “번영과 풍요, 경제적 성장은 바로 자유의 확대”라고 말했다. 그는 “자유는 결코 승자독식이 아니다”며 “자유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준의 경제적 기초, 그리고 공정한 교육과 문화의 접근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윤 대통령은 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35번의 자유를 언급했고, 자유는 승자독식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취임사를 돌이켜 보는 이유는 하나다. 취임사는 새 정부의 정책 방향성을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정책 기조는 당연히 새정부의 예산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정책 기조를 구체화한 목표가 정책이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편성하는 것이 예산안이다. 윤 대통령의 취임 1년을 맞아 관련 예산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승자독식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은 무엇이 있을까.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자유시장경제의 한계를 메워주는 ‘사회적경제’를 해법으로 꼽는다. 시장경제는 이윤을 극대화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쟁과 효율성을 추구한다.

그 때문에 ‘승자 독식’과 ‘양극화’란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 이런 자유시장경제의 단점을 채워주는 개념이 사회적경제인데, 연대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 상생 발전과 포용적 경제를 추구한다. 

기획재정부도 2021년 서울에서 개최된 ‘서계협동조합대회’에 맞춰 “시장자본주의의 한계를 보완·대체하는 좋은 대안으로 주목받는 사회적경제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거치며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회적경제란 용어 때문에 이를 ‘사회주의경제’와 혼동하는 이들이 아직도 많긴 하지만, 이 개념은 보수와 진보를 아우른다. 일례로 사회적경제의 기본이 되는 사회적기업육성법은 이명박(MB) 정권인 2008년, 협동조합기본법은 박근혜 정권인 2013년에 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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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세계적 추세도 사회적경제를 확대하는 분위기다. 유엔(UN)은 지난 4월 18일 열린 총회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사회연대경제 활성화’ 결의안을 채택했다. 여기서 사회연대경제는 사회적경제, 연대경제를 포괄하는 용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제노동기구(ILO) 등 주요 국제기구는 최근 사회적경제 대신 사회연대경제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유엔은 결의안을 통해 사회연대경제를 지원하고 강화하기 위한 국가별·지역별 정책과 프로그램을 활성화할 것을 권고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회적경제의 현주소는 어떨까. 사회적경제는 문재인 정권에서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건 정책이다. 윤석열 정부도 지난해 5월 22일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며 사회적경제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는 44번째 국정과제인 ‘사회서비스 혁신을 통한 복지·돌봄서비스 고도화’에 언급된다. 윤 정부는 “사회적경제 조직 등 혁신적인 사회서비스 제공기관의 다변화·규모화를 통한 품질 향상으로 이용자 신뢰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약속이 지켜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회적경제가 후퇴하고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어서다. 사회적경제의 중추 역할을 했던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1월 기존 장기전략국을 미래전략국으로 개편하면서 사회적경제과와 협동조합과를 지속가능경제과로 통폐합했다. 서울·대구·부산 등 주요 지방자치단체도 행정 조직 내 사회적경제 부서를 통폐합하거나 폐지했다. 

정부나 지자체 관계자들은 “사회적경제 조직의 통폐합은 효율성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면서 “사회적경제 관련 예산은 문 정부 시절보다 되레 늘어났다”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논쟁해야 할 요소가 많다. 

일단 양적 예산이 늘어난 건 사실이다. 사회적경제 분야에 가장 적극적인 고용노동부의 2023년 예산을 살펴보면, 사회적기업 육성 예산은 2021년 221억원에서 올해 246억원으로 증가했다. 

고용노동부 산하 사회적기업진흥원 운영지원 예산도 같은 기간 559억원에서 692억원으로 늘어났다.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의 분석 자료에 담긴 예산 추이도 비슷하다. 2022년 2조2462억원이었던 17개 중앙부처의 사회적경제 예산은 올해 2조3731억원으로 5.6%(1269억원) 증가했다. 

하지만 예산을 좀 더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다른 결과가 나온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회적기업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보조사업은 줄고, 돈을 빌려주는 금융지원 사업만 크게 늘어났다. 사회적경제 관련 예산의 ‘질적 수준’이 악화했다는 거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지난해 1조5000억원이었던 보조사업 예산은 올해 1조1167억원으로 감소한 대신, 7454억원이었던 금융지원 예산은 1조2060억원으로 61 7%(4606억원) 증가했다. 

특히 정부가 지원하는 보조금으로 진행하는 보조사업 전용 예산은 지난해 3080억원에서 올해 2296억원으로 25.4% 줄었다. 이는 아직은 업력이 짧고 영세한 곳이 많은 사회적기업엔 좋은 소식이 아니다. 정부 보조사업이 줄어드는 건 국가의 지원이 감소한다는 의미다. 금융지원이 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영세 사회적기업엔 ‘그림의 떡’이 될 공산이 크다. 

금융지원을 받기 위해선 ▲담보 여부, ▲회사규모, ▲사업모델의 경쟁력, ▲성장가능성, ▲대표자의 신용도 등을 따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이윤 창출보단 공헌에 초점을 맞춘 사회적기업은 돈을 빌리는 게 어려워질 것이다. 사회적기업이 경쟁과 효율이라는 시장경제를 따라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기업의 한 관계자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라는 측면에선 타당하지만 사회적기업에 이런 잣대를 들이대는 게 옳은지 의문”이라며 “수익성만 좇아서는 상생 발전과 포용적 경제라는 사회적기업의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정책의 변화가 사회적기업과 사회적경제의 후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인데, 실제로 사회적기업 관련 사업의 수는 지난해 46개에서 올해 35개로 크게 감소했다. 

하재찬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상임이사는 “사회적경제를 국정과제에 포함하면서 이를 통해 복지 서비스를 고도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복지부는 관련 사업을 진행하지 않고 있다”며 말을 이었다.

“정권이 바뀐 이후 사회적경제를 향한 정부의 스탠스가 달라진 건 사실이다. 사업에 필요한 예산은 줄었고, 지난해 55개였던 사회적경제 사업 수도 올해 42개로 감소했다. 유엔에선 사회적경제 결의안을 채택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이런 흐름을 역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다.” 

언급했듯 윤 대통령은 1년 전 취임사에서 ‘자유’를 유독 강조했고, 그런 자유의 본질을 ‘승자독식의 반대편’에서 찾았다. 취임사에 ‘사회적경제’를 직접적으로 명기하진 않았지만, 승자독식이란 한계를 메워주는 경제적 이론이 ‘사회적경제’라는 덴 이견이 없다. 남은 4년 윤 대통령은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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