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자의 探스러운 소비
절약 모르고 살던 MZ세대
고물가에 너도나도 짠테크
정보 공유하며 재미 찾기도

퀴즈를 풀면 적립금이 쌓인다. 걸을 때마다 포인트가 적립된다. MZ세대가 고물가 시대를 사는 방법이다. 절약이라곤 모르고 살던 그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경제적 위기를 직감하고,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하지만 무작정 아끼던 이전 세대들과 달리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재미를 찾는다. 

MZ세대는 목표치를 달성할 때마다 몇백원씩 적립되는 ‘걷기 앱테크’를 한다.[사진=뉴시스]
MZ세대는 목표치를 달성할 때마다 몇백원씩 적립되는 ‘걷기 앱테크’를 한다.[사진=뉴시스]

짠테크, 소비 제로, 무지출 챌린지…. 소셜미디어에 공개된 빅데이터 트렌드를 분석한 결과인데, 소비절약 키워드가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기적인 경기침체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데다 고물가·고금리 국면마저 수그러들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플렉스(Flex·재력이나 귀중품을 자랑하는 행위)’를 하던 소비자들이 하루아침에 짠테크에 열을 올리는 걸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사실 나이 든 세대에게 소비 절약은 새삼스러운 주제가 아니다. 광복세대는 한국전쟁과 전후의 궁핍함을 겪었고, 베이비붐 세대는 하루 세끼 챙겨 먹기 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하릴없이 전깃불을 켜지 않고, 두꺼운 이불로 난방비를 아꼈으며, 물은 필요한 만큼만 썼다.

모든 에너지가 절약의 대상이었고, 절약은 습관이었다. “다시는 어렵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지만, “내 자식에게까지 그 고생을 물려주기 싫다”는 이유도 있었다. 내 노후보다 내 자식, 내 손자손녀의 노후 걱정이 우선이었던 거다. 


그런데 최근 나타나는 소비 절약 트렌드를 보면 눈에 띄는 게 하나 있다.  절약이 몸에 밴 어른세대보다 ‘절약’이란 개념을 아예 몰랐을 법한 MZ세대에서 소비 절약 트렌드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유가 뭘까. 

아마도 그들은 최근에야 “미래가 그다지 밝지 않다”는 고민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했을 공산이 크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겨우겨우 마련한 집은 자꾸만 값어치가 떨어진다. 그걸 갖기 위해 대출을 감행했는데, 대출금리가 빠른 속도로 오르면서 상환해야 할 몫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라면, 김밥 할 것 없이 먹거리 가격도 안 오른 게 없다. 부족함 없이 살아온 MZ세대라도 소비 절약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 된 셈이다. 

통계에 따르면 불경기에 가장 먼저 줄어드는 가계지출은 외식비와 의류 관련 비용이다. MZ세대도 다르지 않다. 비싼 별다방(스타벅스) 커피 대신 저가 커피를 마신다. 테이크아웃으로 몇백원을 아끼기도 한다. 더러는 마실 음료를 텀블러에 담아 외출하기도 한다. 

대학생들의 과제회의 풍경도 달라졌다. 예전 같으면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 한잔씩 마시며 회의를 했을 테지만, 요즘엔 한푼이라도 아껴볼 요량으로 직접 만나지 않고 화상회의를 한다. 만나면 아무리 아낀다고 한들 돈을 쓸 수밖에 없어서다.

하루, 일주일, 한달 단위로 ‘무지출 챌린지’에 도전하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새로 장을 보지 않고 냉장고 안의 식재료들로만 요리해서 먹는 ‘냉장고 파먹기(냉파)’, 직장 탕비실 비품을 활용하는 ‘탕비실 파먹기(탕파)’ 전략을 실천하는 젊은이들도 적지 않다. 한달 지하철 이용 횟수를 꼼꼼하게 계산해 정기권을 사서 몇번은 공짜로 타는 이들도 있다.


소비 절약 트렌드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던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도 부활했다. 캔맥주 대신 병맥주를 마신 후 공병을 팔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대신 도보로 이동한다. 그렇다고 그냥 걷는 게 아니다. 7000보, 1만보 등 목표치를 달성할 때마다 몇백원씩 적립되는 ‘걷기 앱테크’를 한다. “옷 20㎏을 팔아 8000원을 벌었다”며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학생도 있었다.

고물가 시대에서는 MZ세대가 폐지 줍기에 나서기도 한다. 다만 손수레를 끌고 골목 구석구석을 다니진 않는다. 온라인상에서 댓글을 써서 포인트를 적립하고, 광고를 보거나 퀴즈풀이에 참여해 푼돈을 버는, 일명 ‘디지털 폐지 줍기’를 하는 거다. 

광복세대와 베이비부머 세대가 나의 후손을 위해 닥치는 대로 절약 생활을 했다면, MZ세대에게는 소비 절약도 일종의 정보기술이다. 이들은 ‘짠테크’ ‘앱테크’ ‘리셀테크’ ‘헌옷테크’라는 이름을 붙여 소소하지만 중요한 팁들을 공유한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이 상황이 힘든 건 MZ세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MZ세대는 그 가운데서도 재미를 찾고 색다른 방법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런 실천을 하나의 소비자 역량으로 간주한다.


고물가 시대를 살며 소비 절약을 실천하는 MZ세대를 보면 대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안쓰럽다. 플렉스 트렌드가 짧은 유행으로 지나간 것처럼 짠테크 트렌드가 필요 없는 시대가 어서 오길 바란다. 

김경자 가톨릭대 교수
kimkj@catholic.ac.kr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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