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視리즈] 지역개발사업 오류의 함정❸
정치권 총선 앞두고 예타 만지작
예타 면제 상한선 늘리려는 이유
선거철이면 남발하는 개발 공약
매우 낮은 지역개발 공약 완료율
예타 상향하면 포퓰리즘 판칠 수도
허술한 예타 뚫은 사업 늘어나면
허투루 쓰이는 예산 증가 분명해

허투루 쓰면 안 되는 돈이 있다. 국민의 혈세로 만든 예산이다. 특히 큰 예산이 투입되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연구·개발(R&D) 사업을 추진할 땐 더 신중해야 한다. 이를 위해 1999년 도입한 것이 ‘예비타당성조사(예타)’다. 문제는 국회가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1년 앞둔 시점에서 예타 면제 사업 기준을 높이려고 한다는 점이다.

국회가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 기준을 높이려고 하고 있다. 사진은 기재위 경제재종소위 회의 모습.[사진=뉴시스] 
국회가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 기준을 높이려고 하고 있다. 사진은 기재위 경제재종소위 회의 모습.[사진=뉴시스] 

“초등학교를 설립하고, 지방도로를 넓히겠다” “농촌 마을 진입로를 개선하고 소방도로를 확장하겠다” “지하철을 연장하고, 새로운 지하철역을 건설하겠다” “KTX 역을 만들고, GTX 연계 철도망을 구축하겠다”…. 2020년 4월 15일 치러진 21대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들이 내놓은 공약의 일부다. 각종 인프라를 확충해 지역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건데, 이를 두고 포퓰리즘 공약이라는 비판은 끊임없이 제기됐다. 

사실 선거를 앞두고 지역개발 공약을 내놓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박영환 영남대(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발표한 ‘한국의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본 공약유형의 빈도와 경향’에 따르면, 253개 선거구, 1098명의 후보가 발표한 6899개(선거 공보물 등 공약 자료가 있는 경우) 공약 중 지역개발 관련 건은 1604개에 달했다.

비중은 23.2%로 9개 주요 공약 중 가장 높았다. 지역개발 다음으론 복지(20.4%), 경제·일자리·노동(14.1%), 문화·체육·관광(11.3%) 등의 순이었다. 

문제는 2024년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이런 포퓰리즘 공약의 남발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거다. 국회가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사업 기준을 상향조정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논의하고 있어서다. 

예타는 대규모 국가 예산(총사업비 500억원 이상, 국비 300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사업의 타당성과 사업성을 평가하는 사전검증제도다. 예산 낭비와 사업 부실화를 막고, 재정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1999년 도입됐다. 나랏돈이 투입되는 사업을 객관적인 기준으로 살피겠다는 거다. 그런데 최근 국회가 예타 면제 기준을 손보겠다고 나섰다. 

지난 4월 1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경제재정소위를 열고 사회기반시설(SOC)과 국가 연구·개발(R&D)사업 등 예타 면제 대상 사업 금액 기준을 500억원에서 1000억원(국비 500억원 이상)으로 완화하는 ‘국가재정법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다행히 이후에 일어난 부정적 여론 때문에 후속 절차가 중단되긴 했지만, 국회가 언제 이 개정안을 상정해 통화시킬지는 알 수 없다. 선거철만 되면 지역개발 공약을 남발하는 상황에서 예타 면제 기준을 상향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불 보듯 뻔하다.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크고 작은 개발공약을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그나마 예타 제도가 있어서 SOC 사업이 무분별하게 추진된 걸 막을 수 있었다”며 “예타는 사업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견제 장치인데 이 기준을 낮추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예타 기준을 밑도는 사업은 소관 부서가 사업성 등을 검토할 텐데, 실효성 있는 검증이 이뤄질지 의문”이라며 “예타 면제 기준을 상향하는 건 예산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 예타 체제에서 후보들이 추진한 개발공약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1대 지역구 국회의원 2년 차 공약 이행 결과 분석 보고서’를 살펴보자.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역구 국회의원 193명(질의서에 회신한 국회의원)의 공약 완료율은 26.95%를 기록했다. 전체 7844개 중 2114개 공약만 현실화했다. 공약 이행률을 조사한 시점이 21대 국회가 출범한 지 2년 6개월이 흐른 시점이라는 걸 감안하면 저조한 실적이다. 특히 눈여겨봐야 할 것은 보류(363개)하거나 폐기(40개)된 403개(전체 5.13%) 공약이다. 이중 대부분은 조성·건립·설치 등의 개발 공약이었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보류·폐기된 것은 대부분 경제성 부분이 떨어지는 개발공약이었다”며 말을 이었다. “해외에선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에 개발 사업이 공약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우리나라는 소선구제를 채택한 탓에 지역 개발 민원이 국회의원에게 전달되고 이를 공약에 담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원에게 지역 개발이라는 행정권한은 없다. 이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국회의원들도 개발 사업이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개발공약은 산업구조의 변화와도 큰 관련이 있다. 공약을 남발하기 앞서 합리적인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 이런 사업을 지역 민원으로 남발하니 지역 갈등 문제까지 발생하는 것이다.” 

이처럼 예타 면제 기준이 아무런 제약 없이 상향 조정되면 22대 총선에서 지역 개발 공약이 쏟아질 게 분명하다. 경제성 없는 공약이 허술한 예타를 뚫고 실제 사업으로 추진될 수도 있다.

한번 시작한 SOC 사업은 쉽게 뒤집을 수 없는 데다 유지관리 비용도 만만치 않아 
예산낭비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전문가들이 재정준칙이 법제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예타 면제 기준을 상향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는 이유다.

정창수 소장은 “예타 제도를 도입한 건 소관 부처의 타당성 조사를 신뢰할 수 없다는 비판이 이어졌기 때문”이라면서 “예타 면제 기준을 상향하고, 면제 사업의 타당성을 소관 부서에서 검증하는 건 예타 도입 취지를 잊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예타 면제 기준을 상향하는 것보다 평가 기준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평가 기준과 결과의 투명성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재정준칙 없는 예타 기준 상향은 선심성 공약을 확대하겠다는 의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런 비판에도 국회는 끝내 예타 면제 기준을 상향 조정할까. 지켜볼 일이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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