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을 머금은 당당한 생명

# 수저 계급론이 있습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부가 사회의 계급을 결정한다는 신조어입니다. 모든 걸 갖추고 태어난 금수저, 경제적 도움을 받지 못하는 흙수저까지 부모의 재력을 기준으로 계급을 나눠 놓은 겁니다. 요즘은 다이아몬드 수저부터 플라스틱 수저, 나무 수저까지 나왔다고 하니, 계급이 좀 더 세밀하게 나눠진 모양입니다. 

# 문득 이 노래가 귀를 맴돕니다. BTS가 부른 ‘불타오르네’란 노래입니다. 

그냥 살아도 돼 우린 젊기에
그 말하는 넌 뭔 수저길래
수저수저 거려 난 사람인데
니 멋대로 살어 어차피 니 꺼야
애쓰지 좀 말어 져도 괜찮아

 

댄스곡입니다만, 마음을 울리는 뭔가가 있습니다. ‘수저계급론’을 꼬집은 노랫말 때문입니다. 아마도 소형기획사의 연습생이었던 BTS 멤버들의 뼈아팠던 기억이 진솔한 노랫말로 옮겨진 듯합니다. 연습생 세계에선 그들 역시 ‘흙수저’였을테니까요. 

# 오랜만에 해가 지기 전 동네에 왔습니다. 해가 길어진 덕분입니다. 노을빛에 물들어 가는 놀이터를 보고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세상이 아름답게 변하는 시간입니다. 멍하니 풍경을 보고 있으니 바닥에 핀 이름 모를 풀에 눈길이 갑니다. 아스팔트 사이에 삐죽 고개를 내밀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풀들입니다. 제법 큰 놈도 있고 이제 막 고개를 내민 아이도 있습니다. 

# 참 기특합니다. 어떻게 저 틈새에 씨앗이 뿌려졌는지, 저기 저 비좁은 곳에서 비가 오기만을 얼마나 기다렸을지…. 그래서인지 비옥한 땅에서 걱정 없이 뿌리를 내린 풀보다 더 단단해 보입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힘겹게 피어난 생명, 수저계급론을 대입하면 이 아이들도 흙수저라고 할 수 있겠네요. 

# ‘개천에서 용 났네’란 말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태어날 때 물고 태어난 수저가 인생을 결정 짓는 세상이란 냉정한 평가도 나옵니다. 노력은 배신하고, 성실은 미덕이 아니라 미련이 됐다고 하니, 세상은 더 힘겨운 공간이 된 모양입니다. 

# 하지만 절망하거나 낙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땀을 흘리는 사람에게 기회를 줍니다. 저기 저 풀처럼, 저기 저 BTS처럼 말이죠. 다시 비좁은 틈새에서 뻗어나온 풀을 봅니다. 노을빛을 품은 풀잎이 반짝거립니다. 금빛으로 물든 흙수저가 아니라 금빛을 머금은 당당한 생명입니다.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사진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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