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만난 우주의 신비

# 초등학교 시절 장래 희망은 과학자였습니다. 입으면 무릎까지 내려오는 아버지 와이셔츠를 입고 과학자 가운(아마도 실험복)이라고 했습니다. 도서관에 가선 과학잡지 뉴턴과 과학동아에 심취하곤 했습니다. 특히 우주 분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 자동차를 한시간만 타도 멀미를 하던 꼬맹이는 그렇게 우주선을 타는 꿈을 가졌습니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을 주문처럼 외우곤 했죠. ‘블랙홀이 태양계로 오면 큰일일 텐데’라고 걱정하고 ‘화이트홀을 찾아서 도망가야겠다’는 공상도 품었습니다. 

# 음… 머리가 조금 크고 나서 알아차린 듯합니다. 우주인이 되는 건 외계인을 만나는 것처럼 어렵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주인은 이공 계열, 특히 수학과 물리를 엄청나게 잘해야 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때의 좌절감이란…. 수포자인 저로선 우포자(?)를 선택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 새벽 산책길에서 만난 풍경입니다. 나무와 풀잎 사이에서 흰색의 무언가가 언뜻 보입니다. 잘못 봤나 눈을 크게 뜨고 응시해보니 거미줄입니다. 얼마나 얇고 미세한지 조금만 각도가 틀어져도 보이지 않습니다. 정확히 한 지점에서만 봐야 겨우 보입니다. 흐릿한 흰색의 거미줄이 모여 선명한 흰색을 띱니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어릴 때 과학잡지에서 봤던 얇고 넓은 타원형에 가운데가 살짝 볼록한 은하계가 떠오릅니다. 몇백광년 떨어진 곳에서 우리 은하계를 보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 그렇게 오랫동안 거미줄을 보고 있으니, 또 하나의 사진이 기억났습니다. 초록색 붉은색 띠를 갖고 있는 푸른색 점 하나. 1990년 보이저 1호가 찍은 지구 사진입니다. 명왕성 궤도 근처를 지나가다 뒤를 돌아 보며 찍은 사진입니다. 

# ‘우주 속 지구’를 본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다시 저 점을 보라. 저것이 우리의 고향이다. 저것이 우리다.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아는 모든 이들, 예전에 삶을 영위했던 모든 인류들이 바로 저기에서 살았다. (중략)... 이 창백한 푸른 점보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을 소중하게 다루고, 서로를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는 자각을 절절히 보여주는 것이 달리 또 있을까?”

# 꿈, 은하계, 지구…. 그날 새벽은 그렇게 또다른 ‘기억’이 됐습니다. 거미줄에서 우주를 만난 새벽, 그 순간의 단상입니다.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사진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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