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인플레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원자잿값 정상화에도 고물가 여전
시장지배 기업, 물가상승 ‘주범’
원자잿값 이상으로 제품가 올려
제품가격 인상→물가상승 이어져
이익·물가 나선효과 주목해야
“시장지배기업 가격 통제해야”
이사벨라 베버 교수 주장 설득력 얻어

우리 정부의 압박으로 6월 마지막주 라면·밀가루 회사들이 제품 공급가격을 인하했다. 일부 유통업체도 동참했다. 이제 아이스크림 등으로 가격 인하가 확산할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다만, 이를 둘러싼 해석은 분분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인플레이션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기업의 이익이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슈퍼마켓 모습. [사진=뉴시스]
기업의 이익이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슈퍼마켓 모습. [사진=뉴시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석유·곡물 등 원자재 가격이 치솟았다. 자동차에 많이 사용하는 아날로그 반도체처럼 일부 품목은 생산량이 부족해지는 이른바 공급망 위기로 관련 제품의 가격이 급등했다. 여기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까지 터졌다.

경제학자들은 팬데믹 기간 중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수요가 공급을 뛰어넘는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으로 분류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중순 이후 국제 유가와 국제 곡물 거래가격은 진정됐고, 공급망 문제도 해결됐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은 멈추지 않고 있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 경제학자들은 모두 그 원인을 제각각 분석하기 시작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유럽연합(EU)의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은 처음엔 고전적 이론을 근거로 임금 상승을 주목했다. 예컨대, 연준은 지난해 3월 공개된 회의록에서 “상당한 수준으로 임금이 오르면서 물가 상승을 부채질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앤드류 베일리 영국 중앙은행장은 지난해 2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6월 직접 여러 차례 임금 인상을 자제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는 세계 각국이 지난 2년을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 시기로 규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비용 인상 인플레란 임금, 자본 조달 비용,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인플레가 확산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르면 원자재 가격이 정상화 궤도에 진입하면 인플레이션도 꺾여야 한다. 그런데 원자재 가격이 떨어졌는데도 인플레이션이 수그러들지 않으니, ‘비용 인상 이론’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게 힘들어졌다. 

그러자 기업들이 비용 상승분 이상으로 높은 가격을 책정해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전가하고, 자신들은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행위가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한다는 이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른바 탐욕 인플레(Greedflation), 핑계 인플레(Excuseflation) 이론이다.

미국 민주당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이를 “바가지(price-gouging)”라고 표현했다. 경제학계에서는 이를 이익(Profit)·물가 나선효과라고 부른다. 이 분야의 대표 주자는 이사벨라 베버 메사추세츠대학 교수다. 

베버 교수는 2021년 12월 영국 매체 가디언에 ‘전략적 가격 통제가 인플레이션과 싸우는 데 도움이 될까?’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기업들의 이익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 이번 인플레이션의 주요 요인”이라며 “정부가 전략적인 가격 통제를 통해서 병목 현상을 해결하고, 기업들이 가격을 급등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베버 교수는 즉시 여러 진영으로부터 동시에 공격을 받았다. 뉴욕타임스에 기명 칼럼을 연재하던 노벨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당시 33세에 불과한 베버 교수를 자신의 트위터에서 공개적으로 “정말 바보(truly stupid)”라고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미국 보수 매체인 폭스 등도 일제히 ‘가격 조정’이라는 말에 초점을 맞춰 베버를 공격했다. 

크루그먼은 해당 발언을 철회하고 사과했지만, 이사벨라 베버 교수를 재평가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건 지난해 10월이었다. EU가 이사벨라 베버 교수의 전략적 가격 제한 제안을 받아들여 올해 2월 천연가스 가격 상한제를 시행하고, ECB 총재 등이 이익·물가 나선효과를 인정하는 발언을 내놨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해 임금의 실질 상승률이 기업의 이익 상승률에 미치지 못한 사실이 통계로 증명됐기 때문이다. 가격 결정력이 높은 기업들이 가격을 인상해 이익을 늘리면 물가가 상승하고, 이는 다시 이익과 물가를 끌어올리는 ‘이익·물가 나선효과’는 이제 주류 경제학계에서도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올해 2월 천연가스 가격 상한제를 실시했다. 사진은 독일의 한 항구에 정박한 천연가스 수송선 모습. [사진=뉴시스]
유럽연합(EU)은 올해 2월 천연가스 가격 상한제를 실시했다. 사진은 독일의 한 항구에 정박한 천연가스 수송선 모습. [사진=뉴시스]

올해 초 레이얼 브레이너드 미국 연준 부의장은 시카고대학에서 “지난 2년 동안 기업의 이익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 수준을 유지하는 동안 ‘소득의 노동 분배(임금)’는 전반적으로 팬데믹 이전 수준 이하로 감소했다”고 발언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지난 5월 4일 “일부 산업의 기업들이 인플레이션으로 발생한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상황에서 자신들의 비용이 늘어난 것 이상으로 더 높은 가격을 책정해 수익을 더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IMF도 지난 6월 26일 블로그를 통해서 “지난 2년 동안 유럽의 인플레이션 증가의 절반은 기업 이익이 늘어난 데서 기인한 것”이라며 “ECB의 물가 목표인 2%를 충족하려면 기업들이 지금보다 더 적은 이익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버 교수는 올해 초 최근 몇년간의 연구를 정리해 ‘판매자 인플레이션, 이익과 갈등: 왜 대기업들은 긴급 상황에서도 가격을 올릴 수 있을까?(Sellers’ Inflation, Profits and Conflict: Why can Large Firms Hike Prices in an Emergency?)’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인플레이션을 거시경제 현상으로만 설명했지만, 코로나19 이후 발생한 인플레이션은 가격 결정력이 높은 기업(Seller)들이 경쟁 기업들의 묵시적 동의를 통해서 가격을 인상한 미시경제적인 설명이 가능하다는 내용이다. 베버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는 시장에 갈등이 발생하는데, 정부가 가격 조정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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