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도체 등 對中 무역 막고
中, 희귀광물 수출 금지 선언
2018년 이후 5차례 맞대응
그런데도 미중 상품무역 증가

미국과 중국의 경제 갈등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두 나라는 하루 건너 하루꼴로 사실상의 경제 제재안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2018년 이후 5년이 넘게 지속된 두 나라의 보복과 맞보복에도 양국의 무역 거래는 줄지 않았다. 두 나라가 서로의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무기로 삼은 배경은 무엇일까. 

2018년 이후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사진은 미국 LA항. [사진=뉴시스]
2018년 이후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사진은 미국 LA항. [사진=뉴시스]

■ 미중 난타전=7월 들어 미중 양국의 경제적 갈등이 심각한 수준으로 심화됐다. 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은 첨단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하는 중국 기업들이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웹서비스(AWS) 등이 제공하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활용하기 전에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중국이 희귀광물 수출 통제를 발표한 데 따른 미국의 반격이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3일 “수출통제법에 따라서 국가 안보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을 8월 1일부터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두 희귀광물은 반도체‧태양광 패널 등 전자제품에 사용된다. 이는 희토류 수출통제의 전초전 성격으로 보인다. 블룸버그는 지난 3일 중국이 코발트 가격이 하락한 후 5000톤(t)가량을 매집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7월 1일부터 대외관계법과 반간첩법 개정안을 시행했다. 두 법은 중국 정부가 외국의 경제 제재가 시작되기 전에 먼저 제재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다. 중국 내에서 벌어지는 간첩 활동의 범위를 넓히고, 처벌 수위를 강화한 것도 독소조항이다. 

지난 6월엔 미국이 중국 AI 산업을 정조준했다. WSJ는 지난 6월 27일 “미국 상무부가 7월 중 반도체 회사 엔비디아, AMD의 모든 AI 관련 반도체의 대중對中 수출을 금지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지난해 엔비디아에 “최신 반도체를 중국에 수출하려면 신규 라이선스를 취득하라”며 사실상 중국 수출 금지령을 내린 바 있다. 

■ 디리스킹과 디커플링=최근 두 나라의 난타전은 미국이 중국 배제 정책의 논의를 어느 정도 정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은 중국을 향해 디커플링(분리)을 추진해왔지만, 올해 3월 이후 디리스킹(위험 제거)으로 약간의 방향 수정을 꾀한 상태다. 지난해 8월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법이 발효됐는데, 두 법의 핵심은 보호무역, 특히 대중 보호무역이었다. 이른바 중국 디커플링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G7 행사에서 ‘디리스킹’을 언급했다. 사진은 조 바이든(왼쪽)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가운데) 일본 총리, 윤석열 대통령. [사진=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G7 행사에서 ‘디리스킹’을 언급했다. 사진은 조 바이든(왼쪽)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가운데) 일본 총리, 윤석열 대통령. [사진=뉴시스]

하지만 미국은 올해 3월 반도체법의 세부 조항을 발표하며 디커플링의 방향을 미세 조정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21일 G7에서 “중국과 디커플링이 아닌 디리스킹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유럽이 지난 3월 처음으로 중국과 관련해 디리스킹이라는 말을 쓸 때와는 달리 미국은 같은 단어의 정의를 살짝 비틀었다. 유럽의 중국 디리스킹은 수입 다변화 전략에 가깝다. 반면, 미국의 디리스킹은 디커플링의 전 단계로 봐야 한다. 미국의 디리스킹은 중국에 ‘첨단 반도체는 불가, 범용 반도체는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래서 리창 중국 총리는 지난 6월 21일 “어떤 식으로 포장을 하든 디커플링과 디리스킹의 본질은 탈중국”이라고 정의했다. 

■ 미중 무역 규모는 증가=6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이 중국을 방문해 중국 부총리 등과 회담을 한다. 미중 경제수장의 회담에 기대를 거는 것은 당사자들보다는 오히려 한국‧대만 등 두 나라와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주변국이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산 제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하며 양국의 경제적 갈등이 시작된 이래 무역과 반도체가 국가 경쟁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한국‧대만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2018년 미중 무역갈등으로 두 나라의 무역이 얼어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2020년 1월 미중 무역합의 이전까지 2년 동안 미국의 중국산 수입품 평균 관세는 19.3%로, 중국 외 국가 평균인 3%보다 훨씬 높았다. 중국도 이 기간 미국 외 국가 평균 관세가 6.1%였는데 반해 미국산 수입품의 평균 관세는 21.2%에 달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두 나라의 무역 규모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만 잠시 주춤했고, 이후 크게 늘어났다. 두 나라의 무역 규모는 지난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의 상품 무역 규모는 지난 2021년 6915억 달러였다. 이는 무역갈등이 시작된 2018년 6823억 달러보다 오히려 늘어난 수치다. 

■ 미중 패러독스의 배경=두 나라의 무역 규모가 늘어났는데도 갈등이 되레 깊어지는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아시아 패러독스(역설)’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일본‧한국‧대만 등이 경제적으로 상호의존성이 증가하는데도 지정학적 갈등은 해결되지 않는 것을 가리켜 ‘아시아 패러독스’라고 한다. 두 나라는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오히려 무기화해 서로에게 겨누고 있는 셈이다. 

국가간 경제협력과 안보 갈등을 둘러싼 논쟁은 오랜 기간 지속돼 왔다. 경제협력의 ‘절대적인 이익’에 초점을 맞추는 전문가는 모든 경제협력이 안보 갈등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무역을 통해 전체 이익이 늘어나더라도 그 안에서 더 가져가는 나라가 생기는 ‘상대적인 이익’에 초점을 맞춘 전문가는 경제협력이 늘어나도 안보 갈등이 줄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데일 코플랜드 버지니아대학 교수는 지난 2015년 앞서 소개한 두 관점을 결합해 “향후 무역 환경을 내다보는 시각이 긍정적이면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무역 기대 이론’을 주장했다. 경제 전망이 부정적이면 안보 갈등은 커진다는 뜻이다. 미중의 갈등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중국 훈춘시 항구로 들어가는 트럭들. [사진=뉴시스]
중국 훈춘시 항구로 들어가는 트럭들. [사진=뉴시스]

코플랜드 교수는 2000년 “패권을 거머쥔 나라와 도전하는 나라 사이에서 경제력의 역전 현상이 발생하면, 이어 군사력의 역전 현상이 발생한다”며 “패권국가가 예방전쟁(preventive war)을 일으키기 좋은 환경은 두 역전 현상 사이”라고 주장했다. 중국과 대만, 미국과 중국 간 안보 갈등이 심각해지는 것은 갈수록 무역 환경이 악화하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11년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중국 경제가 미국을 2025년에 추월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예측은 사실상 빗나갔다. 그런데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말 다시 관련 보고서를 내고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 2000년 미국의 12% 수준이었지만, 2021년에는 80%에 육박했다”며 “2035년 중국이 미국의 경제 규모를 추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