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컴퍼니 인사이트
소형 SUV 시장 선전으로
흑자 전환한 한국 GM
전기차 국내 생산 아직
경제성·생산성 감안한
타이밍 노린다는 전략
승부수 시장서 통할까

지난해 9년 만의 흑자 전환에 성공한 한국 GM이 오는 8월 수장을 교체한다. 모처럼 불어온 훈풍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그런데 이상하다. 한국 GM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선 전기차 생산을 통해 국내 공장의 입지를 넓혀야 한다. 하지만 한국 GM의 미래 플랜에는 아직까지 전기차 생산 내용이 없다. 어떻게 된 일일까.

한국 GM은 전기차 생산 없이 흑자 기조를 이어갈 수 있을까.[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국 GM은 전기차 생산 없이 흑자 기조를 이어갈 수 있을까.[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쪽에선 연간 20만대 규모의 전기차 생산 설비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또다른 한쪽에선 올 하반기 신형 전기차 출시에 힘을 쏟고 있다. 전자는 르노코리아(이하 르노), 후자는 KG모빌리티(이하 KGㆍ옛 쌍용차)다. 두 기업으로선 전기차 시대에 걸맞은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잰걸음을 놓고 있는 셈이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또 하나의 회사가 있다. 두 기업과 함께 ‘삼총사’로 불리는 한국 제너럴모터스(GM)다. 이제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GM의 행보도 르노KG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한국 GM은 아직까지 국내 공장에서 전기차를 생산할 방침을 공식화하지 않고 있다.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전기차’로 바뀌는 시점에서 GM은 왜 어떤 발걸음도 떼지 않고 있는 걸까.

이 질문에 한국 GM 관계자는 “당장 전기차를 생산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대답했다. 대체 무슨 의미일까.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자.

“현재로선 전기차로 수익을 얻을 수 없다. 전기차 수익성은 배터리 가격과 맞닿아 있는데, 2020년대 중
후반께나 배터리 가격이 내려가서 전기차 생산으로 이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런 상태에선 전기차로 해외 수출을 노릴 수도 없다. 차를 수출할 시장부터 정해야 하는데, 현지에서 원하는 제반 조건을 맞추다 보면 (수출 기업은)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현시점에서 전기차를 생산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판단이다.”

간단히 말해, 지금은 전기차를 만들어봤자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에 시장성을 확보할 만한 ‘타이밍’을 기다린다는 얘기다. 2018년부터 국내 공장에 전기차 생산 물량을 배정해달라고 요구해온 한국 GM 노조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노조 관계자는 “한국 공장은 GM 인터내셔널 소속으로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특화한 공장”이라면서 “하지만 지금 소형 SUV 전기차를 제조한다고 해도 배터리 가격 때문에 차 가격이 5000만원 수준은 될 텐데, 과연 소비자들에게 구매력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노조에서도 바로 전기차를 만들겠다는 게 아니라 향후 2~3년을 보고 물량 배정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GM은 전기차 생산을 위한 최적의 시기를 노린다는 전략을 세웠다.[사진=GM 제공]
한국 GM은 전기차 생산을 위한 최적의 시기를 노린다는 전략을 세웠다.[사진=GM 제공]

GM이 전기차 생산에 뜸을 들이는 배경엔 공급망 이슈도 있다. 노조 관계자는 “배터리구동 모터 등의 부품에서 수급난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실제로 해외에서 생산판매 중인 전기차 모델 리릭, 허머만 봐도 배터리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어도 재료가 없어서 생산을 못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거다.

그렇다고 부품 업체들이 한국 GM을 포함한 르노, KG를 위해 별도의 물량을 생산하기도 어렵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부품 업체는 대량 공급을 해야 수지가 맞는다”면서 “소량 생산
공급은 되레 단가만 높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한국 GM이 전기차 생산을 장고하는 건 전기차의 경제성과 생산성을 확신할 수 없어서다.

그럼에도 의문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는다. 전기차 시장의 녹록지 않은 환경은 한국 GM만의 문제가 아니다. 르노와 KG 역시 경제성과 생산성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두 기업과 한국 GM의 선택이 엇갈린 건 왜일까.

한국 GM 자신감의 배경 

한국 GM이 다른 길을 택할 수 있었던 건 일단 ‘체급’이 뒷받침돼서다. 한국 GM의 지난해 총 판매량은 26만875대로 르노(16만9641), KG(11만3960대)보다 1.5~2.3배 많다.

매출 규모도 한국 GM은 9조원이 넘는 데 비해 르노와 KG는 각각 5조원, 1조원 수준이다. 소형 SUV 트레일블레이저와 RV(레저용 자동차) 모델 트랙스 크로스오버의 쌍끌이 흥행이 한국 GM의 호실적을 견인했다. 다시 말해, 한국 GM은 시급하게 전기차를 생산하지 않더라도 ‘먹고살 만한’ 기초체력이 있다는 뜻이다.

한국 GM 관계자는 “최근 내연기관차 생산과 관련해 중요한 글로벌 프로젝트를 받아뒀다”면서 “이 프로젝트를 잘해 나가면서 우리의 경쟁력을 또한번 입증하고, 좋은 분위기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GM의 이런 자신감이 역효과를 불러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선 국내 소형 SUV 시장의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올 5월까지 소형 SUV 판매량(15만2417대)은 이미 지난해 전체 판매량(28만6013대)의 절반을 넘어섰다. 상반기에만 현대차(코나), 기아(셀토스), KG모빌리티(티볼리)가 연식
부분 변경 모델을 출시한 결과다.

이를 달리 해석하면, 소형 SUV 시장엔 언제든 판을 뒤흔드는 차종이 출현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시장에 집중하고 있는 한국 GM이 기존 차종의 인기만으로 안심할 상황은 아니란 얘기다.

만약 치열한 경쟁 속에서 또다른 간판 모델을 내세우지 못한다면 한국 GM은 판매량 정체→국내 공장 일감 감소→한국 GM 입지 축소란 악순환의 고리에 걸려들 수 있다. ‘잘하는 것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이 되레 강점(체급)을 무너뜨리는 독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거다.

자동차 회사들은 지금 너나 없이 ‘초스피드’ 전기차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GM의 미국 본사 역시 2025년까지 45조원을 투자해 30종의 신형 전기차를 출시할 계획이다. 모두가 바쁘게 달려가는 가운데 한국 GM은 역으로 ‘최적의’ 전기차 생산 타이밍을 재고 있다. 적기를 기다리겠다는 한국 GM의 승부수는 과연 통할까.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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