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백 백, 합할 합

# 딸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 뜬금없이 아이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백합이 어떻게 생긴 꽃이야?” 저는 어~ 하다가 “하얀 꽃” 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딸아이는 그 정도는 이미 잘 안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묻습니다.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달라니까.” 추가 설명을 할 수 없던 전 민망함에 연신 헛기침만 해댑니다.

# 집에 와서 검색을 해봤습니다. 뜻밖에도 백합의 색은 하얀색만이 아니고, 종류도 100여 종이 넘더군요. 백합百合의 한자가 ‘흰 백白’이 아닌 ‘일백 백百’을 쓴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일백 백, 합할 합. 백합의 뜻이 하얀 꽃이 아니었다니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 딸아이의 질문 탓에 다시 찾아본 백합. 꽃을 보자 낯이 익습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억이 납니다. 며칠 전 비 오던 날 찍은 사진을 찾아봅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입니다. 비에 젖은 하얀 백합입니다. 집에 들어오던 길, 코를 콕 찌르는 향기가 아로새겨진 집 앞 화단에 핀 꽃이었습니다. 코 앞에 백합을 두고 몰라봤다니 부끄러운 마음이 밀려옵니다. 

# 촉촉한 비를 맞으며 생명을 틔워 갑니다. 꽃잎을 꾹 다문 모습은 새부리 같기도 하고 잎 끝에 맺힌 물방울은 수정 구슬 같기도 합니다. 백합이란 뜻 그대로 ‘일백을 합친 것’만큼 아름답습니다. 

# 내일은 딸아이와 함께 집 앞 화단으로 가 보여줘야겠습니다. “봐. 이게 백합이란다.” 이왕이면 제가 찍은 사진도 보여주며 슬쩍 자랑도 해볼 참입니다. 우리 가족은 백합처럼 잘 지내자는 이야기도 덧붙이려 합니다. 백합의 꽃말은 ‘변함없는 사랑’이니까요.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사진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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