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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선 세금 아닌 부과금으로 접근
보수·진보 대립 없이 횡재세 도입 가능
극우 이탈리아 내각, 횡재세 도입 논의
‘횡재세=세금’ 인식한 한국선 갑론을박

이탈리아가 에너지 기업에 이어 은행에도 횡재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유럽연합(EU)을 포함해 유럽 여러 나라가 횡재세 도입에 주저하지 않는 이유는 횡재세를 세금이 아닌 부과금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어서다. 반면 한국은 횡재세를 부과금이 아닌 세금으로 판단한 채 접근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사진=뉴시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사진=뉴시스]

■ 이탈리아 횡재세 추가=이탈리아가 에너지 관련 기업들에 부과하던 횡재세를 은행에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는 지난 7일 은행 초과 순이자마진(NIM)에 40% 세율을 적용하는 일회성 횡재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조르자 멜로니 총리 내각이 결정한 내용을 의회가 최종 승인해야 시작한다. 2022년에 전년도 NIM을 3% 초과하거나, 2023년에 전년도 NIM을 6% 초과하면 부과한다.


횡재세는 일정 기준 이상의 초과 이익을 얻은 법인이나 사람에게 법인세나 소득세 외에 추가로 부과하는 일종의 부과금을 말한다. 바람에 날아온 이익(windfall tax)이라는 영문명처럼 기업이 외부 요인으로 의도치 않게 추가 수익을 낸 것을 사회에 환원하라는 의미다. 외부 요인은 자연재해·전쟁은 물론이고 정부 정책의 변화까지 포함한다. 

순이자마진은 은행이 자산을 운용해 벌어들인 전체 수익에서 자금 조달 비용을 뺀 금액을 운용 자산 총액으로 나눈 것으로 자산 단위당 이익률이다. 대출 금리에서 예금 금리를 뺀 예대마진과 달리 채권 등 유가증권에서 발생한 수익과 비용도 모두 합한 개념이다. 

이탈리아의 이번 은행 횡재세 부과는 거두는 것보다는 거둬들인 돈을 어디에 쓰느냐에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살비니 부총리는 은행 횡재세로 거둬들일 약 20억 유로(2조8000억원)를 주택담보대출 보유자들의 이자를 대신 내주는 데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멜로니 총리가 지난 6월 유럽중앙은행(ECB)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강하게 비판한 것과 관련이 있다. 멜로니 총리는 지난 6월 28일 “유로존의 높은 인플레이션은 경기가 과열돼서가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급등 때문”이라며 “치료법이 병보다 더 해로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탈리아의 국가부채는 지난 5월 2조7900억 유로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탈리아 공공부채는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44%다. 금리 인상으로 이탈리아 정부는 막대한 재정적 압박을 받고 있다. 

■ 횡재세 오해=일반적으로 보수정당은 감세를, 진보정당은 증세를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횡재세는 언뜻 극우정당들의 연합체인 이탈리아의 현실과 맞지 않는 듯 보인다. 

멜로니 총리가 속한 정당은 ‘이탈리아의 형제들’로 지난해 총선에서 총 400석 중 119석을 차지했다. 멜로니 총리는 같은 극우 성향인 ‘북부동맹’, 중도 우파 성향인 ‘전진 이탈리아’와 보수 대연합을 구성했다.

‘이탈리아의 형제들’은 여러 부분에서 무솔리니의 파시즘을 계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 무솔리니의 손녀, 증손자를 시의원 등에 추대하기도 했다. 부총리가 속한 ‘북부동맹’은 1990년대 창당했다. 이탈리아 북부의 분리독립 운동을 주도한 적도 있을 만큼 극우로 분류된다.


실제로 멜로니 총리는 과거 파시즘 경제 정책인 민족, 국내 우선주의, 고립주의를 대체로 답습하고 있다. 멜로니 총리는 집권 후 산업부 명칭을 ‘비즈니스 앤드 메이드 인 이탈리아’로 바꾸기도 했다. 

이탈리아와 유럽 여러 나라가 횡재세 부과에 주저하지 않는 건 대부분의 횡재세가 사실 세금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에너지 기업들에 횡재세를 부과할 때도 세금이냐 아니냐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세금은 국세·지방세처럼 법률로 제정해 강제로 집행한다. 부과금은 의무적으로 준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세금과 같지만, 정부가 필요한 사업의 경비를 충당하는 등의 목적으로 관계된 이들에게 부과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횡재세가 대부분 초과 이윤에 일종의 분담을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스페인 정유회사 렙솔 본사 앞에 모인 시위대. [사진=뉴시스]
스페인 정유회사 렙솔 본사 앞에 모인 시위대. [사진=뉴시스]

스페인에서는 에너지 기업들의 반발로 법정에서 시비를 가렸다. 스페인은 지난해 은행 이자 수익에 4.8%의 횡재세를 부과하고, 에너지 회사들의 스페인 국내 매출의 1.2%에 횡재세를 부과했다.

문제가 된 것은 초과 이윤이 아닌 매출에 횡재세를 부과했다는 점이다. 스페인 법원은 올해 2월 정유회사 렙솔이 스페인 정부의 과세를 금지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자 “에너지 위기와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국가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요구를 하는 것은 법의 주요한 목적에 부합한다”며 이를 기각했다. 


유럽에서는 유럽연합(EU)을 포함해 영국·헝가리·리투아니아 등 상당수 국가가 지난해 에너지 기업들에 한시적인 횡재세를 부과했다. 독일과 영국 등은 부과금(levy)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 한국 횡재세=한국에서도 여러 차례 횡재세 논의가 이뤄졌고, 실제로 비슷한 개념의 제도가 시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횡재세를 법률 개정을 통한 세금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실제 시행에는 어려움이 많다. 사실상 횡재세인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제는 시행 중이다. 

토지초과이득세법은 헌법재판소가 지난 1994년 위헌으로 결정했다. 헌재는 “미실현이익에 과세하는 건 합헌이지만, 객관적으로 계산하기 어려워 높은 세율로 과세하면 원본 잠식으로 재산권 침해의 우려가 있다”고 판결했다.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제는 세금이 아닌 부담금을 징수하는 것으로 횡재세와 사실상 같은 개념이다. 헌법재판소는 위헌 요소가 없다고 판결했다.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제는 미실현이익이 1억1000만원을 초과하는 조합원으로부터 액수에 따라 10~50%를 부담금으로 징수하는 제도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사진=뉴시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사진=뉴시스]

지난해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석유정제업자·액화석유가스 집단공급사업자를 대상으로 초과소득에 20%의 세율로 횡재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법인세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도 지난해 한국판 횡재세 부과를 위한 법인세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용혜인 의원안은 정유사와 16개 은행을 대상으로 초과이익에 50%의 세율을 적용하는 내용이다. 두 개정안은 모두 소관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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