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IT 언더라인
오리지널 콘텐츠=OTT 경쟁력
디즈니플러스 콘텐츠 수 줄여
비용 절감으로 위기 넘겠단 건데
국내 OTT도 비슷한 상황이지만
콘텐츠 부족해 따라하긴 어려워

최근 디즈니플러스의 행보가 심상치 않습니다. 멀쩡한 오리지널 콘텐츠의 송출을 중단하는가 하면, OTT 관련 부서도 해체하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콘텐츠=경쟁력’인 이 업계에서 디즈니플러스가 이렇게 낯선 선택을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더스쿠프(The SCOOP)가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OTT 업계 현황을 살폈습니다.

디즈니플러스는 최근 오리지널 콘텐츠 50여편을 삭제했다.[사진=뉴시스]
디즈니플러스는 최근 오리지널 콘텐츠 50여편을 삭제했다.[사진=뉴시스]

OTT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요. 바로 ‘오리지널 콘텐츠(독점작)’입니다.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이 많을수록 시청자들은 해당 OTT 서비스로 쏠리게 마련이니까요. 오리지널 콘텐츠 수가 OTT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척도란 겁니다.

지난해 오리지널 콘텐츠 ‘지금 우리 학교는’ ‘수리남’으로 많은 시청자를 끌어모은 OTT ‘넷플릭스’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시장조사업체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1월 28일 ‘지금 우리 학교는’을 공개한 이후 넷플릭스 앱 신규 설치 건수가 20만7665건(2월 1주차 기준)으로 110.0%(이하 전주 대비)나 증가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해 9월 9일 수리남을 공개한 이후 9월 3주차 앱 신규 설치 건수는 9만1829건으로 60. 0% 늘었습니다. 수리남을 보기 위해 이용자들이 넷플릭스 앱을 스마트폰에 설치했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OTT 업체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매년 어마어마한 액수의 투자금을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미 파이낸셜타임스가 넷플릭스·디즈니플러스 등 미국의 8개 OTT 기업들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이들 업체가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투자한 금액은 무려 1150억 달러(147조2575억원)에 이릅니다.

이 때문에 국내 OTT 업체들도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 규모를 대폭 늘려왔습니다. 월 이용자 수 514만명(모바일인덱스·5월 기준)을 기록해 넷플릭스(1153만명)에 이어 국내 2위를 차지한 티빙이 대표적입니다.

2021년 707억원, 지난해 1169억원 등 지금까지 총 1876억원을 콘텐츠에 투자했습니다. 2020년 모기업인 CJ ENM에서 독립할 당시 “2023년까지 4000억원을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투자하겠다”고 밝혔으니, 이 계산대로라면 티빙은 올해도 2124억원을 콘텐츠에 쏟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밖에 3위(431만명)인 쿠팡플레이는 매년 1000억원, 4위(392만명)인 웨이브는 2025년까지 1조원을 투입할 계획입니다.

그럼 1등인 넷플릭스는 얼마나 투자하고 있을까요? 지난 5년간 넷플릭스는 전체 매출의 절반에 해당하는 600억 달러(76조8640억원)를 콘텐츠 제작에 쏟아부었습니다. 지난 6월 22일엔 “향후 4년간 25억 달러(3조2025억원)를 한국 콘텐츠 개발에 투자하겠다”는 포부도 밝혔죠. 이는 앞서 언급한 국내 OTT 업체들의 투자금액을 전부 합친 것보다 많은 액수입니다.

이렇듯 OTT 시장엔 ‘오리지널 콘텐츠=경쟁력’이란 공식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 공식대로라면 OTT 기업들은 서비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오리지널 콘텐츠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왜 OTT 업체들의 경쟁을 ‘쩐의 전쟁’이라고 부르는지 알 법합니다.

그런데, 최근 이런 공식을 거스르고 있는 업체가 있습니다. 디즈니가 운영 중인 OTT 서비스 ‘디즈니플러스’입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공시에 따르면, 디즈니는 지난 5월 27일부터 ‘윌로우’ ‘빅샷’ ‘돌페이스’ 등 오리지널 콘텐츠를 포함해 50여개가 넘는 콘텐츠의 송출을 중단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오리지널 콘텐츠를 앱 내에서 삭제한 건데, 이로 인해 줄어든 디즈니의 콘텐츠 자산가치만 15억 달러(1조9237억원)에 달합니다. 최근엔 국내에서 오리지널 콘텐츠를 발굴하는 OTT 콘텐츠팀을 해체하기도 했죠.

[자료 | 업계 종합]
[자료 | 업계 종합]

디즈니플러스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오리지널 콘텐츠를 줄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크리스틴 매카시 디즈니 최고재무관리자(CFO)가 1분기 실적발표회에서 “수익성 개선을 위해 특정 콘텐츠를 삭제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앞서 디즈니가 삭제한 오리지널 콘텐츠의 상당수는 흥행 성적이 좋지 않거나 방영한 지 시간이 꽤 흐른 콘텐츠입니다.

이런 콘텐츠는 신규 가입자를 유치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죠. 콘텐츠를 삭제하면 해당 콘텐츠를 송출하는 필요한 서버 이용료부터 세금·저작권 등 관련 유지비를 절감할 수 있습니다. 디즈니플러스는 콘텐츠를 삭제해 비용 감축을 꾀한 겁니다.

디즈니의 콘텐츠 축소는 최근 악화한 실적과도 연관이 깊습니다. 지난 2분기 디즈니의 스트리밍 부문의 영업적자는 6억5900만 달러(8445억원)를 기록했습니다. 전년 동기(8억8700만 달러)보단 줄었지만 여전히 ‘마이너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2분기 13억500만 달러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넷플릭스와 비교하면 상황이 더 암울합니다. 그나마 디즈니플러스 가입자 수가 1억5210만명으로 전분기 대비 1440만명 늘어난 게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이를 두고 미 시장조사업체 라이트쉐드 파트너스의 리차드 그린필드 애널리스트는 보고서에서 “최근 출시된 작품 중 히트작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제작물을 과감히 축소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OTT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디즈니플러스가 작품 수를 늘리기보단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얘기죠. 언급했듯 디즈니플러스가 콘텐츠를 대거 삭제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이렇듯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디즈니플러스는 국내 OTT 업체들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최근 가입자가 크게 늘었다곤 하지만, 토종 OTT 업체들의 상황 역시 디즈니플러스와 별반 다를 게 없어서입니다.

일례로, 업계 2위인 티빙은 지난 1분기에 400억원 영업적자를 냈습니다. 2020년 61억원 적자를 낸 이후로 한번도 흑자전환에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웨이브도 같은 기간 169억원에서 1213억원으로 적자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었습니다. 국내 OTT들도 디즈니플러스처럼 오리지널 콘텐츠 경쟁에서 주춤할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다만, 디즈니플러스가 이들 국내 업체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디즈니플러스엔 인기 지식재산권(IP)을 기반으로 한 ‘저력 있는 작품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스타워즈의 외전 격인 ‘만달로리안’, 우리에게 친숙한 마블 영화 ‘어벤져스’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시크릿인베이젼’ 등 흥미로운 볼거리가 많습니다.

이같은 디즈니플러스 작품들의 상당수는 단편으로 끝나지 않고 시즌제로 운영하고 있어 디즈니플러스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습니다.

[자료 | 업계 종합, 사진 | 디즈니플러스 제공]
[자료 | 업계 종합, 사진 | 디즈니플러스 제공]

하지만 국내 OTT 업체엔 이렇다 할 ‘흥행 보증 수표’가 없습니다. 그나마 티빙의 시즌제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 웨이브의 ‘낭만닥터 김사부’가 새 시즌이 나올 때마다 준수한 성적을 내긴 했죠. 국내 OTT 업체들의 상황이 디즈니플러스보다 심각해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이헌율 고려대(미디어학) 교수는 “국내 OTT 업체들은 역사가 짧은 탓에 캐시카우가 될 만한 IP가 부족하다”면서 “지금은 휘발성이 높은 작품보단 장기 흥행할 수 있는 콘텐츠에 집중해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렇듯 OTT 시장의 콘텐츠 경쟁은 해가 바뀔수록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그 대단한 디즈니플러스마저 오리지널 콘텐츠를 ‘가지치기’하며 몸을 사릴 정도입니다. 하지만 언급했듯 이 시장에서 오리지널 콘텐츠가 곧 경쟁력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결국 흥행성이 뛰어난 독점작을 꾸준히 내놓는 업체가 경쟁에서 살아남을 거란 얘기입니다. 올해 OTT 시장의 승기는 누가 거머쥘까요?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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